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Note
이 문답은 강의 현장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을 바탕으로, 강의 이후 이해를 돕기 위해 사유의 맥락을 보충·정리한 기록입니다.
Q. 수강생 질문
수강생 한 분이 사진관에서 겪은 흥미로운 경험을 들려주셨습니다. 여권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사분이 너무 정성스럽게 보정을 해주신 거죠. 분명 나보다 훨씬 예쁘고 반듯한 모습인데, 정작 사진을 받아 든 본인은 기분이 좋기보다 오히려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 당혹스러웠다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를 공유해주셨을 때, 저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A."과도하게 보정된 사진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내 안의 진짜 '주체'가 보내는 정직한 신호입니다."
사진관에서 사진사가 정성껏 잡티를 지우고 이목구비를 다듬어
‘가장 완벽한 상태’의 사진을 내밀었을 때,
오히려 “이건 내가 아닌 것 같은데”라며 당혹스러워했던 그 기묘한 기분.
분명 나보다 더 예쁜 나의 모습인데,
왜 우리는 거기서 안도가 아닌 이질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그 기분은 여러분의 감각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의 ‘주체’가 ‘이미지’의 독재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강의에서 우리가 함께 짚은 좌표 중의 하나가 바로 ‘매끈함의 질서’였습니다.
이 질문은 그에 수반된 것이고요.
사진사의 보정 작업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진사의 의도와는 별개로 우리 얼굴의 비대칭, 작은 흉터, 세월의 주름 같은
'불균등한 흔적'들을 지워내고
동일성, 닮음, 완결성의 질서 속에 나를 봉합하는 과정이 됩니다.
우리는 평소 거울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표정, 익숙한 각도를 선택하며 스스로를 ‘오인’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손(사진사)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완벽함이
내가 체감하는 나의 실체와 너무 멀어질 때,
우리 안의 주체가 묘한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왜나면 그 매끈한 사진 속에는
내가 고민하며 찡그렸던 주름도,
삶의 흔적이 묻은 비대칭도 삭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강의에서 언급했듯, 이미지는 늘 실체보다 완벽해 보입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주체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습니다.
사진 속의 ‘그’가 완벽해질수록,
거울 밖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삐걱거리는 ‘진짜 나’는
그 이미지로부터 미묘하게 소외됩니다.
그 낯선 이질감은 바로 그 '지워진 흔적들'이 보내는 정직한 신호입니다.
강화되는 것은 ‘보여지는 자아’일 뿐,
나의 고유한 개성이 매끄러움 속에 봉합될 때 주체는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남깁니다.
지금 나는 모든 균열이 지워진 매끈한 이미지 안에서 안도하고 싶은가,
아니면 조금은 어설프더라도나의 흔적이 살아 있는 주체로 마주 서고 싶은가.
그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여러분이 매끈한 세계의 유혹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았다는 건강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
권신경아(權申庚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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