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구석구석 자그마한 중세 마을들이 가득한 이탈리아 중부에서 레터를 보냅니다. 산블라스에서는 모기와 흡혈파리 때문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여기 온 이후 하루의 반 정도를 쿨쿨 밀린 잠을 보충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나머지 반은 주로 집 안에서 벽난로 가지고 놀거나 음식을 해 먹고 있어요. 아직 3월이라 춥고 비가 자주 옵니다. 지구 한 구석에선 작열하는 태양이 버거웠는데, 다른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따뜻한 게 그리운 날씨라니, 참 신기합니다. 고작 일주일이 지났는데, 멕시코에서 항해하던 날들이 전생의 일처럼 멀기만 하네요. 온 몸에 빈틈없이 물린 모기, 흡혈파리 자국을 볼 때마다 생뚱맞게 느껴집니다.
지금 머무는 곳은 토스카나Toscana, 움브리아Umbria, 라치오Lazio 세 개의 주가 만나는 곳입니다. 몬탈치노Montalcino,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와 끼안티Chianti를 비롯한 유명한 와인 산지들이 지척에 있죠. 참새 방앗간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와이너리에 갈까- 정보부터 구했습니다.
"토스카나 쪽은 엄청 비싸니까 움브리아로 가. 특히 몬탈치노랑 몬테풀치아노 같은 데는 미국 사람들한테 유명해서..."
미국 사람들의 흔적은 멕시코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군요. 이, 뭔가 익숙한 멘트에, 기후는 달라도 세계는 하나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을 때의 느낌이 옛날과 다르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친절했던, 혹은 적대적이었던, 농담을 건네던,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영감을 준, 그리고 이제 그립기도 한 미국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적어도 서부 해안의 미국과 미국 사람들은 잘 아는 것만 같은 느낌이예요.
땅멀미
'배멀미'를 겪던 사람이 배에서 내리면 '땅멀미'라는 것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바다의 리듬에 익숙해진 몸이, 정지된 땅에서도 자꾸 출렁출렁 움직이려는 데에서 나오는 증상입니다.
조금 다른 의미의 땅멀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질 때 깜짝 놀라거나, 언제든 샤워를 할 수 있는 환경에도 자꾸 씻기가 귀찮아지는 현상, 수퍼에 가면 흥분 속에 몇 주는 먹을 대용량 포장을 카트에 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 등이 주요 증상입니다. 멀미는 몸이 기억하는 움직임과 실제 움직임의 불일치에서 발생한다던데, 이 땅멀미 역시 몸이 기억하는 배 위의 생활과 현실의 땅 위의 생활의 불일치로 인한 것 같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멀미 역시 사라지고, 태평양에서 헤매던 기억은 더욱더 멀어지겠죠? 생생한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이 항해를 글로 담아야 할텐데요. 우선 (쓰다 만) 지난 LA까지의 항해를 먼저 정리해야겠군요. 앞으로 몇 주간 스키퍼 매뉴얼은 지난 구간 항해의 남은 이야기로 채우려 합니다. 마감의 힘을 받아 LA까지 열심히 달려 보겠습니다. 뉴스레터는 좋아요와 구독이 없으니, 응원의 댓글 부탁드려요!
페도테의 스키퍼 매뉴얼
초창기 구독자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 일요일 아침 뉴스레터의 시작은 최고의 오프쇼어 세일러 중 하나인 장카를로 페도테Giancarlo Pedote가 쓴, 동명의 '스키퍼 매뉴얼Il manuale dello skipper'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탈리아어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본문 앞뒤로 주제와 관련된 사족을 붙여, 38주에 거쳐 38편의 뉴스레터를 발행했습니다.
- 스키퍼 매뉴얼 뉴스레터 기획의도 및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여기
처음엔, 이 책을 스터디 자료 정도로 활용하되, 독자님들의 피드백을 통한 '집단지성'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저작권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뒤로 갈수록 집단지성보다는 본문 내용 연재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페도테 미디어 담당자에게 해맑게 얘기했다가 깜짝 놀라게 한 뒤, 비공개로 전환했습니다.
페도테의 가르침들을 책으로 묶으려는 시도가 좌절된 게 벌써 일 년 전이군요. 요트 서적에 관심 있는 한국 출판사는 찾지 못하고, 직접 진행하기엔 출판 경험이 전무해서 북펀드 형식을 제안했습니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독자층이 두껍지 않을듯 해서, 일회성 프로젝트가 적절할듯 했거든요. 하지만 페도테 측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출판은 무산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해 북토크 모임에서 독자님들들을 만난 후, 새로운 시각을 얻었습니다. 이메일로 받은 뉴스레터를 인쇄해 소장하는 분들이 꽤 계셨고, 심지어 이 인쇄물 덕에 원거리 항해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독자님도 만났거든요. 믿을만한 국문 요트 관련 자료가 귀한만큼, 한국 세일러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그 미디어 담당자를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페도테도 세일러이니, 지구 반대편 동료 세일러들의 안전에 도움이 된다면, '바다 위에서는 서로 돕는다'는 씨맨쉽을 간과하기는 어렵겠죠? 독자님들에게도 지원 요청을 합니다:
뉴스레터를 소개해 주세요
매주 일요일 스키퍼매뉴얼을 읽어 주시는 독자님은 현재 208분입니다. 만약 이 미팅이 성사된다면 미디어 담당자에게 이 뉴스레터를 보여주게 될텐데요, 구독자의 숫자보다는 수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담당자 보기에 좀 더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면 성공 확률이 높아질 것 같습니다.
3월 31까지 뉴스레터 하단의 구독 링크를 통해 가장 많은 친구들을 초대해 주신 두 분께 페도테의 '스키퍼 매뉴얼' 한국어판 초판본 3권씩을 드리고, 책에 이름을 실어 드리겠습니다(만약 출판이 무산된다면 다른 선물을 준비할께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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