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제대로 책을 읽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책을 읽지 않으니 문장이 엉망입니다. 여러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체 인지도 확신이 없습니다. 매번 오타와의 싸움이고 맞춤법 검사기가 없었다면 저는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글을 씁니다. 처음 발행 버튼을 누를 때는 핵폭탄 발사 버튼을 누르는 비장함이 감돌았죠. 지금 저의 뻔뻔스러운 발행의 자세는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또 한 번의 증거가 되겠네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글을 쓰는 방법
책을 많이 읽는 것이 글 쓰는 것에 무조건 도움이 될 겁니다. 저는 경험해 보지 못해서 한정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겠지만요. 그럼 저는 왜 책을 읽지 않을까요? 1) 게으름 2) 잘못된 학교 교육의 부작용 3) 나도 모르는 난독증? 4) 지금은 시력저하 5) 은근히 부담되는 책값 6) 공부 못하는 사람의 특징 - 등등 모두가 포함된 이유입니다.
글쓰기는 인풋(Input)이 있어야 가능한 아웃풋(Output) 활동입니다. 저는 운이 좋게 독서라는 방법 말고 다른 방식으로 인풋이 가능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참 고마운 것들입니다.
나의 글쓰기 원천인 인풋 창고
1) 영화 - 저는 영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전의 글에서도 밝혔던 것 같은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영화배우는 꿈도 꾸지 않았었네요.) 영화감독이 너무 높다는 것을 알고 시나리오 작가로 재빠르게 꿈을 수정했습니다. 물론 시나리오를 한편도 쓰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일 뿐이죠. 하지만 영화는 많이 봤습니다. 영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영화를 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꼭 영화 감상평을 적었습니다. 다양한 영화 감상과 감상평을 썼던 경험은 지금 저의 글쓰기의 50% 이상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2) 심야 라디오 - 아직도 저는 심야 라디오를 듣습니다. 어릴 때부터의 습관이죠. 심야 라디오를 듣게 된 계기도 영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각 라디오 방송국에 영화 음악 코너가 있었습니다. 영화 음악 코너가 대부분 심야에 했거든요. 아직도 대표적인 영화 음악 라디오 프로가 심야에 전파를 타고 있습니다. 라디오 심야 방송은 청취율을 위한 오락적인 목적이 약합니다. 오히려 양질의 내용이 담긴 내용을 들을 수 있죠. DJ들의 전문성과 해박한 지식도 뛰어납니다. 조용한 한밤중에 듣고 있으면 집중도 잘되어서 좋은 내용들이 쏙쏙 들어옵니다. 그때 들은 음악들 역시 저의 취향을 결정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음악도 무시 못하는 중요한 인풋입니다.
3) EBS - 많은 사람들이 EBS는 수험생이나 보는 채널로 생각합니다. 단연코 아닙니다. 제가 봤던 다큐멘터리나 교양 콘텐츠들 중 최고로 평가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EBS에서 봤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제가 잘한 것이 있다면 EBS의 좋은 프로를 찾아봤다는 것입니다. 한때 바보상자로 불렸던 TV는 EBS 채널을 통해 제게 책 못지않은 교양과 지식을 주었습니다.
4) 유튜브 - 더 이상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의 콘텐츠의 보고이죠. 쓰레기 콘텐츠와 보물 같은 콘텐츠가 한 곳에 있는 용광로와도 같은 곳입니다. 제가 그림을 배운 곳도 유튜브이고,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공부하는 곳도 유튜브입니다. 글쓰기를 배우는 곳 역시 유튜브이죠. 책이 양질의 콘텐츠 비율이 매우 높다면 유튜브는 그 비율이 50%를 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50%의 절대적인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좋은 콘텐츠를 찾는 약간의 노력으로 엄청난 인풋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5) 경험 - 삶 자체가 엄청난 인풋이죠. 저는 누구보다도 재미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도 글로 쓸만한 소재의 경험들이 존재하더군요. 책이나 강의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라고 하죠. 많은 사람들이 글로 옮길만한 경험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많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지금까지 숨만 쉬고 살았다고 해도 글로 쓸 것들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이런 것들을 읽어줄 사람들이 있겠어?" 네! 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궁금해할 사람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글쓰기에서 인풋이 중요하지만 아는 게 많다고 글을 쓰는 게 쉬운 것도 아닙니다. 인풋을 고스란히 아웃풋으로 옮긴다면 그 글을 볼 필요가 없죠. 원본을 찾아보면 됩니다. 글쓰기는 반드시 글 쓰는 사람의 견해가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의 주관인 견해가 틀리면 어떡하냐고요? 그래서 과학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과학적 사고라 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증거와 논리에 의한 전개입니다. 양질의 인풋을 가지고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월등한 지적 능력보다는 내가 말하려는 견해의 객관적 증거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논리가 맞는지, 맥락이 이해가 되는지 판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과학적 사고를 훈련할 수 있는 방법
1) 비평 글을 써보자 - 위에서 저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감상평을 꼭 적었다고 말했습니다. 겉 멋만 들어서 그 당시 영화 평론가 정영일 님이 된 듯이 비평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이동진 평론가를 흉내 내면 되겠군요. 비평글을 쓴다는 것은 전방위적인 지식과 과학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비평의 대상은 내 글을 수긍할 수 없을 겁니다.
2) 과학에 관심을 갖자 - 네. 압니다. 과학은 쳐다보기도 싫죠. 수학과 세트로 학창 시절에 포기해야 하는 과목이었습니다. 단언하건대 그 시절 과학교육은 틀렸습니다. 지금, 좋은 과학 유튜브 채널을 찾아서 시청해 보세요. 무척 흥미롭고 도전해 볼만 할 겁니다. 과학을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지식을 얻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학의 태도를 습득한다는데 있습니다. 과학의 태도는 증거와 논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틀렸다고 판명되는 순간 깨끗이 인정하고 새로운 이론이나 발견을 수용하는 겁니다. 유연성이죠. 글쓰기에 정말 도움이 됩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이렇게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3) 질문을 던지자 - 저의 글(바쁜 것과 부지런한 것은 다릅니다)에서도 생각의 부지런함에 대해 강조했었습니다. 글을 쓴다면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해서는 안됩니다. 나의 견해가 생긴다는 것은 생각이 쌓이는 것입니다. 생각의 시작은 질문입니다. 당연해 보이는 것에 질문을 던져보세요. 의외로 많은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그럴 때 당황스러우면서도 묘한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소소하고 작은 나만의 견해가 쌓이게 되죠. "너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나중에 당신의 글을 읽어보세요. 생각의 힘이 그들과 나의 차이를 엄청나게 벌려놨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겁니다.
책을 읽는 것은 확률적으로 도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좋은 인풋과 자기 견해를 가질 수 있다면 글쓰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독서를 종교와 같이 신성시하는 주위 분위기를 싫어합니다. 독서가 아닌 유튜브에서 통찰을 얻는 것은 거짓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인풋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또한 글쓰기의 중요함을 잊은 채 읽기만 한다면 왜 읽는지 그 이유를 망각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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