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의 핀테크들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할까?
일반적인 회사와 위대한 회사의 차이는 단순히 실행력이나 성과에 있지 않다. 그 차이는 자신이 속한 시대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히 포착하고, 더 나아가 그 문제를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정의하며 앞으로 끌고 나가느냐에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대정신 중 하나는 젊은 세대 전반에 퍼져 있는 금융 허무주의와, 그로 인해서 나타난 도파민 금융 중독 현상이다. 오늘은 이전에도 잠깐씩 다뤄왔던 여러 자료와 관찰을 종합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원인과 그로 인해 나타난 행동 양상,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 세대의 핀테크가 고민해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금융 허무주의를 만들어낸 세 가지 구조적 요인
주택 구매력의 감소

젊은 세대의 금융 허무주의의 첫 번째 원인은 주택 구매력의 감소이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연구자분들이 작성한 해당 논문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핵심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 집값 상승과 소득 정체로 인해 청년층이 주택 구매를 포기하게 되고,
- ‘집을 살 수 없다’는 인식이 소비, 노동, 투자 전반의 행동 변화로 이어진다.
위 논문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결과들은 다음과 같다.
- 동일한 자산 환경에서도 임차인의 가상자산 투자 참여율은 주택 소유자보다 훨씬 높았다.
- 주택 소유자에 비해 임차인의 경우 ‘항상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응답할 확률이 약 2배 높았다.
- 중위 소득 수준의 임차인의 경우, 집값이 상승하면 정상적인 저축과 투자로는 주택 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고 인식하게 되며, 이로 인해 한 번에 역전할 수 있는 고위험 투자에 대한 참여가 증가했다.
시간 신뢰의 붕괴

두 번째 원인은 젊은 세대의 시간 신뢰 붕괴이다. 0xsmac이 작성한 해당 글을 보면 이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핵심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기다림과 복리를 보상이 아니라 손해로 인식한다.
- 그 결과 장기 계획 자체에 대한 시스템적 체념이 발생한다.
위 글에서 언급된 내용 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다.
- ‘내 노력으로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설문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응답자의 70% 이상이 ‘그렇다’라고 답했지만, 2010년대 이후 꾸준히 하락하여 2025년에는 약 25% 수준까지 떨어졌다.
- 미국의 세대별 부 분포를 보면, 1990년대에는 세대 간 부의 비중이 비교적 균형을 이루었으나, 2000년대 이후 40세 미만 세대의 부는 거의 정체된 반면 윗세대의 부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부의 원천은 생산이 아니라 보유, 즉 ‘시간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었는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젊은 세대에게 시간은 더 이상 복리의 동맹이 아니라 불리한 적이 되었다.
중독 친화적 환경
금융 허무주의에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젊은 세대가 훨씬 더 중독 친화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해당 논문과 또 다른 연구를 보면, D2 수용체의 가용성과 경제적 의사결정 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D2 수용체는 과도한 보상 추구를 억제하고 손실 신호를 반영하는 도파민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데, D2 수용체 가용성이 낮을수록, 즉 즉각적이고 고빈도 보상 구조에 지속적으로 노출될수록 다음과 같은 특성이 나타난다.
- 손실이 명확해도 위험한 선택이나 포지션을 고수한다.
- ‘이번엔 다를 것’과 같은 낙관 편향이 강화된다.
- 새로운 정보가 주어져도 전략을 수정하지 못하는 선택 경직성이 증가한다.
현상: 도파민 금융
위와 같은 원인들로 인해 발생한 현상이 바로 젊은 세대의 도파민 금융 중독이다. 이는 크게 소비 영역과 투자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소비의 레버리지

소비의 레버리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BNPL(Buy Now, Pay Later)이다. BNPL은 최근 몇 년 사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습관으로 전환되었다.
-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의 BNPL 이용자는 약 5,360만 명이며, 1인당 연간 이용 횟수는 6.3회, 이용 금액은 $848이다. CFPB는 BNPL이 더 이상 이벤트성 결제가 아니라 반복 소비에 구조적으로 내장된 결제 수단이 되었다고 해석했다.
- 여러출처에 따르면, 미국 기준 Gen Z의 BNPL 사용률은 약 55~60% 수준이며, 2024년 연말 쇼핑 시즌 기준 사용률은 54%로 전통적인 신용카드 사용률 50%를 앞질렀다고 한다.
- 신용카드가 ‘빛’처럼 느껴지는 반면, Gen Z에게 BNPL은 일상적인 소비 방식으로 인식된다. 네덜란드 금융감독청(AFM)이 25세 미만 BNPL 이용자를 분석한 결과, 해당 그룹의 3명 중 2명이 한 달 내 복수의 BNPL 사업자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으며, 6명 중 1명은 연간 90일 이상의 마이너스 계좌를 경험한다고 한다.
- 대표적인 BNPL 서비스인 Affirm의 2025년 자료를 보면, Affirm Card의 GMV가 전년 대비 100% 이상 성장했는데, 이는 BNPL이 단순한 체크아웃 옵션을 넘어 일반적인 결제 솔루션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BNPL과 더불어 소비의 레버리지 사례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확률 기반 소비 서비스이다. 이는 확정 지출을 확률적 보상 구조로 변환하는 형태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Coverd가 있는데, 이 서비스는 카드 결제 후 룰렛 결과에 따라 청구 금액 전액 면제를 가능하게 해준다.
투자의 레버리지

투자의 레버리지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젊은 세대가 점점 더 비전통적 자산에 접근하고,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크고 리워드가 높은 투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 AXSN 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Hyperliquid(온체인 투자 플랫폼)의 순이익은 12억 달러로 Nasdaq의 11.3억 달러를 상회했으며, 직원 수는 Nasdaq의 1/832 수준에 불과했다.
- Robinhood의 2025년 2분기 거래 기반 매출은 약 5.35억 달러였는데, 이 중 옵션 거래가 49.2%, 크립토 거래가 29.7%, 주식 거래가 12.2%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옵션 거래는 0DTE 옵션이다.
- Coinbase의 자료에 따르면, Gen Z 이하 세대는 기존 금융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으며, 73%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부를 쌓기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거래 빈도가 높고, 고수익 기대 비율이 높으며, 비전통 금융 상품을 먼저 시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시대정신: 금융 허무주의 타파
이러한 기조가 지속된다면, 해당 세대의 상당수가 은퇴 시점에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 모든 현상의 핵심 원인은 젊은 세대가 게임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버렸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가 다시 게임에 참여할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새로운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가 필요하다.
Simon Taylor가 쓴 해당 글을 보면, 이러한 금융 상품의 방향성을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 번째는 젊은 세대가 지금의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상품이다. 이는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당장의 현금 흐름 압박을 완화해, 게임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접근이다. 예시는 다음과 같다.
- Graduate Mortgage: 학위, 학교, 전공별 취업률과 소득 분포를 반영해 주택 대출의 금리, LTV, 보증 조건을 차등화하는 방식
- Outcome-based Tuition: 학생의 실제 취업 성과에 따라 학자금 상환 조건을 조정하는 상품으로, 졸업 후 일정 소득 미만일 경우 현금 일부를 리베이트하거나 일부 채무를 감면해주는 형태이다. 이를 통해 학교는 커리큘럼과 취업 성과에 직접적인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
- Portable 401(k): 미국의 경우 401(k)가 고용주 중심 제도이기 때문에 이직이 잦은 사람에게 불리한데, 이를 직장이 아니라 개인에게 귀속되도록 설계하는 접근이다.
두 번째는 필수 비용 자체를 낮추는 상품이다. 금융 허무주의의 뿌리가 ‘노력해도 생활비와 자산 가격이 더 빠르게 오른다’는 체감에 있는 만큼, 공급을 늘려 가격을 구조적으로 낮추고, 그 공급 확장을 젊은 세대가 참여 가능한 투자 기회로 재설계하는 방식이다.
- Retail Endowment: 리테일 투자자가 인프라, 부동산, 전력망, 데이터센터처럼 느리지만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자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 상품
- Education Equity Swap: 의사, 간호사 등 필수 서비스 학과를 대상으로 정원 확대와 시설 확장을 자금으로 지원하고, 미래 급여 흐름의 일부를 회수하는 형태의 투자 구조

여기에 더해, 도파민 금융의 흐름 자체를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Here for speculation, stayed for financial stability’라는 느낌으로, 일종의 트로이 목마 전략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앞단에서는 도파민 금융을 통해 젊은 세대를 유치하고, 뒷단에서는 사용자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장기적인 금융 웰빙이 축적되도록 넛지하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금융 허무주의 타파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해당 서비스는 아예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금융 허무주의 타파는 어렵다. 일단 먼저 쓰여야, 그 다음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결론
해당 문제가 특히 무서운 이유는 젊은 세대의 이러한 반응이 너무나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집을 살 수 없고, 시간을 믿을 수 없으며, 기다릴수록 뒤처진다는 감각 속에서 고빈도·고자극 금융으로 이동하는 것은 비이성적 일탈이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다. 문제는 이 경로가 단기적으로는 손맛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거의 확실한 파산 경로에 수렴한다는 점이다.
이미 젊은 세대를 타겟으로 한 핀테크 서비스는 넘쳐난다. 그러나 금융 허무주의를 타파하는 일은 단순한 게임화된 금융이나 소수점 투자 같은 기능적 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젊은 세대가 다시 이 게임에 참가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새로운 금융 상품들이다. 노력과 시간이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다는 신호를 구조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한, 어떤 UX 혁신도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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