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5. 황금이라 불린 풍경 【알파마, 미라도루】

당신과 떠나는 상상의 여행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2023.06.18 | 조회 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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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최픽션 입니다. 골목을 여행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과연 이 길이 맞는 길일까? 하는 두려움이죠. 골목을 사랑해마지않는 저도 모르는 골목에 들어설 때면 그런 걱정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런 골목길 여행이 매우 쉬운 편입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바로 ‘광장’ 때문입니다.

유럽의 도시들은 광장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조금만 길을 걷다 보면 크든 작든 광장을 맞이할 수 있죠. 그리고 그 광장을 중심으로 유럽의 도시는 길을 잇고,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럽의 골목길 여행은 난이도가 낮아지는 것인데요. 아무리 골목을 헤맨다 해도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 넓은 광장을 마주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 의심이 가신다면… 제가 아는 모든 사람 중 가장 길눈이 어두운 저의 경험을 토대로 드리는 말씀이니 믿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궁금해지는 게 있죠.

그렇다면 유럽엔 왜 그렇게 광장이 많은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광장 옆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합니다. 혹시 기억할 수 있다면 유럽의 어느 광장을 찾아간 추억을 떠올려 보세요.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면 고개를 살짝만 돌려주세요.

거기엔 뭐가 있나요?

이 질문의 답이 유럽에 광장이 많은 이유의 답입니다.

휴가도 많고 근로시간도 적은 유럽이니까 노는 것을 좋아해서 광장을 많이 만들었겠지.”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커다란 오산입니다. 광장은 일찍이 광장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기억 속 광장 옆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모르긴 몰라도 그곳엔 거대한 건축물이나 대규모 토목시설이 있을 것입니다.

왜 광장 옆에는 꼭 그런 것이 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광장은 그것을 짓기 위한 창고였기 때문이죠.

여기서 잠깐 아이들이 블록 쌓기 놀이를 하는 풍경을 떠올려 보죠. (저걸 언제 또 치우나… 이런 생각은 자기 전이니 잠시 접어두시고요…) 아이가 원하는 블록 모형이 완성되기까지 블록의 조각들은 어디에 있나요? 그건 모형이 놓일 자리가 아닌 블록의 작업장 바로 옆에 있을 것입니다. 건축을 위한 재료 창고인 셈이죠.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때도 이런 공간이 필요합니다. 나무 건 돌이건 흙이건 철이건, 재료들을 쌓아두어야 벽을 쌓기 위해 왔다 갔다 고생하지 않을 수 있죠. 광장은 바로 이런 건축 자재를 모아놓은 공간이었습니다. 이 공간에 재료를 잔뜩 쌓아두고 건물을 다 만든 뒤에는 이 빈터에 광장을 지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럽은 광장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광장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그건 우리가 지금, 알파마의 어느 골목 끝에서 노을이 지기를 기다리며 저 먼 아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지난 시간, 우리는 알파마 여행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해적의 여행법이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가이드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게 뜸을 들인 이유가 있으니 잠시만 저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 사실 지난 시간 알파마 골목 여행만 해도 우리는 충분히 걸었고, 충분히 즐겼습니다. 그러니 이대로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죠.

하지만 뜸을 들인 만큼 이것만은 같이 보고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뭐냐고요? 또 뜸을 들여 죄송하네요. 그게 무엇인지는 그것을 보고 즐긴 한 사람의 여행기 속 문장으로 먼저 만나볼게요.

“높은 알파마 지구에도 해는 저문다. 뜨겁게 달궈진 타일에 빛이 사라질 때쯤 28번 전차가 서는 곳을 향해 걸었다. 물론 그 길이 맞는지 확신은 없다. 다만 내리막길을 향해 걸을 뿐이다. 아래를 향하니 그늘이 점차 짙어진다. 모험을 하느라 흘린 땀이 그늘 위로 증발하자 체온이 내려간다. 오랜만에 가방을 연다. 그리고 지도와 물병, 잡동사니 밑에 처박힌 바람막이를 찾는다. 그렇게 알파마에서 눈을 뗀다. 그 사이에도 관성이 붙은 다리는 움직인다. 겨우 바람막이를 찾아 꺼내 든다. 다시 시선은 알파마다. 눈앞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벽과 골목, 건물과 푸른 타일도 없다. 대신 그곳엔 붉은 지붕과 그보다 붉은 금빛 바다가 있었다.

 


‘미라도루(miradouro)’

바다와 맞닿은 알파마는 해적을 거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해적의 여행법을 아는 이방인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조금 짓궂은 편이라 보물을 꼭꼭 숨겨 놓는다. 예를 들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멋진 미라도루 같은 황금을.

지븡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리스본 사람들은 그것을 오래전부터 미라도루라 불렀습니다. 뜻을 풀이해 보자면 “황금을 보다” 정도가 되겠네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리스본 사람 중 누구도 진짜 황금을 미라도루라 부르는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안 뒤, 포르투갈의 역사는 침략을 받는 역사에서 침략을 하는 역사로 거꾸로 쓰였습니다. 아프리카와 인도 브라질… 그들은 전 세계를 항해하며 세계 곳곳에서 발견한 황금을 훔쳐 왔죠. 그렇게 진짜 황금을 눈앞에 두었을 때도 “황금을 보다”라는 뜻의 미라도루를 외치지 않았다니…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의아함은 이곳, 알파마의 아무 골목 너머. 그곳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저 아름답다고만 말하기에는 아쉬운… 짙은 노을의 빛과 잔잔히 넘어오는 바다 냄새, 그리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알파마 사람들의 부산한 목소리. 지금 몸을 기댄 거친 담의 촉감까지. 리스본 사람들이 ‘미라도루’의 칭호를 허락한 이 풍경에는 이토록 수많은 감각들이 잘 조련된 오케스트라의 음악처럼 이방인에게 다가갑니다. 아마도 그래서였겠죠.

“그들이 황금이라 말한 것은 알파마 골목을 모험하는 이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 바로 이 전망뿐이었다.”

이런 문장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말이에요.

그리고 이런 문장도 함께 전해야 하는 이유 말입니다.

 

“알파마에서 지도와 스마트폰을 넣어두어도 괜찮은 이유. 이름 높은 전망대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 그것은 알파마의 장난기에 있다. 그리고 지금도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름 없는 전망대에 있다.”

 


오늘은 전직 소설가였던 가이드처럼 당신을 알파마의 이름 모를 전망대로 안내해 봤습니다.

이제 우리가 알파마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가 보죠. 그때 우리는 이 길모를 오랜 골목의 도시에서 두 가지 방향만 기억했습니다. ‘산타 루시아 전망대’나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를 보고 싶다면 위로,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 집이나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산타 아폴로니아 역을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아래로.

이 두 개의 방향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위를 선택해 이 멋진 황금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죠. 그렇다면 이제 선택지는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알파마를 벗어나기 전까지 우리는 해적의 눈으로 여행을 하는 이방인이란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리고 해적에게 하나의 정답이 전부인 질문지는 찢어버려도 좋다는 사실도 잊지 마세요. 그래서 저는 해적의 깃발을 든 여러분께 한 가지 선택지를 더 드리려 합니다.

자, 선택해 보시죠.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 집이나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산타 아폴로니아 역을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내리막길. 아니면, 황금을 잔뜩 품어 기분을 내고 싶은 분들을 위한 ‘파두’라는 이름의 샛길.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하실 건가요?

저는 이미 방향을 잡았는데요. 다음 자정 여행 때, 그곳에서 다시 만나도록 해요.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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