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미래
이제 우리는 저성장 기조를 거부할 수 없는 미래로 보는 것 같다. 저성장, 초경쟁, 양극화는 뉴노멀이라고 한다. 나 역시도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만, 과연 모두가 거부할 수 없는 미래에 적응하는데 몰두해야하느냐에 대해선 의문점이 있다. 내 생각에는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거부하려는 움직임과 거부할 수 없는 미래에 적응하려는 움직임 2개를 모두 가져가야지 리스크를 서로 헷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응을 위해서만 노력하고 있는 것만으로 보인다. 어쩌면, 더 나아가서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거부하려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기까지 한다.
Techno-Optimism
가장 대표적인 기술 기반의 낙관주의자 Marc Anderssen은 ‘The Techno-Optimist Manifesto’라는 글에서 기술을 통해서 이제껏 인류는 문제들을 해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굉장히 볼드한 주장을 하였다. 이 글이 나온 이후, Wired, NY Times, Financial Times는 모두 해당 글과 Marc Anderssen을 비판하는 글을 공개하였다. 나도 이따 후술하겠지만, Marc Anderssen의 주장에 전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생각에 Marc Anderssen은 자신의 지위와 스피커 파워를 통해서 기술 기반의 낙천주의의 가장 극단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대중들의 미래에 대한 시선 스펙트럼을 확장시켜줄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원래는 아럐 그래프에서 좌측 절반만 고를 수 있었다면, 가장 오른쪽 끝의 깃발을 꽂아줌으로써 사람들은 그래프 전체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Marc Anderssen의 주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나는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단지 Marc Anderssen이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자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전적으로 자신의 환경과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Marc Anderssen이 기술로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벤처투자자의 길을 가고 있다면, 어쩌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신념과 업을 일치시킨 좋은 사례라고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환경운동가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과 같이, 그 역시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럼 정말 이제 고성장 시대는 끝인걸까? 기술 발전을 통해서 아예 경제 양극화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다들 조금 더 부유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을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Riskophilia
저성장 기조와 함께 우리 사회에 어느순간 대세로 자리잡은 이념이 바로 리스크-회피주의(Riskophobia)이다. 이에 대해선 Packy McCormick의 ‘Riskophilia’에서 아주 잘 서술되어 있다. 그의 글에 의하면, 우리 인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리스크 회피적으로 변화해왔다.
현재의 대세처럼 저성장과 침체의 시대를 인정하고 적응할 것이라면, 굳이 그럴 것 없지만, 만약,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거부하는 노력을 해보고 싶다면 이러한 Riskophobia 문화부터 Riskophilia로 바꿔야 한다. 아이가 자전거를 못타게 하기보다는, 헬멧을 쓰게 한뒤에 자전거에 타게 해야한다. 단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움직임을 갖게되면,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과 성장을 저해시킬 수 밖에 없고,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거부해보려는 시도 자체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모든 선택이 비용과 장점을 ‘모두’ 수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그 어떤 의사결정도 단점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은 화석 연료 없이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에 따른 비용도 분명히 발생하였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화석연료는 비용 대비 장점이 탁월한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문화라면, ‘넥스트 화석연료’를 발견하더라도, 비용 부분에만 집중하여서 절대 도입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기술의 비용과 장점, 모두를 면밀히 살펴보고, 최종적으로 해당 기술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지를 따져야한다.
Bits & Atoms
이 세상은 크게 두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컴퓨터 세상, 즉 Bits로 이뤄진 세상이고, 다른 한 가지는 물리적 세상, 즉 Atoms의 세상이다.
인터넷, AI, 블록체인은 전부 Bits 세상의 혁신이었다. Bits를 움직이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0에 가까워짐에 따라서 우리가 상상만 했던 일들이 현실로 가능해졌다. 한번 더 고성장의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이제 물리적 세상에서의 혁신이 필요하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Atoms & Bits의 intersection 분야에서의 혁신이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AI x 바이오 분야이다. AI라는 Bits 세상의 선진 기술을 가져다가, Atoms 세상의 화학물질 합성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것들이 가능해질 수 있다.
만약, 하나의 원자를 옮기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0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면, 더 이상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공상과학에서만 나오는 소재가 아니게 될 수 있다. 인류의 기술이 크게 발전하였음에도, 여전히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공상과학에만 존재하는 이유는 Atoms 세상의 혁신은 상대적으로 Bits에 비해서 미비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Atoms 세상에서 혁신을 꿈꾸는 이른바 ‘Hard Tech Startup’들이 더 생겨야하고, 이를 집중하는 VC들 역시 더 필요하다. 실제로, 해당 글에 따르면, Hard Tech 투자가 SaaS에 비해서 더 결과도 좋다고 하니, 안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나의 미래 도식도
앞서 나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거부하려는 시도라도 해보기 위해선 첫째, 리스크 테이킹을 하고, 면밀히 비용/장점을 비교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고, 둘째, Atoms에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함께 내가 생각하는 전체적인 미래 사회의 도식도는 다음과 같다.
일단 기술과 자본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가장 큰 두 축이다. 이는 기술적 낙관주의의 기초가 되는 가속주의(Accelerationism)의 Techno-capital Machine이라는 개념에 기초한다. Techno-capital Machine이란, 가속주의에서 성장을 위한 영구 엔진으로써 ‘기술’과 ‘자본’이 큰 두 축이고, 연료로써는 ‘에너지’와 ‘지능’을 필요로 한다. 이 엔진의 최종 목적은 인류의 삶을 더 풍요롭고, 낫게 만드는데 사용되어야하며, 이 모든 활동들은 기관, 즉 정부라는 시스템의 경계 내에서 작동한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 도식도가 기존의 techno-optimism과 가지는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Techno-capital machine의 목적: 작은 차이이긴 하지만, 나는 techno-capital machine의 목적이 결국은 인류의 삶을 더 낫게 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가속주의에서는 이에 대한 부분이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나는 결국 인류가 중심에 있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정부 및 기관의 중요성: 기존의 techno-optimism에서는 정부나 기관의 역활을 주목하지 않거나, 오히려 없을 때 더 이롭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비현실적이다. 이미 정부라는 기관이 존재하고, 그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상, 그 시스템이 없다고 가정하거나, 없어져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한다. 둘째, 정부는 우리 사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예를 들어, SpaceX는 NASA의 COTS 없이는 이렇게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큰 자본을 필요로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긴 시간이 필요한 Atom의 세상에서 큰 혁신을 위해선 정부의 지원 및 협력은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각 주체들과 관련된 개념은 다음과 같다.
- tech: 배터리, 반도체와 같은 각 산업의 모든 공학적 기술들을 포함
- capital: 벤처투자자, 주식시장, 크립토과 같은 다양한 자본 조달 방법들
- energy: 핵융합, 핵분열, 태양열, 지열과 같은 더 값싸고, 친환경적인 에너지 생산 방법들
- intelligence: AI.
- human: 바이오 & 헬스케어와 같이 인간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기술들
- institution: 정치와 같이 현 시스템부터, Network States와 같이 새로운 시스템 건설을 위한 개념들까지
마무리
이렇듯,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거부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져서 최소한 거부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적응에 힘쓰는 사람들 :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거부하는데 힘 쓰는 사람들의 비율이 한 6:4까지는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혹시라도,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거부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고를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다들 풍요롭게 살고, 더 성장하고, 더 많은 공상과학 기술들이 현실로 만들어지고,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저성장 기조를 거부하고, 고성장의 시대를 위해서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 자유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좋은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나는 지금껏 사회에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설명하였다면,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거부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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