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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장, 그리고 영화 이야기

자신도 모르는 나만의 능력 - 영화 “안경”

영화 “안경”이 주는 감동

2022.08.12 | 조회 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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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장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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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안경"의 한 장면. (iPad air 4, Adobe Fresco)

(영화 “안경”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릴 때, 일본 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그때.. 일본 음악, 일본 영화를 보면 불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문화를 접하려는 욕망은 법으로 억누를 수 없었죠. 그 당시 대한민국의 문화 산업은 매우 낙후되어있었고 그러기에 영화나 음악의 수준이 대중의 눈높이에 한참 모자랐습니다. 그에 반해 일본의 대중문화는 그 세련됨이 장난이 아니었죠. 지금. 일본 대중문화가 대한민국에서 가지는 위치를 본다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이 놀랍게 발전했고, 상대적으로 일본의 문화는 답보상태로 보입니다. 일본의 대중문화 산업의 시스템은 희망이 없다는 진단도 나오더군요. 하지만 시스템과는 별개로 천재가 나오기도 합니다.

요즘 가장 핫한 일본 영화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일 겁니다. 그의 대표작은 “드라이브 마이카”죠. 그렇지만 저에게 최고의 일본 감독으로 각인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그녀의 연출작을 처음 접한 것은 “카모메 식당”이었습니다. 그 이후 그녀의 작품은 모조리 찾아보게 되었죠. 그리고 “안경”이란 영화를 보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나만의 능력 - 영화 “안경”

주인공은 큰 여행 가방을 가지고 도착합니다. (iPad air 4, Adobe Fresco)
주인공은 큰 여행 가방을 가지고 도착합니다. (iPad air 4, Adobe Fresco)

한 여자가 해변가의 시골 마을로 옵니다. 큰 여행 가방을 끌고 있는 것을 보니 여행을 온 것 같군요. 간판도 없이 구석에 조그맣게 “하마다”라고 적혀있는 민박집에 도착한 주인공은 민박집주인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습니다. “능력이 있으시네요. 우리 집에 올 수 있는…”

영화 “안경”은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찾아오기 힘든 민박집을 한 번에 찾아올 수 있는 능력의 사람들, 사색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엉뚱하고 이상한 체조를 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들, 누구보다 맛있는 팥빙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그런 팥빙수의 맛을 아는 사람들.

그런 능력들에 대해 주인공은 저처럼 아무런 관심이 없었죠. 오히려 그런 사람들로 채워진 민박집이 따분해서 다른 숙소로 옮깁니다. 새로운 숙소는 한시도 쉬게 내버려 두지 않는 곳이었죠. 재미를 넘어서서 죽 노동을 해야 할 지경입니다. 도망치듯 두 번째 숙소를 나온 주인공은 무거운 여행 가방도 버린 채 첫 번째 민박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의 가치와 그들이 말하는 능력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다시 첫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주인공. (iPad air 4, Adobe Fresco)
다시 첫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주인공. (iPad air 4, Adobe Fresco)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요? 없다고요?! 아니요. 있어요! 혹시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는 거 잘하지 않나요? 혹시 시도 때도 없이 낙서를 할 수 있지 않나요? 혹시 에어컨 아래에서 누워있는 거 잘하지 않나요? 혹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실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나요? 혹시.. 혹시..

영화 “안경”은 혹시.. 하는 당신의 보잘것없는 능력을, 역시 그 능력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쉬는 능력조차 사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때 불안해하죠. 요즘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밥만 먹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식탁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유튜브를 보거나 최소한 음악을 틀어놓죠. 천천히 여유 있게 밥을 먹으며 쉬는 점심시간조차도 온전히 즐기지 못합니다. 그 조금의 여유 시간조차 효율을 뽑아내야 하거든요. 안 그러면 불안해집니다.

영화 “안경”은 곳곳에 풋! 하고 웃음을 주는 재미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템포가 느리고 지루한 영화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말하는 영화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큰 사건이라고는 두 번째 민박집을 탈출(?)하는 장면 정도..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 속 바닷가 민박집으로 달려가고 싶죠.

영화 속 팥빙수 아주머니의 비법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오래, 오래 팥을 조리는 거죠. 아마 사람들에게 이 비법을 알려주어도 못할 겁니다. 조려지는 팥을 보며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견디기 힘든 형벌로 느껴질 테니까요.

영화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주인공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가져온 여행 가방도 없이 떠나게 됩니다. 더군다나 쓰고 있던 안경까지 바람에 날아가죠.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자신의 중요한 소유물들이 이제는 정말 쓸모없는 짐으로 여겨집니다.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안경마저도 먼 풍경을 보며 사색에 빠지는 법을 터득한 그녀에게는 쓸모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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