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4. 해적의 눈으로 떠나야 하는 도시 【알파마】

당신과 떠나는 상상의 여행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2023.06.17 | 조회 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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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의 최픽션 입니다. 언젠가부터 여행 시작 전 필수 준비물이 스마트폰의 지도 앱이 된 것 같아요. GPS와 지도 앱만 있다면 모르는 동네에서도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죠. 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성능의 GPS와 디테일한 지도 앱이 통하지 않는 여행 지도 있어요. 오늘 떠날 곳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그러니 스마트폰 전원은 뭐, 꺼버려도 좋아요. 아마도 꺼내볼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죠. (그 이유는 차차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그럼 두 손 가볍게, 출발해 볼까요?

이곳에 오면 몇 번이나 길을 잃고 만다.

작가 존 버거가 남긴 이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존 버거는 실제로 이곳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주 이 길을 거닐었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이곳의 길을 끝내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초행길인 우리는 더 주위를 해야 할 거예요. 시작부터 너무 겁을 주는 건 아닌가 싶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이곳은 이곳만의 여행법이 있으니까요. 그럼 일단, 저기 들어오는 노란 28번 전차에 올라보도록 하죠.


자, 이제 오늘의 여행지 알파마에 도착했습니다. 리스본에 위치한 이 오래된 마을은 말 그대로 정말 오래된 마을이에요. 리스본의 시인 페소아는 직접 쓴 가이드북에서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죠.

 

이방인이라면 이곳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변하는 리스본에서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페소아가 이 글을 남긴 것은 100년 전의 일입니다. 그 당시 리스본은 그야말로 변화의 물결에 실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죠. 그 시작점에는 리스본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1755년에 일어난 엄청난 지진으로 리스본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곳 알파마만은 지진의 여파를 받지 않았죠. 덕분에 알파마는 과거의 리스본을 그대로 품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알파마는 백 년 후에도, 또 백 년 후에도.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로 남아 있는 것이죠.

존 버거가 이곳에서 몇 번이나 길을 잃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곳은 새로운 도시계획에서 언제나 배제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복잡한 골목길을 끝없이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오래됨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덕분에 이방인인 우리는 세상에 몇 남지 않은 골목길 여행을 즐기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알파마, 이곳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지도를 그려볼까요? 이를 위해서는 일반적인 여행자의 시선은 집어넣어야 합니다. 대신 해적의 눈을 떠야 하죠. 그러면 두 개의 길이 보일 거예요. ‘산타 루시아 전망대’나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를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오르막길.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 집이나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산타 아폴로니아 역을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내리막길. 일단 이 두 개의 길만 알아두면 돼요. 해적이 동서남북 네 개의 방향 정도만 알고 항해를 떠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알파마 여행 내내 잊으면 안 되는 한 줄의 문장.

이곳은 목적지를 아는 해군을 위한 도시가 아닌, 목적지를 찾는 해적을 위한 도시다.

이 한 줄을 기억해두도록 해요.

 


 

우리는 알파마의 골목을 돌고 또 돌아 오를 거예요. 그러다 보면 한 번은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가고, 또 한 번은 계단이 아닌 곳을 오르다 막다른 곳에 닿을 거예요. 그럴 때면 어떻게 하냐고요? 간단합니다. 다시 돌아 나오면 그만이죠. 문제는 체력이에요. 기약 없는 목적지를 향한 걸음은 불안감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불안감은 알파마에 부는 바닷바람처럼 건물의 회칠과 우리의 체력을 깎아내리죠.

다행인 것은 알파마 건물의 외벽에는 아줄레주라 불리는 타일이 붙어있다는 거예요. 그 옛날, 알파마의 항구에는 아프리카에서 들어오는 배들이 정박했어요. 대륙의 바닷바람까지 몰고 온 그들 덕에 알파마의 건물은 쉽게 부식해버렸죠. 이를 막기 위해 알파마 사람들은 벽에 타일을 덧댔습니다. 그것으로 부식은 막을 수 있었죠. 하지만 알파마 사람들은 곧 깨달았어요. 너무 심심하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래서 알파마 사람들은 건물 타일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의 주제는 다양했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눈에 담긴 풍경을 그렸어요. 그렇게 파란색 그림 ‘아줄레주’가 타일에 담기자 알파마는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변했죠. 반짝이는 빛의 벽을 가진 도시로 말이에요.

이 아줄레주는 우리 이방인에게도 큰 도움을 줍니다. 만약 알파마 여행을 하다가 지칠 때면 지체 없이 걸음을 멈추세요.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며 ‘아줄레주’, 벽에 그려진 그 아름다운 그림들을 감상해 보세요.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미술관에 온 듯 감성을 채울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골목을 타고 흐르는 바닷바람 덕에 체력도 금세 회복될 겁니다.

 


 

자, 어떤가요? 다시 걸을 힘이 나셨나요? 그렇다면 또 골목을 헤매볼까요? 가이드가 헤매자고 말을 하니 무책임해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알파마의 골목에 취해 걸음을 옮기다 보면 목적을 잃기 십상입니다.

“알파마에 가면 대성당도 가봐야지. 전망대도 올라보고, 상 조르주 성도 봐야지.”

이런 여행자들의 목적을 말이죠. 하지만 알파마의 골목은 장난기가 넘쳐서 우리 같은 이방인들을 쉽게 목적지로 안내하지 않아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해가 서서히 넘어가면 마음이 조급해지죠.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는데…” 하면서 말이에요.

그런 마음이 든다면 알파마 입구에서 말씀드린 이 문장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세요.

이곳은 목적지를 아는 해군을 위한 도시가 아닌,

목적지를 찾는 해적을 위한 도시다.

그리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알파마, 이곳을 찾은 목적을 말이에요.

이 질문에 대성당이나 전망대는 정확한 답이 아닐 거예요. 그곳은 그저 장소에 불과하니까요. 더 중요한 것은 그 장소에 가는 이유죠. 우리는 왜 알파마에 오면 그런 장소에 가려고 하는 걸까요? 이 질문의 답은 다른 어디가 아닌,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데요. 오늘은 골목을 헤매느라 시간이 너무 늦었어버렸네요. 그러니 우리가 함께할 다음 자정의 여행에 알파마의 진짜 목적지. 그곳으로 향해보도록 할게요.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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