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6. 그리움이 쌓아 올린 음악 【알파마, 파두】

당신과 떠나는 상상의 여행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2023.06.19 | 조회 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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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최픽션 입니다.

‘이방인’이라는 단어에는, 어딘가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가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좋은 곳이라고 한들. 그곳에 집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죠. 알파마의 미라도루를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이방인이라면 다시 골목을 내려가야 합니다. 당신과 나도 마찬가지죠.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런 이방인의 정서에 익숙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타국에서 들어온 이방인들과 싸웠고, 그들의 발길이 잠잠해지자, 스스로 바다 건너 타국을 향해 모험을 떠났죠. 그렇게 이방인이 된 이들은 행진곡 비슷한 나팔을 불며 포르투갈을 떠나고 또 돌아왔습니다. 이때 그들은 혼자가 아닌, 타국의 수많은 것들을 가지고 돌아왔는데요. 그래서 포르투갈에는 온갖 나라의 정서가 뒤엉키기 시작했습니다. 내려갈 길을 잃은 이방인의 정서도 함께 말이죠.

포르투갈로 들어온 것들 대부분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온갖 향신료는 물론이고 황금의 물건들, 차와 커피, 심지어 갑자기 노예가 된 흑인들까지. 포르투갈에 도착한 이방인들은 그렇게 돌아가지 못하는 아픔을 항구 앞에 새겨두었습니다. 그 아픔의 냄새가 파도를 칠 때면 항구로, 바람이 불 때면 바다로 흐르고 또 깨져버렸죠.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 항구에는 포르투갈로 들어선 이들의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살기 위해 바다로 떠나야 했고, 바다의 잔혹함에 집어 삼켜진 이들.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아픔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타인의 아픔, 그리고 자신들의 아픔. 그 두 아픔은 바닷바람에 섞여 묘한 소리를 냈는데요. 지금도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곳, 알파마에서 말이죠.

 


사우다드. 이 느낌을 아는 사람은 포르투갈 사람뿐이다. 그들만이 진정한 뜻을 알고 부르는 유일한 민족이다.

포르투갈의 시인 페소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사우다드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한국인들에게 가장 가까운 설명이라면 ‘한’ 정도로 말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움이 쌓이고 쌓여 퇴적된 모습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감정. 사우다드는 그런 감정을 말합니다. 이런 감정은 바다와 얼마나 많이 면해 있느냐와 비례해서 더 짙어지곤 하는데요. 국토의 긴 세로 면을 모두 바다와 바라보고 있는, 게다가 그 너머로 끝없는 대서양이 펼쳐진 바다와 면해 있는 포르투갈은 사우다드를 그만큼 깊이 안고 살아야 하는 운명의 민족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그런 자신들의 운명을 거부하려 했을지 모릅니다. 그리움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이들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운명은 거스를 수 없기에 운명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이고 살아갑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긴 역사 속에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죠. 그리고 노래했습니다. 자신들의 운명. 그리움에 그리움에 그리움이 더해진 그 운명을, ‘파두’라는 이름의 음악으로 노래했습니다.

파두는 대서양으로 배가 떠나고 또 들면서 시작된 음악입니다. 그래서 포르투갈의 전통만 담겨 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음악에는 포르투갈의 아픈 운명은 물론이고, 그들이 상처 준 이방인들의 아픔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말하자면 ‘무국적 음악’이라 불러야 정확할. 그런 음악입니다.

이 음악이 시작된 곳은 지금 우리가 걸어 내려가고 있는 이런 거리에서였습니다. 일찍이 귀족이나 왕가는 그리움의 감정 따위 느낄 필요가 없었기에, 이 음악을 부른 것은 대부분 어부의 가족들, 항해를 떠난 선원들의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파두를 듣고 싶다면 거창한 공연장보다는 이런 길거리의 지하 술집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 곳이나 한 번 들어가 보죠.

 


알파마의 거리에는 파두를 공연하는 가게가 많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음식이나 술을 파는 레스토랑인데요. 음식과 함께 저녁이 되면 파두 공연이 펼쳐지곤 하죠. 이렇게 술과 음식, 파두가 함께하는 가게를 ‘토스카’라고 부릅니다. 가게 앞을 보면 대략 공연이 언제 시작한다는 안내는 있지만 입장 시간을 엄격히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알파마를 지나다 생각이 나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만입니다. 그리움이 찾아오는 방식처럼 말이죠.

우리도 이제 막 타스카의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해 주는 것은 긴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여인입니다. 다행히 아직 공연은 시작되지 않은 것 같네요. 그럼 공연을 기다리며 메뉴를 둘러볼까요? 포르투갈에서는 식사와 함께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가벼운 그린 와인으로 시작을 하면 좋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파두까지 감상을 해야 하니, 조금은 도수 높고 색도 진한. 그런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해 보는 것이 낫겠죠.

이런 가게들은 대부분 공간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주문이 밀릴 염려도, 너무 늦게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필요 없습니다. 주문을 하면 곧이어 와인이 도착할 테니, 너무 일찍 주문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파두 공연은 와인을 부르고 또 부르는 힘이 있으니, 공연 중에 와인이 떨어지지 않게 잘 채워두는 것은 잊지 않아야 하겠죠.

그럼 한 잔, 마셔볼까요?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알파마와 미라도루의 이야기를 나누고 담아온 사진을 보고 있다 보면 어느덧 조명이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잔잔한 빛이 무대(라고 해봐야 테이블 바로 앞의 빈 공간입니다)를 비춥니다.

이제 나이 든 남자 연주자 둘이 파두 비올라와 포르투갈 기타를 들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튜닝인지 전조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오면 뒤이어 검은 드레스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맞아요. 우리를 안내해 준 바로 그 직원입니다. 타스카에서는 파두 가수가 점원을 겸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면 울림보다는 떨림에 가까운 음악과 목소리가 가게를 가득 채웁니다, 우리 손에 든 와인잔도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아마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떨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당신과 함께 생각해 봅니다.

"사우다드. 이 느낌을 아는 사람은 포르투갈 사람뿐이다. 그들만이 진정한 뜻을 알고 부르는 유일한 민족이다."

페소아의 말 그대로였다. 그리움이 담은 비애와 슬픔의 감정을 뜻하는 단어 '사우다드.'그것을 아는 이는 포르투갈인뿐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끝이라 믿었던 바다를 시작점으로 항해를 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무수한 항해에 나선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인도, 중국, 브라질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우다드를 느꼈다. 버리지 못한 그 감정을 그들은 배에 실어 보냈다. 그렇게 테주강과 알파마의 항구에 각지에서 붙여진 사우다드가 도착했다. 누군가는 직접 그것을 가져왔다. 다행이었다. 다른 누군가는 바다에 먹힌 채, 사우다드만 담아 보냈다. 파두였다. 기다린 이의 손이 아닌, 찬바람의 봉투에 담겨 온 사우다드. 오래된 항구에서 그것을 받아든 이들의 심정은 검은 드레스 여인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이윽고 연주는 끝이 납니다. 조명은 다시 조금 밝아지고, 파두 가수는 드레스 위로 다시 앞치마를 두릅니다. 언제까지나 떠난 이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듯. 삶은 그리움 위로 쌓이고 또 쌓여야 한다는 듯. 그렇게 일상은 다시 시작됩니다. 그런 그들의 일상에, 그 일상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여인의 떨림이 멈춘다. 잔잔한 박수 소리가 무대 앞으로 모인다. 천천히 무대의 조명이 어두워진다. 흡사 미라도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알파마, 미라도루, 사우다드, 파두를 생각합니다.

오늘의 짧은 자정의 여행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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