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의 당시 보수 야당 통합당이 참패하고 나서 보수권 일각은
급속하게 부정선거 주장에 빠져들었다. 어느 나라나 당파적이고 정치에 깊은 관심이 있는 국민들은 지지당이
패배했을 때 부정선거 음모론의 유혹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일각에 불어온 이 부정선거 주장은 지금까지도 보수의 단결과 선거의 승리 가능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안이다. 이런 부정선거 가설은 선동적인 내용으로 구독자를 현혹하는 무책임한 소셜미디어의 정치 유튜버들의 영향력과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는 수단으로도 아주 유용하다는 것도 증명되고 있다.
온갖 억측과 법원에서는 모조리 배척된 “명백한 증거”들이 지금도 난무한다. 일부 종교 지도자들도 여기에 편승하고 있다. 이 부정선거 주장은 미국의 트럼프와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과 겹치면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언론인들은 이 주장에 반박하면서 이를 굳게 믿는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있다. 개인적인 수난은 차치하고 지금도 사전 선거나 부재자 투표, 우편 투표가 부정선거의 수단이라며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의 의욕을 꺾고 있고 IT 강국에서 디지털 기기들을 배제한 원시적 제도로 회귀하자는 주장들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정치적 가설을 음모론이라고 부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이 주장이 제기되던 초반의 주장들은 쉽사리 통계나 확률 이론으로 반증이 가능한 엉뚱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정선거 주장자들이 전달한 데이터를 가지고 성급한 논문 원고를 써서 우리나라에 유명해진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의 부정선거 가능성을 주장한 논문은 그가 한국의 선거제도의 이해없이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 너무 명백했고, 유경준 전 통계청장의 논문으로도 반박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이를 주장하는 쪽은 다른 의견과 토론과 검증을 거부한다는 것이 또한 이유다. 내 이름까지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끊임없이 오늘날까지 부정선거 코인털이에 여념이 없는 공병호TV나 다른 유투버들, 그리고 나를 절망하게 했던 교수들의 시민단체인 "정의를 사랑하는 교수 모임(정교모)" 마저 나의 토론과 검증 제안을 거부했었다. 뒤늦게 음모론에 편승한 황교안 전 대표는 나의 항의에 토론하자고 제안 하더니, 공개 방송에서 하자는 나의 제안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그가 연락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주변 사람들도 어느새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는 검증과 토론을 거부하는 일방적 태도가 음모론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믿는다.
한국의 부정선거 주장이 비겁하고 엉뚱한 것은 부정을 저지른 범인들을 명시적으로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부정선거 주장을 하며 특정 투표 기기 회사나, 특정 선거 개표 종사자들을 지목했던 전 뉴욕시장 길리아니와, 팍스 뉴스는 막대한 배상금의 처벌을 판결 받았다. 그리고 그 정점의 트럼프는 기소되었다. 한국의 부정선거 주장들은 한번도 혐의자를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 음모론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집단 (딥 스테이트니 숨겨진 막강한 조직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완벽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이다. 한국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부정선거가 현재의 보수 대통령의 아래에서도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딥 스테이트"를 믿는 전형적인 음모론자들의 모습을 띄고 있다.
내가 이들의 폭력적이고 인신공격적인 태도에 진절머리를 내고, 한국의 보수권의 지력을 의심하게 된 이슈를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 야권에서 지난 총선 전 상황에 대한 증언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22일에 한겨레 신문은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의 심층 인터뷰를 보도했다 (“문 전 대통령, 서점 하실 때 아니다…. 정권 내주고 평가, 성찰없어”의 기사다.) 그가 정의당이 압박해서 얻어낸 연동형 비례 대표제도로 인해 정의당이 폭망하게 된 배경에 대해 변명하는 자서전 “심상정, 우고의 길”을 출간하였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그의 진보 정치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2020년 21대 총선에 관한 발언이다. 당시 유시민이 심상정 의원에게 와서 했다는 발언으로 “21대 총선을 몇 개월 앞두고 이미 민주당 지도부는 160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라고 증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유 (시민) 작가가 제게 민주당 수뇌부는 160석은 무조건 넘고 경우에 따라서는 180석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을 때”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어준 같은 친민주 스피커는 민주당은 과반 의석도 안된다고 위기의식을 부추키며” 정의당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이미 민주당은 선거 이전에 160-180석을 자신했던 선거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증언이 한겨레 신문의 최근 다른 기사에 보도되었다. 1월 24일자의 성한용 선임기자의 민주당 총선 패배를 걱정하는 기사 “민주당, 총선 박빙 열세… 책임 두려워 위기 아닌 척”이 그것이다. 이 기사에서도 당시 민주당이 180석 승리를 정확하게 예측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서 180석 확보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고 당시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지역구 163석, 비례대표
17석’을 정확히 예측한 ‘족집게’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2019년부터 선거가 있던 2020년 초까지 정당지지도에서 민주당이 압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2019년
1월 민주당 40%와 자유한국당 23%의 지지도 격차는 2020년 1월
민주당 39%, 자유한국당 22%로 엄청난 지지율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 기자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공안 검사 출신 황교안 대표는 ‘우한 폐렴’이라며 색깔론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를 공격했습니다. 역풍이 불었습니다. 민주당이
월등히 앞선 정당 지지도가 좁혀지지 않은 채 4.15 총선이 치루어졌습니다.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의 후신) 지도부는 끝까지 여론조사 수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당 지지도
격차는 고스란히 실제 의석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부정선거 음모론에 편승하는 사람들은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런 반과학, 반지성의 태도로는 결코 민주당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 기사가 밝히고 있는 또 하나의 모습은 민주당과 김어준과 같은 외곽 세력이 하나가 되어 역할 분담을 하며 선거 운동을
한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제도권 정당과 툭하면 반목하며 경원시하는 우파의 모습과는 대비된다.
불리하게 흘러가는 선거에 대해 상대당인 국민의힘 전신이 통합당이 모르지 않았다. 내가 몇 번
언급했지만 당시 한국당이 여러 보수 정파를 묶어 통합당으로 당세를 정비할 때 구도를 주도했던 박형준 부산시장은 내게 협조를 부탁하면서 통합당이
130석 정도는 가능하다는 목표를 제시한 적이 있다. 물론 선거를 잘 치루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당시 탄핵의
후폭풍을 극복하지 못한 보수 정당의 현실은 이렇듯 쉽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 편집을 하는 부정선거 주장자들이 아니라면, 당시 정치 초년생
황교안 대표가 선거를 어떻게 전략 없이 엉망으로 이끌었는지 잘 안다. 비래 위성 정당의 공천은 원천 무효화 되었고 (이때 책임이 있는 공병호는 음모론의 메가폰으로 변모했다), 당대표와 따로 움직인 공천위의 결정으로 호떡 공천이라고 조롱을 받는 공천은 파동의 연속이었고, 선거 과정에 막말을 내세워 뛰고 있는 후보자들을 제명하는 등 나쁜 뉴스만을 계속 생산했다.
성한용 기자가 분석했듯이, 정치 초보 황교안 대표는 코비드 19의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는 무모한 선거를 치루었다. 명함도 돌리지 못하는데 뒤늦은 공천으로 낯선 지역구에 후보자들을 배치하는가 하면, 문재인의 판데믹 지원금을 금권 선거라고 공박하더니, 자신이 후보로 나서더니 그보다 3배 이상의 지원금을 공약하는 일관성 부족의 메세지를 내놓았다. 위기 시 국민이 국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친다는 사실은 감도 잡지 못했었다.
그리고 통합당의 당직자들이 패색이 짙어 지고 여론 조사의 결과가 악화되자 선거 몇일을 남겨두고는 내게 이대로
가면 개헌저지선 100석도 힘들겠다며 통합당 지지를 호소해 달라고 부탁해왔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지지의 방송을 했었다.
이게 지금 반보수 진영에서 나오는 지난 총선의 실상이다. 심상정은 정의당의 실패의 주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그리고 성한용 기자는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국힘당과 차이가 없으니 위기라는 생각에서 그간 보수권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즐기던 쪽들이 지난 총선의 실상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힘당은 보수 분열의 큰 원인인 지난 총선의 부정선거 패배론에 대해 말해야 한다. 당시 여의도 연구소는 여론조사를 어떻게 당 수뇌부에 보고했고 어떤 예측을 했었는지?
특히 황교안 대표는 그것을 밝힐 책임이 있다. 당의 여론 조사와
예측이 지금 자신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합치하는지? 당이 당시 언론과 전혀 다른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는지? 승리가 예상되었는데 기우에서 엄살을 부리느라고 내게 100석도 무너질지
모른다며 블러핑으로 내게 SOS를 친 것인지?
진실을 말해서 보수의 음모론을 잠재우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보수의 투표
의욕을 복원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 보수가 우습게 보이는 반지성의 세력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발 책임 있는 자들이 책임 있게 말하고 행동하라.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도 기억 편집이 아니라 객관적 자료를 보고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를 갖기 바란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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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보이
좋은 글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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