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메일에서 나이 60 되어서야 얻은 “돈”, “재테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이번 주부터는 제가 살아오면서 얻은 여러가지 일들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오늘은 “은퇴 후 자식들과 관계”를 주제로 정했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지만, 저도 퇴직 당시 자식들과 관계에 대해 걱정했고 지금은 나름 많이 좋아졌다고 자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세대 대부분 부모님들이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녀 양육을 담당 했었죠.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역할은 가끔가다 가족들과 나들이하고, 자식들이 성장하는데 무슨 문제는 없는지 점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중고등학교, 대학교 문제, 취업 등 자녀 성장의 큰 분수령에서는 아버지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많이 봐왔고 저도 경험했습니다.
자식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아버지가 직장에서 직위가 높아질수록 자식들과 대화는 반대로 줄어든 것 같습니다. 현금지급기로 전락하기 시작한 거죠. 지나치게 집안일에 관여하는 것도 역효과가 날 수 있기에 대세에 지장 없는 것은 어머니 또는 자식들의 판단에 맡긴다 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지만 이 건 잘못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시대에서 훌륭한 아빠는 근엄하고 말이 없는 것 보다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가지는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 자주 대화하는 아버지가 짱 인 것 같습니다.
저도 어느 대한민국 가장들과 똑같이 직장생활하고 퇴근하면 집에 와서 밥 먹고 다음날이면 출근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자식들이 다 컸기 때문에 각자 자신들의 일만 하지 서로 얘기할 시간도 없었고 저도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애써 무관심 했었고, 딸들이어서 그런지 제가 적극적이질 못해서 그런지 대부분의 일들은 엄마랑 이야기하지 저랑은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다고 서로 원수지간처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아주 친한 것도 아닌 말 그대로 그냥 아빠와 딸들의 관계였습니다.
은퇴 전 자식들과 관계 중 생각 나는 것이(얘들이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대학 선택할 때, 취업 안 되어서 고민할 때 나름대로 조언과 위로를 많이 해줬는데, 평소 잘하지 못한 것에 묻혀 빛이 바래더군요. 평소에 엄마역할의 절반만이라도 했으면 자식들 한테 좋은 소리 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사람의 뇌는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하는데, 아빠가 어렸을 때 혼냈던 일, 자라면서 어려울 때 함께 하지 못한 일, 생일이나 각종 기념일 때 별로 챙겨주지 못한 일 등 별로 기억에 좋지 않은 일을 마음에 담아 뒀더라구요.
퇴직 후 처음에는 딸들과 갈등도 많았고 심지어는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자식들은 겪지 않도록 아버지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이야기하는데 자식들이 듣지 않았을 때 갈등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자식들을 위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자식들은 그걸 강압적으로 받아들여서 반발이 생긴 거죠. 제 이야기가 100% 옳은 것 일지라도 이런 식의 대화방식은 잘못된 거라고 나중 에야 알았습니다. 평소 자주 대화를 했더라면 자식들 문화도 이해하고 그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하면 갈등이 훨씬 줄었을 텐데 비싼 수업료 들여가며 나이 60 다되어서야 깨닫게 되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은퇴 후 작은 딸과는 하루 세끼를 같이 먹을 정도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면서 반농담으로 “딸아! 지금 이 지구상에서 다 큰 딸과 아빠가 이렇게 자주 밥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 우리가 TOP 일 거 같다”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작은 딸이 지방 강연 다닐 때 제가 운전을 자처하여 여행 겸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아직도 작은 딸의 속마음을 완벽히 모르겠더라구요. 물론 딸과의 관계는 좋아졌고 서로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준은 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우연한 계기로 두 딸과 캠핑을 간 적이 있습니다. 큰 딸이 어렸을 때 혼냈던 것을 못내 가슴깊이 담아두고 아빠 목소리만 커도 트라우마 생기고 스트레스 받는 다는 걸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화내서 목소리를 크게 한 것이 아닌 데도 딸은 그런 고통을 받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큰 딸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큰 딸이 어렸을 때 혼냈던 이야기를 꺼내 드는데 제가 그만 좀 우려먹으라고 이야기했더니, 아빠가 진심으로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다 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캠핑장에서 저녁 먹으면서 큰 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큰 딸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자식들이 어렸을 때 매도 때리고 혼도 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게 그렇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부모로써 당연하다고 생각한 일들이 자식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이유불문하고 자식의 상처를 치유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진심으로 사과하고 상처를 어루만졌습니다. 지금은 어떤 사람들보다 돈독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짧은 인생 살아가면서 부모 자식 간에 행복하게 살 시간도 부족한데 얼굴을 붉히면서 살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온 우리가,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많이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는 것이 나이 60 다되어서야 얻은 삶의 지혜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아들, 딸들도 부모님을 많이 위하시고 이해하도록 노력하신다면 금상첨화 일 것 같습니다.
두서 없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도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삶의 지혜 한가지를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시고 항상 행복한 인생 즐기시기를 기원 드리며 오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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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식인디유
저희 아버지도 동년배이신데... 이렇게 저희에게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누파파의 사적인 레터
자식들이 먼저 다가서는 것도 괜찮아요.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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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란
거누파파님 목소리와 말투가 음성지원 되고, 덤덤하게 스토리를 풀어주시는데 아무래도 저도 딸의 입장이고 큰누님의 감정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보니 괜히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저도 다 크고 나니 아빠의 입장이나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어릴 때 상처받았던 마음은 어린 마음으로 계속 남아있기는 하더라고요. 솔직하게 딸들에게 한걸음 다가선 거누파파님 너무 멋지시고 감사하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덕분에 아빠에게 안부톡을 남겼습니다. ^^
거누파파의 사적인 레터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변변치 못한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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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도좋아
거누파파님, 글을 읽으며 제가 위로 받는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났어요. 올해 제 생일날 아무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해 주지 않아 필요 없는 존재 같은 느낌? 원가정(부모님)에서 생일 축하를 한번도 받지 못하고 자랐던 서러움, 제가 이룬 가정에서도 축하 받지 못하는 억울함 등이 겹쳐서 오열하고 말았어요. 친정 아빠는 살아 계시지만 왜 내 생일을 축하해 주지 않느냐고 전화드리지 못하겠더라고요. 아빠에게 제 가슴에 박힌 상처를 말로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관계 개선의 첫걸음 아닐까 싶어요. 큰누가 상처를 말했을 때 진심으로 위로하고 사과해 주신 거 정말 대단하시고 잘하셨어요. 저도 아빠 시절에는 생일 챙기지 않고 살았다~ 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마음이 아프긴 합니다. ^^;; 반대로 어제 제 아들에게 자식을 처음 키워보니 너에게 도움이 되라고, 도움이 될 줄 알고 잔소리 했던 거 미안하다, 엄마가 조금 더 방법을 알아 보고 너가 상처 받지 않는 방법으로 엄마의 마음이나 조언을 해 보겠다고 했더니 중3 아들이 울더라고요. 부디 아들 마음에 상처가 조금은 씻겨 나갔기를 바라봅니다. 오늘 좋은 글, 생각에 남는 글 감사합니다. 다음주 글도 기다리겠습니다. 거누파파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거누파파의 사적인 레터
감동먹었습니다. 제 글을 이렇게 좋아 해 주시는 좋아님 덕분에 힘이 납니다. 부모님이나 자식들과의 관계는 우리가 인생 살면서 참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좋은 관계 이루어 행복 곱하기 행복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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