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21 어떤 불안에 대해

2025시즌 막바지의, 또다시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

2025.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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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과 이런저런 탈것경주 잡담들. 매월 첫째, 셋째 주 화요일에 보내드립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p입니다. 

 

인터라고스 주말까지를 보내고 나니 올 시즌도 끝자락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이제서야 진지하게 다가옵니다. 여러 가지 좋고 나쁜 일들 사이에서 오늘은 어떤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11월입니다. 시간 참 빠르지요, 자주 하는 이야기긴 하지만 정말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갑니다. 언제나 여름인 탈것경주의 계절도 이 즈음에는 확실히 '가을' 에 접어들 정도로요(*북반구 중심적 사고방식이기는 해도). 이 즈음이면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도 드라이버스 챔피언십도 확정되었거나 아주 치열한 마무리 진행중일 때이기에 탈것경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멜랑콜리에 빠지기 딱 좋은 때같기도 해요. 

 

열 팀, 스무 명의 드라이버, 스무 대의 차가 경쟁하고 있는 올 시즌 F1의 세계에서 "포인트 피니시" 바깥의 이야기는 꽤 자주 묻히게 마련입니다. 이들 또한 치열한 경쟁 중임에도 그렇지요. 드라이버스 챔피언십이야말로 F1 경쟁의 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주목도가 높긴 해요. 화려하고 아름답고 한 순간이고 영원하지 않을 것만 같고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게 저의 올 시즌 드라이버스 챔피언십 경쟁을 보는 느낌이기도 해요. 제가 오랫동안 좋은 마음을 담아 지켜봐온 팀의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은 확정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올 겨울은 그 어느 때와 비교해도 더하면 더했지 모자람 없을 변수들의 연속일 게 뻔하기 때문에요. 결실을 거두려면 지금이어야 했고, 그래서 그 무게를 나눠 가져간 드라이버들에 대해서는 - 여기서부터 참 복잡한 마음이 되는 거죠. 결국 챔피언 자리에 오를 드라이버는 한 명이기 때문에. 팀에는 차가 두 대인데도.

불안의 시작점이 어디일지 짚어 올라가다보면, 결국 이 '챔피언은 한 명'이라는 데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팀 A의 드라이버 1과 팀 B의 드라이버 2가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불안이나 갈등 문제는 덜하지만, 팀 A 안에서 드라이버 ㄱ과 ㄴ이 경쟁하는 모양이 되면 - 이제부터는 복잡해지지는 것 같아요.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지만 반지 낄 손가락은 따로 있다는 이야기는 허투루 나오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반지 크기가 딱 맞지 않아서 내가 끼고 싶은 손가락이 아닌 다른 손가락에 반지를 낄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내 반지라는 게 중요할까요 아니면 특정한 어떤 손가락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요. 하지만 내 반지도 딱 맞지 않는 손가락에 끼게 된다면 끼고 있는 내내 어떤 아쉬움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을 것같긴 해요. 어떤 사람은 그 손가락 아니면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반지를 주어 버리는 게 낫다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는 않아서요. 

 

괴상한 비유를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조금 더 해보자면: 그래서 저는 이 계절에 단풍과 낙엽도 생각해 보고 싶어집니다. 나무들은 잎을 버리는 걸까요? 생존을 위해서는 어디까지 허락되는 걸까요. 그렇게 잎을 떨어뜨린 나무들에게 겨울을 버틴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무엇인가를 시도한다는 것-에다 아름다움을 부산물로 보아내는 저의 대단히 이기적인 시각을 곁들이면, 이것은 종종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기분으로 이어집니다. 

 

소수점 아래 세 자리까지를 겨루는 이 극도로 정밀한 세계에서도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숫자 너머의 사람들임을 종종 다시 생각합니다. F1 중계는 수십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다양한 각도에서 '세계'를 보여 주지요. 온보드 카메라나 헬멧-캠을 통해 달리는 차의 시선을, 드라이버의 시선을 간접적으로 제공해 주기도 하고요. 리더보드와 라이브타이밍 화면은 현재 누가 레이스를 리드하고 있는지, 각 드라이버들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특정 차량의 현재 속력 및 엔진 rpm수는 얼마인지, 지금 통과하고 있는 구간에서는 어느 정도의 기록을 내고 있는지 같은 것들을 시각화해 덧붙여서 보는 것의 한계를 메꾸는 한편 중계를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도 피트월 사람들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을 주죠: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

동시에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곳에 있는 것. 질주하는 기계들과 지켜보는 나 사이의 거리는 결코 0이 되지 않고 될 수도 없어요. 몰입하는 동시에 가능한 거리두기, 이성의 스위치를 내려놓고 경주를 보면서도 한쪽에서는 차갑게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보는 것보다 세계가 멀리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감각들. 다른 스포츠 중계들을 보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을 가지고 있겠지만, F1을 본다는 것은 유독 그런 많은 불안과 더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단 인상을 남깁니다. 포메이션 랩 마치고 스타트 직전까지가 특히 그렇지요, 스타트 직후가 가장 사고 가능성도 높고 추월해 순위를 올릴 가능성도 높은 때여서인지. 그 모든 변수와 긴장과 흥분이 메번 새롭다는 것이 종종 놀라울 정도로. 

 

드라이버스 챔피언십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첫 챔피언십에 도전하는 사람들과, 역사적인 무엇에 도전하는 쪽과 - 그런데 드라이버스 챔피언십에 "역사적인" 부분이 빠진 적이 있긴 했나요 - 도전해볼 기회를 얻지 못한 쪽과 있었다가도 놓친 쪽들과 ...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죠. 세 번의 주말을 남긴 시점 "산술적으로" 챔피언 획득이 가능한 도전자는 세 명입니다: 노리스, 피아스트리, 베르스타펜. 이 중 누가 해낼지는 모를 일입니다, 적어도 이번에는 FIA가 끼어들지는 않겠지 - 갚은 냉소를 하게 되는 건 제가 2021시즌을 봤기 때문이겠지요. 부디 결정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 경쟁이 공정하게 치열하기를 바합니다. 가능한 셋 말고 다른 열일곱에게도요. 그래야 이 불안의 결말도 아쉬움 없이 마무리될 것 같거든요. 

 

 

여기까지입니다. 고민하다 보니, 별 것 아닌 짧은 이야기인데도 시간을 넘겨버렸군요...; 다음 편지는 11월 25일에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인터라고스와 베이거스 주말 정리, 그리고 마지막 두 그랑프리 앞둔 이야기와 이런저런 탈것경주동네 소식들 정리해 보내드리게 될 것 같아요. 

즐거운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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