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5

괜찮아 지금이야!

2023.07.14 | 조회 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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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파리로 떠난 우정의 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이탈리아인 아주머니가 그려주신 내 모습. <div>내가 이렇게 날카로운 인상이었군.<div>그녀의 직업은 연극배우. 취미는 그림그리기라고 한다. </div><div>외우시던 대본 뒷장에 즉석으로 그려주셔서 사진으로만 찍었다.</div></div>
이탈리아인 아주머니가 그려주신 내 모습. 
내가 이렇게 날카로운 인상이었군.
그녀의 직업은 연극배우. 취미는 그림그리기라고 한다. 
외우시던 대본 뒷장에 즉석으로 그려주셔서 사진으로만 찍었다.



24일차 19.81km

Astroga Valdeviejas Murias de Rechivaldo Santa Catalina de Somoza El Ganso Rabanal del Camino

Astroga 아스트로가는 2천 년 전 중세시대에 세워진 역사적인 도시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숨은 벽화를 찾는 재미가 있고, 산책길 옆으로 도시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 날 체크인을 하고 리옹이랑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산책을 했다. 그리고 오늘은 도시 중심에 있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주교궁과 대성당을 다녀오느라 느즈막히 출발했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만큼 예쁜 도시였다. 앞으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어디였는지 물어보면 “아스토르가!”라고 답할 생각이다.

 

산티아고 순례자를 위한 우체국 서비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우체국으로 가서 <div>산티아고로 보내버리자. <div>15일까지 보관해주며 10유로밖에 안 한다. </div></div>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우체국으로 가서 
산티아고로 보내버리자. 
15일까지 보관해주며 10유로밖에 안 한다. 

아침 8시, 알베르게의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일찍 일어나 인근 카페에서 아침을 먹었다. HOKA 신발을 신은 후로 발은 훨씬 편해졌지만, 조그만 가방에 등산화를 데롱데롱 매달고 다니는 게 영 거슬렸다. 그래서 산티아고로 보내고자 우체국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다시 신지않을테니 홀가분하게 보내주었다. 신발 하나 뺐을 뿐인데 걸음은 더욱 가벼워졌다.

엽서를 받고 싶다면 frances.wjk@gmail.com 로<div></div><div>집 주소를 보내주세요.</div><div>예산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써볼게요!<br></div>
엽서를 받고 싶다면 frances.wjk@gmail.com 로
집 주소를 보내주세요.
예산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써볼게요!

우체국을 들린 김에 우표도 10장 샀다. 1장 당 5천 원이나 하다니, 사놓고 살짝 놀랐다. 산티아고에서 20유로 이상 내 본 게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이지만 지구 반 바퀴를 돌아 가니까 비싼 건 아닐 거다. 여행을 자주 하지만, 기념품은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 선물 대신 편지를 보내는 편이다. 그래서 성당이나 미술관, 박물관에을 가면 꼭 엽서를 사는데 때로는 뒷면에 일기를 써서 한국으로 챙겨 가고, 때로는 편지를 써서 우편을 보낸다. 이번에도 무사히 도착하기를 :)


 대성당과 주교궁

10시, 문 열리자 마자 들어가 찍음. 하여 사진이 깨끗.
10시, 문 열리자 마자 들어가 찍음. 하여 사진이 깨끗.

다음으로 가우디의 건축물이라고 하는 아스토르가 주교궁에 들렀다. 10시, 문이 열리자 마자 들어가서 1시간이 넘도록 놀았다. 이전에 방문한 성당에서는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했다면, 이곳 주교궁은 주교가 사는 집이기 때문에 섬세한 디테일이 돋보였다.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각 층별, 구역별로 특색이 있었다. 기도하는 곳, 일하는 곳, 회의하는 곳, 밥 먹는 곳, 자는 곳 모두 미묘하게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니 천재 가우디는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각 공간의 패턴과 색감, 창문의 모양과 스테인리스, 타일과 기둥에 새겨진 무늬까지 꼼꼼하게 보느라 오래 걸렸다. 내부 곳곳에는 건축물과 별개로 아스토르가 역사와 관련된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1층 창문
1층 창문

그후 가우디가 어떤 인물인지, 주교궁은 어떤 히스토리를 갖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책을 한 권 구입했다. 알라딘 E-book으로. 책의 내용은 꽤나 자세했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교궁은 가우디가 지은 건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순간 속은 기분이 들었다.

 

주교관 공사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가우디는 위원회에 “당신들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할 능력도 없고, 일을 중단된 채 내버려둘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다”라며 그동안 말하지 못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산처럼 높게 쌓인 아쉬움과 미련을 내려놓고 가우디는 그라우 주교를 위해 비석을 제작하며 아스토르가의 일을 마무리했다. 몇 년이 지나 가우디에게 다시 와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가우디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건축가에게 자존심은 건물의 기둥과 같다. 인간적인 신뢰가 무너진 곳에 작품의 씨앗이 자랄 틈은 없다. 화가 난 가우디는 원래 설계도를 모두 태워버리고 다시는 아스토르가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결국 수십 년이 걸려 공사가 끝이 났지만 가우디의 설계대로 지어지지 않았다. 세월은 참으로 무심한 듯하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김희곤 지음) 중에서

 

그리고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 <div>정작 아스토르가 주교는 여기에 산 적이 없음. </div><div>궁이 너무 화려해 부담스러웠나봄.</div>
그리고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 
정작 아스토르가 주교는 여기에 산 적이 없음. 
궁이 너무 화려해 부담스러웠나봄.

 

지금 작은 시골도시 아스토르가를 방문하는 사람은 어김없이 시내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주교관을 가우디의 작품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건물은 가우디의 작품이 아니라 가우디의 아픈 감정이 쌓여 있는 애물덩어리였다. 건물의 마무리와 지붕 공사는 레온 교구 건축가인 리카르도 가르시아게레타가 마음대로 했다. 가우디가 구상한 건물과는 완전히 다르게 지어졌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모든 사람은 이 건물을 가우디의 작품이라고 부르며 가우디의 예술혼을 팔고 있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김희곤 지음) 중에서

 

모든 방이 중앙 홀에서 사방으로 뻗어져 있다. <div>문 하나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별 모양 구조. </div><div>이런 집은 처음 본다.</div>
모든 방이 중앙 홀에서 사방으로 뻗어져 있다. 
문 하나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별 모양 구조. 
이런 집은 처음 본다.

주교궁 바로 옆에는 높게 솟은 아스토르가 대성당이 있다. 이미 주교궁에서 많이 걸은 상태였고, 다음 마을로 이동해야 해서 시간적인 부담이 컸지만 지나가던 프랑스인 GP아저씨가 “볼 만 해.”라고 은근슬쩍 추천해 주시는 바람에 5유로 입장권을 끊고 또 들어갔다. 아무리 아스트로가가 좋다한들 여기를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일단은 고!

완벽한 좌우 정렬을 볼 때면 쾌감을 느낀다.<div></div><div>1400년대라서 타워크레인도 없었을텐데 어떻게 지은 것일까.</div>
완벽한 좌우 정렬을 볼 때면 쾌감을 느낀다.
1400년대라서 타워크레인도 없었을텐데 어떻게 지은 것일까.

레온 성당에 비해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연세가 들어보이는 분들이 저마다 수화기처럼 생긴 오디오 가이드를 귀에 대고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었다. 나도 오디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그 무리에 합류했다. 오디오의 설명은 생각보다 길었다. 영어로 된 데다가 성경 속 인물들이 계속 거론되어 거의 이해하지 못 했지만 그래도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난 다음, 가장 따뜻했던 곳 앞에 앉아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오전이었다.

하얀 천장에 거미줄이 생긴다면? 예수님 머리에 먼지가 쌓인다면?<div>문득 청소 방법이 궁금해졌다.</div>
하얀 천장에 거미줄이 생긴다면? 예수님 머리에 먼지가 쌓인다면?
문득 청소 방법이 궁금해졌다.

성당을 나오니 해가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1시가 훌쩍 지나 있어서 곧바로 화살표를 찾아 다음 마을로 출발했다. 이미 10km 쯤 걸은 듯 피곤했지만 먼저 출발한 리옹을 따라 잡아야 했다. 저녁 7시, 결국 목적지였던 로센바돈까지 차마 가지 못 하고 바로 전 마을인 Rabanal del Camino에서 체크인을 했다. 

 

꼬불꼬불 꼬불꼬불 맛좋은 라면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나하루에 열개라도 먹을 수 있어 후루룩짭짭 후루룩짭짭 맛좋은라면

굶주린 상태에서 먹는 라면이 얼마나 맛있게요~?
굶주린 상태에서 먹는 라면이 얼마나 맛있게요~?

알베르게에서 1일차 함께 걸었던 한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그리고 고급 정보를 접수했다. 건너편 바에서 라면을 판다는 것. 산티아고 길에서 두 번째 라면을 먹었다. 무려 6유로(8천 원)이지만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니 10유로치의 포만감을 느끼고 그저 행복했다. 먹는 동안 “음~~~!!! 후루룩 쩝쩝 음~~ ” 맛있어 죽겠다는 소리를 너무 크게 냈는지 옆 독일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 왔다. 라면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점을 실컷 설명하며 짧게 대화를 나눴다.

 

알베르게에서 한국인이 순례자를 맞는다면?

Rebanal del Camino에서 묵은 기부형 알베르게.<div> 쉬운 정보로 안내되어 있다.</div>
Rebanal del Camino에서 묵은 기부형 알베르게.
 쉬운 정보로 안내되어 있다.

저녁을 먹은 뒤 저녁 미사를 기다리면서 영국인 할아버지 두 분과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이분들은 무척 친해보였는데 (덤앤더머같은 느낌) 만난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분들이었다. 알고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후 2주 간 알베르게 운영을 맡게 된 자원활동가였다. 자원활동에 대해 흥미를 보이자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 나도 하는데 한국어까지 하는 너라고 못 하겠어?”라고 지원을 권유했다. 한국인이 전체 순례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안내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추천서도 써주겠다며 접수 사이트까지 알려주셨다. 언젠가 순례자들에게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를 바꿔가며 유창하게 설명하는 그런 날이 올까. 즐거운 상상이었다.

체크인을 한국인이 해준다면 얼마나 반가울까!<div>내가 라면도 끓여줄 수도 있고!</div>
체크인을 한국인이 해준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내가 라면도 끓여줄 수도 있고!

이윽고 저녁 9시, 해가 뉘엇뉘엇 지는 시간이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있는 성당으로 이동해 저녁 미사를 드렸다. 스페인어라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자리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홀리해진다. 그런데 미사 도중 갑자기 몸이 차가워지면서 현기증이 핑-하고 돌았다. 사실 초등학생 때부턴가 나는 기립성저혈압이 있다. 젖은 머리에 얇은 옷을 입은 채로 앉았다 일어서길 반복하다보니 순간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온 몸에 힘이 빠졌다. 힘없이 주저 앉아 기도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진정될 때까지 일어나지 못 했다. 몸과 정신이 따로 분리되는 느낌이랄까. 그리곤 눈물이 주루룩 났다. 미사가 끝날 무렵 다시 멀쩡해졌는데, 왜 울었던 것일까. 

 


25일차 32.16km

Rabanal del Camino Roncebadón Cruz de Ferro Manjarín El Acebo Riego de Ambrós Molinaseca Campo de Ponferrada Ponferrada

철의 십자가. 안전하게 산을 넘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곳.<div></div><div>다양한 물건과 메시지가 적힌 돌들로 가득한데, </div><div> 여기에 두고 가면 죄가 사라지거나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br></div>
철의 십자가. 안전하게 산을 넘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곳.
다양한 물건과 메시지가 적힌 돌들로 가득한데, 
 여기에 두고 가면 죄가 사라지거나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Rabanal del Camino는 산중턱에 있어서 일출을 보기 딱 좋은 마을이다. 그래서 새벽에 출발하고자 5시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코고는 소리가 너무 심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나와서 보니 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빛이 없어 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고 심지어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일기예보 확인하지 않은 채, 헤드라이트도 없이 어떻게 새벽 길을 걸으려 했던 건지 참 고우정스럽다는 생각했다. 새벽 향기 맡으며 - 빗소리 들으며 -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이 낙서들은 언제 새겨진 것일까.<div>그리고 어떻게 새긴 걸까. 꽤나 공을 들여야 했을 거다.</div>
이 낙서들은 언제 새겨진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새긴 걸까. 꽤나 공을 들여야 했을 거다.

비오는 가운데 5km 정도 오르막길을 올랐다. 어제 저녁, Rabanal del Camino에서 체크인 하지 않고 이 길을 걸었다면 조난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가파른 산길이었다. 산 꼭대기에 있는 Rocenbadón에서 리옹을 다시 만났다. 호스텔에서 조식까지 먹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로 리옹은 키가 너무 커서 알베르게 침대가 불편하다고 한다. (2m) 주로 목적지가 정해지면 부킹닷컴에서 저렴한 호스텔을 찾아 미리 예약을 한다. 진정한 순례자라면 알베르게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차마 말을 아꼈다.

기껏 열심히 산을 올랐건만 그 뒤에는 내리막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안개를 뚫고 미끄러운 돌 길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걸었다. 거대한 물 웅덩이가 보이면 새 신발이 무사하도록 뜀박질을 해야 했다. 산길인 데다가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 “힘들어 죽겠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려고 할 때 즈음, 구름이 걷히면서 멋진 절경이 펼쳐졌다. 그 뷰를 보며 오늘도 30km를 걸었다. 멋진 길을 걷게 되어 이 순간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내리막 길이 워낙 길다보니 마지막에는 뛰다시피 걸었다. 길 옆으로 수많은 택시가 지나갔는데 연세가 많은 분들이 관절이 약하므로 차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오늘의 목적지 Ponferrada 까지 5km 남짓 남겨놓고 작고 예쁜 호수가 있는 Campo de Ponferrada 바에 자리를 잡았다. 땀 흘린 뒤 아름다운 호수 경관을 보며 레몬맥주를 마시는 시원함이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호수 뷰 한 번 보고, 일기 한 문장 쓰기를 반복하며 그 자리에서 2시간을 머물렀다. 그동안 리옹은 다음 마을로 먼저 갔다. 어차피 나는 알베르게, 그는 호스텔로 갈 거니까 상관없었다. 


26일차 24.67km

Ponferrada Columbrianos Fuentes Nuevas Camponaraya Cacabelos Pieros Valtuille de Arriba Villafranca del Bierzo

Torre del Reloj. 오래 되었다는 시계탑. 
Torre del Reloj. 오래 되었다는 시계탑. 

예쁜 도시가 왜 이리 많은 것인가! Ponferrada도 정말 매력적인 도시였다. 이곳을 최고로 꼽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유는 각각 달랐는데, 한 분은 코엑스처럼 큰 쇼핑센터에서 쇼핑을 맘껏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고, 다른 한 분은 다양한 박물관들이 있어 볼 거리가 많아서라고 했다.

실제로 폰페라다에는 고풍스러운 건물에 음향기기가 아기자기하게 전시되어 있는 라디오 박물관(Museo de La Radio), 1920년부터 1971년까지 운영된 전기 생산 공장을 복원해 생산방법을 실제로 보여준다는 에너지 박물관(Museo de La energía), 약간은 뻔한 철도 박물관(Museo del Ferrocarril) 등 유럽에서 손꼽히는 유명 박물관들이 있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많은 박물관이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 중 한 군데도 방문하지 못 한 게 아쉽지만 전날 아스토르가에서 감상력(박물관 감상 체력)을 다 소모해버렸으니 템플기사단 성(Ponferrada Castle)만 둘러 본 것으로 내게는 충분했다.

 

템플기사단 성(Ponferrada Castle)

영화 <반지의 제왕>이 떠오르는 성. 문은 10시인가 연다. 기다리는 중.
영화 <반지의 제왕>이 떠오르는 성. 문은 10시인가 연다. 기다리는 중.

역시 오픈 시간을 기다리며 시계탑 앞에서 아침을 먹었다. 10시가 되자 크고 무거운 성문이 스스륵 열렸다.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들어서자마자 도시 전경을 보기 위해 성 꼭대기로 향했다. 몸 하나 겨우 지나갈 만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도시가  눈에 보였다. 인구가 꽤 많은 곳이라서 높은 빌딩도 있고, 길에 차도 많았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선지 평화로웠다. (지극히 여행자의 입장. 살다보면 다 똑같을겨)

사진 찍어 줄 사람이 없는 게 단점.
사진 찍어 줄 사람이 없는 게 단점.

먹구름이 아슬아슬 하던 차에 보슬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구석진 자리를 찾아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이른 아침이고  비도 내리고 있어서 지나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고요한  공간이 중세 시대엔 어땠을까. 수백년도 더 된 바닥과 벽을 보면서 영화의 유니버스처럼 중세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마 폭력이 난무하는 위험한 곳일 수도 있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온기를 나누던 방일수도 있겠지. 종종 기사단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행진을 하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축제 시기를 잘 맞춰 오는 것도 좋겠지만 왠지 오늘은 사람 한 명 없는 정적이 좋았다. 오후가 되어 하늘이 차츰 맑아졌다. 지금이다! 하고 다음 마을로 출발했다.   

 

성전기사단은 1119년 설립되어 1129년경부터 1312년경까지 활동한 천주교 수도회의 일종이다. 여러 기사단 중 가장 부유하고 권세가강했으며, 세계 전역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규모와 권력이 급속히 성장하여 기독교 금융의 주요 기관이 되었다. 기사단의 세력을 경계한국가와 교황청에서 1312년 조직을 해산시키면서 성전기사단은 공식적으로 사라진다. 유럽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집단이 갑작스럽게 거세당하자 이에 관한 추측, 전설, 음모론이 여러 세월 동안 유통되었다.

위키피아(기사단이 뭔지 몰라서 찾아봄)

 


옆으로 내리는 비

저 숙소에 들어가서 방 있냐고 물어볼 뻔
저 숙소에 들어가서 방 있냐고 물어볼 뻔

6시간을 걸어, 목적지까지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비가 쏟아졌다. 그것도 옆으로. 내 우산은 속수무책으로 뒤집혔다. 배낭 커버가 없어서 침낭이 홀딱 젖을 판이었다. 보통은 운이 좋아서 피할 수 있는 바가 바로 보였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왕좌왕 정신없이 있다가 집 옆으로 살짝 튀어나온 지붕이 있어 그쪽으로 피했다. 비는 30분이 넘도록 계속 내렸다. 온 몸은 젖어버리고 침낭만 겨우 보호하며 기다렸다. 구름 때문인지 길은 어두웠고, 좁은 길을 누구라도 나타날까 두려웠다. 천둥 소리 마저도 무섭게 느껴졌다. 그때, 우비를 입은 한 사람이 내쪽으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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