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는 어디에도 있다.

당신이 나의 스승입니다.

2021.06.10 | 조회 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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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낮과 밤이 바뀐 공대생의 모임 운영 이야기

Episode 9 - 멘토는 어디에도 있다.

멘토 : 경험 없는 사람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조언과 도움을 베풀어 주는 유경험자·선배


글 쓰는 일, 뭐랄까 내 안에 충전해둔 전력을 끌어 쓰는 일 같다. 그 에너지는 비교적 한정판처럼 생겨 먹어서 쓰게 되면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는 냉정한 조건이 따라붙겠지만, 물론 언젠가 채워지기는 할 것이다. 그 기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사람마다 달라서 딱히 몇 시간, 혹은 며칠이라고 정의하기는 곤란하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채워지긴 하겠지만 충전되는 시간보다 써먹는 시간이 더 자주 발생하며 완충 상태를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다. 그래서 글을 쓰면 단명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그런 불운한 사실에 신빙성이 충분히 담겨있다고 믿으면서도 매일 쓰는 이유가 궁금하지만.

2015년에 블로그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온갖 글쓰기 모임에 출몰하고 다녔다. 모임에 참여하는 건 성이 차지 않아서 나중에는 직접 만들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서 쓰고 저기서 숱하게 쓰고 다녔으므로, 레벨이 꽤 올라갔을 거라고 짐작한다면 그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겠다. 적어도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써 내려갈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될까만.

어쨌든 그동안 소모해버린 내 안의 전력들을 생각하면 제발 지나가버린 나날들이 소모적인 것으로 취급당하지 않기를 바라는데, 잘 모르겠다. 아니 하나쯤은 알 거라고 예단했지만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게 글쓰기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는 길은 더 저만치 떨어져 있어서. 그쪽 세계로 보란 듯이 얼굴을 내밀 만한 자격이든 라이선스든 과연 내 생애 동안 갖추게 될지 전혀 모르겠다. 무지할 때는 그 무지몽매한 상태에 취해서 글을 썼는데, 조금 머릿속 세상이 밝아진 이후로, 말하자면 어둠에서 눈을 뜬 이후로는 과거의 어리석은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버릇이 생긴 바람에, 더 힘들어졌다.

충실하게 글을 썼으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을 거라고 뭔가 나를 존경하는 눈빛이나 선망의 의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그 꿈을 깨뜨리고 싶진 않다. 어느 정도는 신비스러운 사람으로 남고 싶은 바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얼굴이 조금씩 팔릴수록 부담이 가중된다. 쓰면 부담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줄 알았는데, 부담의 벽이 더 높아지니, 게다가 그 부담을 내가 일부러 쌓아놓는 것 같아서 더 무서워진다고 할까?

이 바닥에서 글을 써오면서 느끼는 건, 잘 쓰고 싶다면 정답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란 건, 멘토의 존재 유무다. 닮고 싶은 멘토가 한 명쯤 있다는 것, 뭔가 내부의 어떤 체계가 원활하게 흐르지 않을 때, 그러니까 뉴런과 뉴런을 연결해 주는 기류가 막히거나, 때로 소화가 잘 안되는 것 같은 상황에 봉착하게 되거나, 막다른 곳으로 몰리게 되는 현상을 글쓰기가 겪게 만들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멘토의 존재 유무, 즉 기댈 수 있는 멘토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팩트로 가끔 세게 맞아야 할 때 그걸 건드려 줄 수 있는 멘토가 있다는 건 정말로 행복한 일이 아닌가.

멘토는 삶의 가이드라인이며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 때, 그 아이디어를 다른 그 무엇, 그러니까 실현 가능성이 높은 비즈니스라는 이름이 붙은 걸로 전환하고자 할 때, 그 사람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것이다. 물론 단순하게 피드백을 얻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멘토를 만날 필요가 있다. 순수하게 나의 멘토가 돼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고가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멘토를 만나자. (공심재에는 콘텐츠 탐구 글쓰기가 존재한다.)

나는 공심재라는 모임 - 공심재가 커뮤니티라고 불릴 정도로 크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임으로 부르련다. - 에서 나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의 멘토가 되겠다고 가끔 자처한다. 물론 대놓고 나서진 않는다. 뒷짐을 지고 뒤로 슬쩍 물러서서 그들의 생활 반경에 그림자처럼 스멀스멀 침투하려 애쓴다. 그러니까 대놓고 ‘내가 여기 있다’라고 촌스러운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간접 조명 정도가 되어주는 게 좋겠다고 내 위치를 설정하며 그것이 내 역할이며 내 기능이라고 믿는다.

오직 그런 기능을 생각하며 공심재라는 뜰 안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에 사용되는 온갖 기술, 프로그램들은 내 영역, 내가 공급하는 전력 내에서만 충당이 된다. 내가 모르는 것, 경험해보지 않은 이야기는 그저 미신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좋다는 소문만으로는 절대 모임에서 그것을 흡수하지 않는다.

한때는 모임의 양적인 규모를 늘리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분위기를 끌어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다수의 파트너를 초빙했고 모임을 늘려갔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과연 내가 그 모든 모임에 관여할 수 있는가,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분명하게 구분해낼 수 있는가. 사람은 질문을 받으면 정답에 가까운 결론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내 안에서 그 문제의 해결점을 찾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시선을 외부로 돌린다. 나는 그럴 때 멘토를 찾는다. 멘토는 먼 곳이 아니라 지근거리에 있다. 모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 그들 모두에게 해답이 다른 형태로 이미 존재한다.

Zoom 특강이든 글쓰기 모임이든 독서 모임이든 멘토는 모든 곳에 존재했으니 나는 그들이 던진 화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나눈 대답 속에서 부족한 나의 어떤 부분을 채우면 그만이다. 내가 그동안 수없이 많은 모임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운영한 것이 단순히 내 안의 전력을 쓸데없이 소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바로 그 시점이다.

타인과 소통을 한다는 것, 그들이 쓴 글을 읽으며 어떤 낯선 감각을 내 것으로 소화시킨다는 것, 그것이 칭찬이든 날선 비판이든 각자 나름의 요소로 사용된다는 것, 모임이야말로 멘토를 공짜로 만드는 일이 아닌가, 나는 수업료도 지불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받으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다. 심지어 처참한 내 글쓰기 실력을 지도 받으면서까지, 내 부족함이 온 세상에 다 까발려지는 게 고통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가운데에서 적어도 몇 가지는 꾸준히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

그러니까 멘토는 어디에도 있다. 멘토를 보는 눈을 갖추는 것은 각자의 역량에 달려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치열하게 쓰고 치열하게 나누다 보면 분명 서로에게 빚진 것을 갚게 되는 원리를 깨닫게 될 거라는 사실, 그 결론 하나는 가설이 아닌 분명한 진리가 된다.

혼자서 고독하게 당신이 열심히,라는 가치에 치중하는 중이라면, 단순하게 열심히만 해서는 곤란하다. 그 목표를 향해서 고통을 감수해내며 오직 근거 없는 낙관적인 미래만을 벗 삼아 쓸 뿐이라면,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 어떠한 공간에서도 우리는 멘토를 만나고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내가 비록 지금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누군가에게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도, 모임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가 멘토가 될 수 있다는 근거 때문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산책하듯이 쓰자. 하루키처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습관처럼 글을 쓰자, 글쓰기가 아니면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이런 다짐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노력해보자.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멘토 없이 쓰는 일은 중단하자.

글쓰기는 타인을 위해 내 삶을 헌신하는 일이다. 어제 어떤 일을 시작했거나 오늘 시작하려고 작심했다면 그 일을 어떻게든 끝맺을 수 있도록 서로 도와줬으면 좋겠다. 언젠가 누구든 당신의 멘토가 되어줄 것이고 당신도 그렇게 될 것이며 누구든 배울 점이 단 한 개라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멘토가 되어줄 마땅한 명분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책임과 부담은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즐겁고 신나게 될지도 모르는 게 글쓰기다. 왜일까? 끝없는 퇴고를 반복하면서 내 안의 모든 전력을 소모하며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 조각들이 하나씩 쓸려나가는 아픔을 경험하면서도, 글을 쓴다고 결코 환상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즐겁게 쓰는 이유, 그것이 궁금하지 않는가?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두드러지는 어떤 능력, 당신의 잠재력, 공심재의 수많은 멘토들과 함께 꽃을 피워보는 건 어떨까? 함께 한다는 건 아름다운 행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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