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

다시 오고 싶을 게 분명한 이 길

2023.05.28 | 조회 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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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파리로 떠난 우정의 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나의 순례길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 1. No transport. 배낭 배달하지 않을 것. 2. No reservation. 알베르게를 미리 예약하지 않을 것. 3. No texi or bus. 차를 타지 않을 것.
환영해 ! 
환영해 ! 
매일 하는 일도 딱 세 가지다. 1. Walk safe. 잘 걷기 2. Eat some healthy food. 잘 먹기 3. Have a good sleep. 잘 자기
걷자
걷자

3일차 14.82km

Larrasoaña Aquerreta Zuriáin Iroz Zabaldica Arleta Trinidad de Arre Villava Burlada Pamplona

길 옆의 벽화 보는 재미도 있음 산티아고가 몇 km 남았는지 상기시켜주는 건 좀 맘에 안 듦
길 옆의 벽화 보는 재미도 있음 산티아고가 몇 km 남았는지 상기시켜주는 건 좀 맘에 안 듦

Roncesvalles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은 보통 Zubiri까지 걷는다. 하지만 나는 5km 정도  걸어서 Larrasoaña라는 마을에서 머물었다. 작은 마을의 조용한 숙소에서 묵는  선호하는 편이다. 조금  가는  길에서 독일인 리옹 랄프 만났다. 둘은 Zubiri 자리가 없어서  간다고 했다. 이때 우리 셋은 왠지 모르게 급속도로 친해졌고, 다음 날인 오늘도 함께 팜플로나까지 걸었다. 리옹은 키가 2m. 랄프도 190cm 훌쩍 넘는다.   사이에서, 둘의 보폭을 따라 열심히 걸었다종종 둘이 독일어로 대화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없었지만 낯선 언어라 재밌었다. 걸음에 집중하며 가다보니 금세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문제는 중간에  발이 박살났다는 거다. 숙소에서 양말을 벗고 보니 복숭아뼈와 발등이 상당히 부어 있었다. 걸을  미처 몰랐는데 너무 무리한  같았다. 앞으로 남은 30일을 걸어야 하니까, 조금 쉬어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숙소를 2박으로 예약했다. 리옹과 랄프는 계속 이어서 걷는다고 하니 여기서 안녕.

 

프로페셔널리티

아저씨가 맥주 사줌 개꿀맛
아저씨가 맥주 사줌 개꿀맛

걷는 중에 랄프가 물었다. ”You said you are 34 years old and what is your professionality?” 나이가 많은데  전문성이 뭐니라는 질문이었다. 글쎄다. 내가 해왔던 일들을 설명하는 건 쉬웠는데, 전문성이라니. 뭐라 답하기 어려웠다. 랄프는 이미 토목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하고 은퇴한 상태로, 러시아와 아프리카  해외근무도 많이 했다고 하니 전문성이 분명해 보였다그후 혼자 걸을 때마다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 고민했다. 나도 명쾌하게 답하고 싶은데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야 할까. 산티아고 길이 끝날  쯤이면 알게 될까. 

 

낭만의 도시 파리, 즉 라이프는 없는 도시 파리

푸드트럭 사랑해
푸드트럭 사랑해

순례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사이의 거리가 10km 되면 항상 중간에 쉬어   있는 푸드트럭이 기다리고 있다. 주로 바나나 하나 먹으며 쉬어가는 편이다. 잠시 앉아 있는 동안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4명의 유럽인을 만났다. 아이슬란드인, 아일랜드인 커플, 스페인에 살고 있는 루마니아인.   한명이 파리에서 3 정도 일을 하며 살았다고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어서 한명씩 돌아가며 파리생활이 얼마나 낭만뿐인지 전해주었다. 말이 워낙 빨라서 100%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차라리 다행인가) 파리도 그냥 도시일 뿐이니 서울과 다를 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만남의 장 알베르게

미래라 아줌니 잼비앙 !
미래라 아줌니 잼비앙 !

알베르게에 자리를 배정받고 나면 짐을 풀며 옆 침대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오늘 내 옆 침대 친구는 Mirela였다. 영국에 사는 루마니아인 아주머니로, 영어가 유창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대화는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가장 아픈 곳이 어디인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얘기했다. 감사하게도 나의 아픈 발을 위해 약국에서 막 사온 오일, 크림, 파스, 테이프 등을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곧이어 우리의 대화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뉴질랜드에서 온 아주머니 Wandy와 그 친구분(이름 까먹음)도 합류했다. 그동안 수다를 어떻게 참아오신 건지 세 분은 그 자리에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무슨 라디오를 틀어 놓은 것 처럼. 아쉽지만 이분들도 다음날 계속해 걷는다고 하니 여기서 안녕.


4일차 0km

Pamplona

팜플로나 시내
팜플로나 시내
브루도 와인 다 마심 쯉쯉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 다 마심
브루도 와인 다 마심 쯉쯉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 다 마심

쉬어 가는 날이다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침대에 누워 ‘택배기사’를 정주행하고, 돈키호테를 읽었다스페인이니까 돈키호테를 읽어야지 하고 알라딘에서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조승우의 뮤지컬도 본 터라 재밌게 읽히긴 했지만 잠이 솔솔왔다그렇게 빈둥대다가 배가 고파서 3시쯤 주방으로 갔다어린 여자애가 파스타를 요리하고 있었다배가 고파서 “이 파스타 꺼야?“라고 물으니 ”응 내꺼라고 답하며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토마토소스가 있어너도 해먹어.”라고 추천했다. 뭐부터 해야 할 지 몰라서 머뭇거리자 옆에 와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도와줬다몇 분을 끓여야 하고세기는 어떻게 조절하며면의 양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 지 요리 방법이 너무 간단해서 파스타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머쓱했다덕분에 공짜로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팜플로나 시내로 나갔다. 아직까지는 유럽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돌아오는 길에 까르푸에 들려 70%할인 하는 4유로 짜리 화이트와인을 사서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은 와인 한 잔으로 마무리했다.

 


 5일차 23.65km

 Pamplona Cizur Menor Zariquiegui Uterga Muruzábal Obanos Puente la Reina 

누가 언제 그렸을까? 
누가 언제 그렸을까? 

하루를 통으로 쉬었는데도 불구하고 발등이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아지긴 커녕 고통이 심했다. 한국에서도 종종 발등이 부어서 정형외과를  적이 있다. 물리치료를 받고 주사를 맞아도  낫는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아프다고 해서 멈출  없었다. 하여 절뚝거리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걷는 자세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괜찮아?” “스틱 줄까?” “신발 줄까?”  많은 관심을 받았다아침 7시에 출발해서 저녁 6시까지 수 많은 관심을 뚫고 목적지인 Puente la Reina 도착했다.

쉽지 않은 코스였다
쉽지 않은 코스였다

 당연히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었다. 체크인은 1시부터 시작하니까 굉장히 늦게 도착한 거였. 절뚝거리며 침대를 찾아 헤매는 나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음 마을인 Mañeru 알베르게까지 더 갈까 하고 전화로 물어보니 그곳에도 방이 없다고 했다. 하는  없이 50유로짜리 1인실 방을 잡았다. 

남들에게 추천할 정도는 아님 왜 방이 남았겠어^^
남들에게 추천할 정도는 아님 왜 방이 남았겠어^^

정신을 차려보니 욕조에서 뜨거운 물을 틀고, 불어터진 발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피로가  풀렸다. 하지만 누워서 아픈 발을 보고 있으니  짓을  하고 있나 회의감이 들었다. 거지꼴로 고생을 사서 하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과연 내가 왜 이 길을 걸어야만 했는지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쯤이면 알게 될까.

 

거북이 할아버지

할아버지 꼬옥 건강하세욥
할아버지 꼬옥 건강하세욥

파워 워킹을   있었던 때,  앞으로 좁은 보폭으로 걷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장우산을 쥐고,  가방을   두꺼운 다리로 아주 천천히 일정한 템포로 걷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할아버지의 가방  칸에는   권이 꽂혀 있었는데 책들이 비에 젖진 않을지 걱정인 동시에 어떤 책을 들고 다니는   궁금했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속도로, 다른 거리를 걷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30km씩 걸어서 28일 만에 완주하고, 누군가는 10km씩 걸어서 80일을 걷는다. 어차피 산티아고로 가는  똑같다. 거북이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 길에서 드는 생각, 갖는 결심, 드는 감정, 나누는 대화, 읽는 글귀가  중요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6일차 31.22km

Puente la Reina Mañeru Cirauqui Villatuerta Estella (Ayegui) Luquin

카미노 시. 읽고 싶다. 해석하고 싶다..
카미노 시. 읽고 싶다. 해석하고 싶다..

처음으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 날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짐을 싸고 일찍 나왔을 때까지는 1인실에서   탓인지 컨디션이 무척 좋았다. 발은 여전히 아팠지만 천천히 가니까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걷겠노라 다짐하며 시작했다. 그렇게 20km 열심히 걸어서 Estella 도착했다.  도시라서 많이들 머무는 곳이지만  다음 마을에서 머물 생각이었다. 목적지까지 1km 남은 지점에서 편의점을 발견하고 앉아 맥주를 3캔이나 마셨다. 스페인 현지 사람들과 1시간 정도 수다를  , 오후 4시쯤 슬금슬금 다음 마을로 출발했다. 겨우 1km 남았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벤치에 앉아 엄마랑 통화도 했다. 피곤함 때문인지 꽤나 취해 있었다. 1시간을 통화하며 보냈더니 휴대폰 배터리는 5%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사진을 못 찍어서 이건 다른 길임
그때 사진을 못 찍어서 이건 다른 길임

그후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길이 험해졌다.  언덕을 넘으면 마을이 나올까? 기대하며  언덕을 넘고,  넘기를 서너번 반복해도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휴대폰은 어느새 꺼져있었다. 심지어 취해서 길도 잘못 들어 다시 돌아가야 했다. 30분을  까먹었다. 발등이 너무 아파서, 더는  걸을  같을  마을이 나왔다.  순간 눈물이 났다. 안도의 눈물이었다. 

 

I JUST NEED A HUG

눈이 팅팅 부었다. 그랜드 칠드런도 있는 할머니 분들인데 왜 이렇게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인가
눈이 팅팅 부었다. 그랜드 칠드런도 있는 할머니 분들인데 왜 이렇게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인가

스페인은  9시가 훌쩍 넘어야 해가 진다. 알베르게에 도착한  8 30분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벌레들과 산에서 자야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어가 사람을 기다렸다. 한참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당연하지 누가  시간에 체크인을 하나.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기에 알베르게도 한 곳 뿐이었다.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알베르게에 머무는  사람이 와서 여기서 묵을거야? 계산은 내일 하고 일단 올라와 방이 있어.”하며 나를 방으로 안내해줬. 아픈 발을 끌고 기다시피 3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 어머! 프란시스!!“ 팜플로나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진이  빠져있는 나를 힘껏 안아주셨다. 어서 오라고, 수고 많았다고, 만나서 반갑다고, 이제 안심하라고 나를 토닥여주셨다. 이때  눈물이 와락 나버렸다. 이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Estella에서 순례길이  갈래로 나뉜다는 사실을 얘기해주며 그곳에서 10km 떨어진 마을이라고 설명해줬다. 1km  알고 10km 걷다니 내가 미쳤지.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빨래까지 했다. 그리고 잠드는 그 순간까지 여기 세 분이 계셔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알라뷰 하고 마음을 전했다. 그래도 부족하다. 부족하다...


7일차 19.84km

Luquin Los Arcos Sansol Torres del Rio

아파서 그렇지 기분은 좋아
아파서 그렇지 기분은 좋아

굳어 있는 발을 쥐고 늦게까지 잠을 자다가 10시쯤 나왔다. 남들 먹고 남은 설거지까지  하고, 침대를 정리할 때까지도 리셉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공짜 숙박을  셈이다.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는 걸까. 일을  때도 남들은 6시면 끝내고 다음을 기약하는데 나는 10시까지 붙들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걷는 것도, 남들은 2시면 끝내는데 나는 저녁 7시까지 걷는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왜 이러는 걸까.

 

쥬 쉬 꼬헤엔

링다랑 사진을 못 찍음. 대신 영상은 있지롱
링다랑 사진을 못 찍음. 대신 영상은 있지롱

길에서 대만인 링다를 만났다. 나보다 키가 작았는데 헤어드라이기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지난 알베르게에서 블랙핑크의 댄스를 추며 놀았다고 하고,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나영석 PD의 예능 프로그램인 ‘스페인 하숙’을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한국의 위상을 실감하며 우리는 결혼, 연애, 일 등 사는 이야기까지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발 상태가 좋지 않은 관계로 그 친구는 먼저 앞질러 갔다. 그후로 만나지 못 했다. 언젠가 길 위에서 보겠지.   

 

감당할 수 있는 고통

퉁퉁 부어서 복숭아뼈가 보이지 않는다
퉁퉁 부어서 복숭아뼈가 보이지 않는다

아픈 곳이 두 발을 옮겨다닌다.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 걷다가 다시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고 걸어야 하니 누가 보면 쟤 꾀병인가? 할 정도로 이상한 상황이다. 다행스럽게도 동시에 아파서 걷지 못하는 상황은 오지 않는다. 항상 절뚝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갈 있을 정도까지만 아프다. 아침 7시에 나와서 하는 거라곤 걷기 뿐이니 어쩌면 아픈 게 당연하다. 고통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걷지 못 할 정도로 근육이 망가져버리면 산티아고 순례를 포기해야만 할까 하는 걱정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다시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물론 힘차게 걸을 수는 없다. 파워워킹이 가능하던 첫 날의 컨디션이 그저 그립다.


8일차 32.17km

Torres del Rio Viana Logroño Navarrete 

Sansol 마을 뒤로 뜨는 태양
Sansol 마을 뒤로 뜨는 태양

지난밤, 코고는 소리가 천둥소리와 비슷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실감했다. 가벽에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헤드폰을 쓰고 겨우 잠들었다. 하지만 새벽 3시, 코를 고는 소리에 놀란 건지 악몽을 꾼 건지 모르겠으나 한 여자 분이 갑자기 비명소리를 질렀다. “Sorry”라고 하고 다시 잠잠해졌지만 바로 아래 침대였던 나도 너무 놀란 나머지 새벽 4시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야 했다. 잠도 안 오는 터라 새벽 5시,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두웠지만 걸을만 했고, 어느새 산 중턱에 올라 일출을 바라봤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이게 행복이구나.

 

Buen Camino. 당신의 걸음을 응원합니다.

나댓 아주머니 얼굴도 작으면서 왜 그렇게 뒤로 가시는 거예욧 <br>감기에 걸려서 현재 못 걷고 호텔에서 쉬고 계신다는데 곧 다시 만날 거다
나댓 아주머니 얼굴도 작으면서 왜 그렇게 뒤로 가시는 거예욧
감기에 걸려서 현재 못 걷고 호텔에서 쉬고 계신다는데 곧 다시 만날 거다

저녁 늦게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어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마주친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격한 포옹과 비주를 주고받는다. 특히 나는 1km 20분 속력으로, 느리게 걷기 때문에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하루에 부엔까미노라는 인사를 얼마나 많이 하는 것인지 세다가 포기했다. 아무튼 나의 인사를 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먼저 도착해, 나를 반겨준다. 하루 정해진 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데에 대한 축하와 함께. 우리는 모두 각자 걷고 있지만 서로를 격하게 응원하는 한 팀이다. 리옹에 사는 나댓 아주머니, 자주 마주치는 독일 학생(이름 모름)과 독일에 사는 엔젤 할아버지, 그 외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인사를 주고 받았던 수 많은 사람들 모두에게 인사를 보낸다. 부엔 까미노.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랑 하는 일일 소개팅

같이 십자가를 꽂음 꽁냥 꽁냥 <br>나두 알아 다 부질 없는 거
같이 십자가를 꽂음 꽁냥 꽁냥
나두 알아 다 부질 없는 거

어제 길에서 잠시 마주친 오스트리아인 로렌스를 다시 만났다. 나의 느린 걸음에 맞춰주며 무려 32km를 같이 걸었다. 서로의 사진도 찍어주고, 대성당에 들어가 미사도 함께 드렸다. 가는 도중 바에서 맥주도 마셨다. 그는 이번이 두 번째 순례인데 이번에는 아버지와 함께 와서 매일 30km를 걸어야 한다고 했다. 이 친구는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까지 할 줄 알았다. 그래서 각 국의 유명한 노래를 내게 소개해주었다. 나도 잔나비와 장기하, 아이유의 노래를 소개했다. 기타를 칠 줄 안다고 하니, 왠지 좋아할 것 같은 노래만 골랐다. 금세 따라 부르고 흥얼거릴 만큼 취향에 맞는 것 같았다. 그는 클래식과 미술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마침 내 휴대폰의 배경화면이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쉴레의 그림이어서 반가워했다. 하루 종일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자기 일기장에 써달래서 캘리남김<br>얘는 일기장에 뭐라고 쓴 걸까. <br>독일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자기 일기장에 써달래서 캘리남김
얘는 일기장에 뭐라고 쓴 걸까.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9일차 21.78km

Navarrete Ventosa Nájera Azofra

아침
아침

로렌스와 걷기를 시작했지만 내 속도는 어제보다 더 느려졌다. 10km 정도 걸었을 때 쯤 쉬어주기 위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토스트와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지난 9일 간의 일기를 썼다. 그동안 마주쳤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와서 함께 앉아 있다가 얼마 있어 다시 걷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일기에 집중하며 앉아 있는데, 리옹을 다시 만났다. 그는 혼자 걷기 심심했다면서 이후 나의 느린 속력에 맞춰주며 함께 걷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바에서 맥주도 마시고, 거리의 공연도 보며 걸었다. 늦은 7시가 되어서야 목적지 Azofra에 도착해 요상한 알베르게에서 묵게 되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한국인들은 다 별난 사람들 뿐

한국분들 브로맨스 폴폴 <br>성함은 모르지만 초상권 허락 받음
한국분들 브로맨스 폴폴
성함은 모르지만 초상권 허락 받음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카페테리아에서 아시아인 네 명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먼저 체크인을 하고, 샤워, 빨래 등을 한 후 느즈막히 내려가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한국인 부부와 홍콩인 부부였다. 한국인 부부는 내게 “한국인이었구나!“하고 놀라며 ”여기서 만난 남자친구야?”라며 리옹과 나의 관계를 물었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며 라면까지 얻어 먹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코 라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선물한 이 부부는 40대 중반에 같이 퇴사를 하고 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향후 한국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열어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하는 한국말이라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리옹 가방과 내 가방 크기 비교.<br>저 큰 가방에 각종 과일 갖고 다니면서 나눠줌.
리옹 가방과 내 가방 크기 비교.
저 큰 가방에 각종 과일 갖고 다니면서 나눠줌.

10일차 22.02km

Azofra Cirueña Santo Domingo de la Calzada Grañón Redecilla del Camino

하늘로 점프하라는 화살표?
하늘로 점프하라는 화살표?

산티아고 길은 별난 사람이 많은 듯 하다. 그의 이름은 . 40대로 추정. 캐나다인이고 몽골에서 산다고 했다. 리옹과 맥주를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맥주 큰 잔을 가져오더니 자연스럽게 자리에 착석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 스쿨오브락의 잭블랙 같이 말이 상당히 빠르고 많았으며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정신없는 사람이었다. 먼저 ”There is a funny story”라고 운을 띄운다. 그리고는 별별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중간 중간 프리킹 퍼킹 쉿 등의 비속어가 들려 거슬리긴 했으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Santo Domigo de la Calzada까지 6km를 같이 걸어서 맥주를 한 잔 더 마시고 안녕했다.

 

숙소와 양말 교환하기

레지던스에 있던 고양이들
레지던스에 있던 고양이들

닉은 자신이 호텔과 레지던스 두 개를 예약해 놓아서 방을 하나 버려야 한다고 했다. 같은 날 두 숙소를 예약하다니 닉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호텔은 맥주를 마시던 마을에 있고, 레지던스는 7km 더 가야 하는 Grañón에 있었다. 닉은 더이상 걸을 힘이 없다며 내게 Grañón 방을 공짜로 주겠다고 했다. 왠지 그냥 받기엔 께름칙했다. 그래서 그가 계속 칭찬하던 발가락 양말을 건넸다. 누차 거절하더니 굉장히 만족해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멋진 거래를 마치고 1시간 가량 더 걸어 레지던스에 도착했다. 개인 방과 개인 화장실이 갖춰진 방이라니. 얼른 체크인을 마치고 앉아 있는데, 저 멀리에서 닉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그 순간 소름이 끼쳤다. 저 인간 왜 여기 오지? 이미 나 체크인 끝냈는데?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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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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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탱탱

    0
    11 months 전

    와.. 다음 이야기 너무 궁금한데 ㅋㅋㅋ 감질나

    ㄴ 답글
  • SoniaJ

    0
    11 months 전

    Buen camino !

    ㄴ 답글
  • 0
    11 months 전

    별일 없었으니 글 썼겠지만 빨리 다음 글…🥹

    ㄴ 답글
  • hahaeun

    0
    11 months 전

    아니 이야기 이렇게 끊으면 어떡합니까~ 다음 이야기 주세요!~

    ㄴ 답글
  • 파리우쟁

    0
    8 months 전

    아주 놀라운 소식, 이 닉이라는 녀석을 벨기에 여행할 때 호스텔에서 또 만났답니다. 정말 세상 좁죠? 제가 먼저 그를 알아보고 소름끼치더라고요. 마음을 가다듬고 나가서 먼저 인사를 건냈어요. 여기서 뭐하고 있나 궁금했거든요. 여전히 여행 중이었대요. 양말은 버렸다고 미안하다고 했고요. 이땐 술에 덜 취해 있어서 조금 멀쩡한 상태였어요. 참 신기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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