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Note
이 문답은 강의 현장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을 바탕으로, 강의 이후 이해를 돕기 위해 사유의 맥락을 보충·정리한 기록입니다.
Q. 수강생 질문
강의중에, 한 수강생분이 조심스럽게 물으셨습니다. "강사님, 저는 요즘 사람보다 AI와 대화할 때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낍니다. 새벽에 고민을 털어놓다 보면 가끔 무서워져요. 기계에 마음을 기댄다는 것, 이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이 나왔을 때, 강의실 분위기가 꽤 조용해졌습니다.
농담처럼 던진 질문이 아니었던 데다,
많은 분들이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A."AI는 새로운 증상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의미 부여'라는 오래된 습속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렸듯이,
저는 정신의학적 판단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현상을 곧바로
“병리적이다 / 아니다”로 구분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것은
이 강의의 목적도, 제가 원하는 방향도 아닙니다.
강의에서 우리가 함께 짚은 핵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감각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이미 기계와 대화하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기대에 어긋날 때는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이때 중요한 질문은
“AI가 감정을 가졌는가”가 아닙니다.
인간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의도가 없는 대상에게도 의미와 감정을 읽어내는가?
AI는 의도를 갖지 않습니다.
경험도, 기억도, 감정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응답하고,
거절하지도 않습니다.
강의에서 설명했듯, 이 ‘항상 응답하는 빈 자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 안에 이해, 배려, 진심을
자연스럽게 채워 넣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여기서 문제는
AI가 특별히 위험해서가 아니라,
AI가 너무 비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오래된 습속이
그 안에서 더욱 또렷하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사물에 애착을 느끼고, 사람이 아닌 대상에게 말을 걸고,
상실 이후 대체물을 찾는 과정과 이 현상은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AI는 새로운 증상이 아니라, 인간이 오래전부터 해왔던
‘의미 부여’와 ‘투사’의 습속을
기술 환경 속에서 증폭시켜 보여주는 계기입니다.
그래서 강의에서 이 질문은
“괜찮은가 / 위험한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런 좌표로 이동했습니다.
지금 나는, AI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내 감각의 일부가 어디까지 외부로 이동했는지를 아직 점검하지 못한 상태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다면,
그 지점부터 이미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시작’에 들어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권신경아(權申庚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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