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8월이 되면 저는 어김없이 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장면들을 그립니다. 이 영화는 제가 가장 감성적인 영화를 꼽을 때 먼저 선택하는 두 영화 중 하나입니다. 나머지 한 영화는 그 유명한 “이와이 슌지”감독의 “러브레터”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남녀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번에는 위의 장면이 저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위의 장면은 주인공인 아들이 늙은 아버지에게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의 조작 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보면 별다른 이야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다르게 보이죠. 간단한 기계 조작도 못하는 아버지에게 결국 아들은 화를 냅니다. 총명함을 잃은 아버지가 못마땅한 것은 아닐 겁니다. 자식의 돌봄이 필요한 늙은 아버지가 곧 혼자가 된다는 안타까움일 겁니다. 그림 속 장면이 지나가면 더 가슴 저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들은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그림과 쉬운 글로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의 설명서를 만듭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우리는 배우는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적어도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는 그랬습니다. 거의 대부분 선생님들이 교과서를 그냥 읊는 수준의 가르침이었고, 그것을 못 알아들으면 학생은 선생님에게 맞기까지 했었죠. 지금도 우리의 교육은 크게 바뀐 것 같지 않습니다. 학습의 책임은 아직도 학생들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의 그림 속 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좀 더 쉬운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가르침의 책임은 온전히 가르치는 사람의 몫이니까요. 배우는 사람이 총명함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그림 속 아들은 삶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그 소중한 시간을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를 설명하는데 소비합니다. 그 이유는 가르치는 상대방을 사랑하니까요.
가르치는 대상을, 설명하는 대상을, 협상하는 대상을, 좀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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