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잦은 해외 출장이 논란이다. 당연히 야당에서는 “외유”라고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영부인의 외국 출장도 같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의 방문 사진은 보수층에게 공분의 대상이었다. 집권 20개월에 윤 대통령은 16회 외국 출장을 통해 외교에 진력 했다. 같은 기간에 이명박 대통령의 16회, 문재인 대통령이 15회인 것과 비교하면 야당이나 일부 국민들의 “잦은 외유”라는 말은 그리 공정한 비판이라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런 비난을 받는 데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하나는 금년에 13회로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책정된 예산 249억을 소진하고 예비비 329억원을 끌어다 사용했다고 하니 본래예산의 두 배가 넘는 돈을 쓴 것이다. 만약 Expo 유치에 성공했다면 지금의 비난은 설 자리가 협소했을 것이다.
외교 출장이 잦다는 비난을 받는 근본적 이유는 낮은 국정 지지율이다. 강서구 구청장 보궐 선거 참패 이후에 여당은 자중지란 속에 있고 보수 국민들은 내년 총선에서 같은 결과가 재현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빠져들고 있는데 대통령의 잦은 출장이 내치의 포기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김정숙 여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김건희 여사의 리스크도 부부의 외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po 실패 이후 이러한 비판을 의식했는지 대통령실은 이번 방문이 한국과 네덜란드와의 “반도체 동맹”으로 격상하기 위한 경제 외교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고 한국의 반도체 기업의 총수 삼성의 이재용회장과 SK의 최태원 회장을 대동하고 떠났다. 들려오는 소식은 네덜란드 독점적 반도체 장비회사 ASML 한국에 합작으로 대규모 연구 센터를 위한 투자를 하겠다는 합의를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정말 한국과 네덜란드와의 “반도체 동맹”은 필요하고 대통령이 나서야 하는 일인가? 우리는 이 정치적 수사에 대해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에 따라 달리 생각하는 진영 논리에 빠질 위험이 있지만 이는 경제학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반도체 동맹이란 기업간 거래가 아니라 국가간 약속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가간 거래나 추후 거래에 대한 제도적이고 정치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면 정부간 협의와 약속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동맹”이라는 윤 대통령의 외교 명분이 부당하거나 적절하지 못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네덜란드와 한국 사이의 반도체 기업들 간의 거래에 정부가 관여하거나 도움을 줄 일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반도체 산업에서의 관계는 갈등관계가 아니다. ASML는 반도체 제조 장비 회사이고 반도체 제조회사들이 고객이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ASML의 거대 고객사이다. 아무리 ASML이 이 분야에 독점적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을 팔아야 할 입장인 것이다. 혹자는 이 회사의 독점적이고 공급 물량이 부족할 때 한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의 기업들에 우선해서 공급을 받을 필요가 있어서 반도체 동맹이 필요한 것처럼 말한다. 그 경우라면 돈을 더 많이 주는 고객에게 파는 것이지 네덜란드라는 선진국이 정부가 자국의 기업에게 대만 대신 한국이 동맹이니 이리 팔라는 관치 경제를 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대통령 외유때마다 들먹이는 투자 유치의 과장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후진국 증상이다. 기업이 이익이 될 것으로 인식해서 투자하는 것이지 대통령이나 수상이 정상회담해서 투자하는 기업이 지금 세상에 어디 있는가? ASML이 한국의 기업과 R&D 투자를 결정했다면 그것은 대통령과 무관한 것이다. ASML이 삼성과 합작 투자를 결정한 것은 제조 설비는 제조 공법에 따라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제품과 제조 공법에서 삼성이 앞서서 나가기 때문이지 대통령이 부탁해서가 아니다. 기업의 성과를 대통령의 외교 성과로 가로채는 이 후진국 관행을 이제는 끊을 때가 되었다. 외국인 투자가 어렵거나 불안하지 않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대통령의 일이지만 개별 투자 유치와 교역, 합작 투자, 그리고 초격차를 만드는 기업들이 하는 것이다. 정말 경제를 살리고 싶으면 국내에서 노동개혁, 규제 개혁, 교육 개혁해야지 해외 순방으로 되는 일 없다.
두번째 특정 산업에 대해 국가간 동맹이라는 수사를 쓰는 것은 국제 교역이 정부간 또는 국가간 거래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무역은 기업간 개인간 거래일 뿐이다. ASML은 돈이되니까 삼성과 SK에 파는 것이고 이 두 회사는 경쟁회사인 일본회사의 장비보다 이 장비가 우수하니까 구매할 뿐이다. 이미 한국은 EU와 FTA가 맺어진 나라라서 네덜란드가 독자적인 관세나 무역장벽을 조성할 이유도 없다.
세번째는 “반도체 동맹”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 외교적으로 현명한 처사인가 하는 점이다. 반도체 동맹이라는 말은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과 대 중국 첨단 기술 통제를 위해 제안한 반도체 4개국 동맹 (Chip 4)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만의 과도한 반도체 공급 의존성을 줄이고 중국에 첨단 설비나 반도체 공급을 제한하기 위한 미국의 대중국 헤게모니 전략의 일환이다. 당연히 중국은 긴장하고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동맹의 일원인 한국, 일본, 대만 누구도 바이든의 반도체 동맹이 선뜻 나사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이 동맹이 미국에는 안보상 또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지 몰라도 나머지 아시아의 반도체 강국 3국에는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경제적 이해에 반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2020년 중국의 반도체 수입을 보면 대만으로부터 38%, 한국에서 22%, 그리고 일본이 7%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의 48%를 중국에다 팔고 있다.
미국이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중국내 한국 기업들의 공장에 첨단 설비를 공급하지 못하게 통제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이 입을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SK 하이닉스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미국의 반도체 법은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도록 만들고 있다. 생산 원가도 훨씬 높지만 지금 미 우선주의의 압력에 의한 투자가 진행 중이다. 이미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은 우리 반도체 관련 산업에 큰 피해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 강화에 대응해서 중국은 적극적으로 대응책에 나서며 반도체 굴기에 매진하고 있다. 화웨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자체 반도체로 스마트폰을 출시해서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고. 확인이 더 필요하지만 ASML이 독점적으로 갖고 있는 노광장비도 자체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대 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은 지난 해에 비해 금년도 39%나 줄어들고 있는 불황을 맞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동맹은 한국의 이해에는 조금도 이익이 되지 않는 것으로 같은 이유로 대만이나 일본도 소극적이다. 반대로 반도체 동맹은 중국에게는 반중 동맹으로 인식되는 언어인 것이다. 따라서 반도체 동맹을 선전할수록 중국의 의심만 증대된다.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은 실체도 없고 떠들어서 득이 될 구호도 아니다. 대기업 총수들은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에 끌려 다니지 않으면 법정에 들락거리느라 바쁘다. 소는 누가 키우나?
P.S. 이글은 뉴스스피릿(www.newsspirit.kr)의 정기 칼럼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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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보이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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