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딸 하나 처리했습니다.(결혼식 후기)

큰 딸을 보내고 맞이한 일요일

2023.04.30 | 조회 1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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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누파파의 사적인 레터

대기업 퇴직 후 제 2의 삶을 살고 있는 50대 아저씨의 사적인 레터 서비스

어제 큰 딸 결혼식을 무탈하게 끝냈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없이 멍 때리고 있는, 내 마음만큼이나 하늘이 시커멓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그런 일요일 오후다.

몇 주 전부터 결혼식 준비로 온 가족이 바쁘게 움직였던 것 같다. 나는 결혼식 축사 준비 및 연습한다고 바쁜 척 하고, 부인은 괜히 여기저기 다니면서 무언가를 사다 나르느라 바쁘고, 작은 딸은 결혼식 축무 연습한다고 연습장 빌려서 연습하다 거실에서도 정신 사납게 흔들어 대곤 했다.

야외 결혼식이다 보니 매일매일 일기예보 체크하다, D-4일 즈음 비 소식에 다들 맨탈붕괴 되었다.

결혼식 당일.

집에서 메이크업 하는 관계로 식사하기엔 어중간하고 12시까지 식장에 도착하라는 명령 때문에 어쩔수 없이 차속에서 김밥으로 때웠는데, 원래 잔칫날이면 잘 먹는거 같았는데 막상 혼주가 되다보니 이렇게 처량하게 김밥 먹는다는게 참 어이없음.

결혼식 주최자 큰 딸은 시어머니처럼 이것 저것 잔소리+체크 한다고 우리를 피곤하게 했다.

결혼식장 열심히 가고 있는데 내 선배님으로부터 전화, “..왜 아직도 안오냐?” 뭐야. 2시 결혼식인데 형님 정신 나간거 아니요? 12시도 안됐는데 혼주보다 먼저 도착하는 하객이 어디 있냐고 강력히 어필했다ㅋㅋ이럴 때 큰소리 한번

결혼식장 도착했지만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난 건우(오늘의 화동, 누나 반지 전달자)와 함께 아침내 단장한 머리 흐트러질까봐 조심조심 행사장으로 갔다. 신랑신부, 양가 부모들 사전 사진촬영, 리허설 등으로 식전 시간 보내고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건우 마더는 어제 일부러 새로 산 손수건도 안 가져 오고, 연신 박수 치면서 아주 즐겁게 결혼식을 즐기고 있었다. 부인이 눈물 흘리면 내 마음도 짠 해 질 것 같아 마음 단단히 먹었는데 완전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예식 시작되니까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너무 좋았고, 더구나 비온 후의 상쾌함, 싱싱한 나무들의 봄날 초록빛 기운이 오히려 사진 빨 더 잘 받게 해 준 것 같아,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저절로 머리속에 맴돌더라.

금요일 밤 제주도부터 시작해서 토요일은 전국에 비 온다는 소식에 밤잠을 못잤다. 당일 새벽 530분에 밖에 나갔더니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우리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구나라고 흐뭇해 하면서 결혼식장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건우 산책을 시키려고 다시 밖에 나갔더니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어, 허탈하고 막막한 심정으로 오기로 비 맞고 산책하다 쫄딱 젖어 후회했다. 쓸데없는데다 오기 부려봐야 나만 손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분위기 좋게 출발, 드디어 내 축사 차례, 나름대로 사전에 우리 구독자분들께 검증된 내용이기 때문에, 남들은 청심환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평소 갈고 닦은 씨부림 기술 어디 가겠냐라는 이상한 자신감으로 단상에 섰다.

일단 마이크 테스트 한 번 하고 원고를 보는데, 웬걸? 첫 페이지가 없다. 3, 사전 주최측에 다 확인 했는데. 비도 오고 그래서 짧게 하라고 일부러 뺐나? 그래도 첫 인사말이 제대로 터져야 나머지가 원활한 법인데. 진행요원에게 첫 페이지 가져다 달라고 요청해서 열심히 씨부리고 있는데. 아뿔사, 축사가 너무 길었나 보다. 하객중 누군가가 축사가 너무 길어요~~”라고 외치길래, 눈길을 슬쩍 그 쪽으로 돌려 째려보고, 어쩔 수 없이 내용 일부를 살짝 빼고 서둘러 마무리 했다.

다음부터는 축사 내용만 신경쓸게 아니고 런닝타임도 체크 해야 겠다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들에게 인사하고 포옹하는데, 딸을 안고 잘살아라, 행복해야 한다라고 귓말하는데,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이런 것이 자식 결혼시키는 부모 마음인가?

행사 정리하고 신랑신부와 둘째 딸이 함께 정리할 게 있다고 다른 데 가는데, 우린 집으로 오면서 순대국 한그릇으로 저녁을 때웠다. 아침겸 점심은 김밥, 저녁은 순대국. 자식 결혼 처음이라 경험이 없다지만 이게 몬 일이람. 잔칫날 먹은게 이 모양이니. 둘째 딸 결혼 할 때 반드시 참고해야 겠다. 정신적, 욱체적으로 피곤한 지 건우마저 곯아 떨어지고, 나도 마찬가지. 이렇게 큰 딸의 기나긴 결혼 연대기가 끝을 맺게 되었다.

오늘, 일요일 새벽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공식적으로 집 나간 딸, 신혼여행 잘 가고 있는지 톡하고 전화통화도 했다. 한 달전에 신혼 집으로 분가하였지만 막상 결혼이라는 걸 하니까 너무 마음 한구석이 휑 한 것 같다. 있을 때 조금 더 따뜻하게 할 걸뒤 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일찍 은퇴해서 그 동안 못 다한 가족 여행, 가족들과 정을 많이 쌓았고, 더구나 딸들과 캥핑이라는 것도 몇 번 갔는데,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별리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멀리 안가고 가까이 살지만 그래도 아쉽고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원죄인 것 같다. 앞으로도 잘해줘야지. 고작 결혼 했는데 이런 마음이면 내가 죽을 때 얼마나 내 마음이 아플까. 한 점 후회됨이 없도록 자식들한테 정말 기억에 남는 아빠가 되 보자고 다짐하면서 오늘 글을 마무리 한다.

결혼식 관련 에피소드는 조만간 영상으로 올리겠습니다. 졸필 끝까지 읽어 주시고 댓글 작성해 주신 여러분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주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Ps. fang2004님, 메일리를 통하여 보내주신 선물 너무 감사합니다. 제 글빨에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ㅋㅋ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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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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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이동이누나의 프로필 이미지

    몽이동이누나

    0
    over 2 years 전

    돌아가실 때도 자식 생각에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하시는 게 부모님 마음이라니.. 글을 보며 딸로서 가슴이 철렁했네요. 자식은 부모님의 마음을 정말 알 수가 없나봅니다.. 대단하신 부모의 사랑..🙏 저희 엄마가 늘 제게 하시는 말, “너가 잘 사는 게 효도야~~~” ㅎㅎ 큰누도 앞으로 더더욱 효도하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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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경의 프로필 이미지

    재경

    0
    over 2 years 전

    결혼식이 뭐라고, 내 결혼도 아닌데 결혼식장에서 알바할때 꼭 신랑신부와 부모님이 맞절을 하고 인사를 할때 눈물이 납니다. 결국 잘살아라 행복해야한다는 말씀에 결국 울컥하네요. 제가 부모가 되어본적이 없지만 나름의 짐작으로 식장에서의 인사후의 부모님들의 씁쓸한 표정을 많이 본것과 우리 부모님도 분명 같은 마음이시겠지 싶은 그런마음인가 봅니다. 제가 거누파파 유튜브 영상을 좋아하는건 비록 회사생활을 하시면서 가족들과의 시간이 적었다고는 하시지만 지금 현재만 보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시고 투덜되시지만 즐거워하시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따뜻해서인거같습니다. 오늘도 이 짧은 글 안에서도 많은 사랑이 느껴지는게 참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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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파룽의 프로필 이미지

    전파룽

    0
    over 2 years 전

    흐뭇하게 웃으며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찡..울컥하네요ㅠㅠ 부모의 원죄라니..ㅠㅠㅠ 거누파파님 큰따님 결혼식 치루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따뜻한 글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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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ctus_se 서은의 프로필 이미지

    cactus_se 서은

    0
    over 2 years 전

    거누파파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뭉클했습니다 그나저나 첫번째페이지가 없었다니 정말 놀라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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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칠나무의 프로필 이미지

    까칠나무

    0
    over 2 years 전

    혼주보다 먼저온 하객 축사가 길다고 한 하객 정말 큰누 결혼식은 에피소드가 많아서 기억에 많이 남으셨겠어요 거누파파님의 복잡한 마음은 아마 딸이 시집가도 가까이살아도 내집에 이제 같이 안산다는거 그런 마음들이 기쁘면서도 서운하지 않으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결혼전에 부모님하고 사이가 않좋아서 결혼식장에서 안우실거야 그랬는데 저도 몰랐는데 결혼식영상보니까 혼주석에서 눈물을 닦고 계신걸봤어요 그거보고 저도 좀 놀랬던게 엄마랑 저는 덤덤한데 아빠가 우실줄 몰랐거든요 부모와 자식은 그런 사이인가봐요 옆에있음 투닥하고 옆에없으면 보고싶고 그래도 사위라는 가족이 하나 더 생겨잖아요 늦었지만 댓글로나마 큰누 결혼 한거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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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릿의 프로필 이미지

    호릿

    0
    over 2 years 전

    거누파파 따님들 또래 구독자입니다 읽다가 눈물이 줄줄 흘러요ㅜ 제가 모르는 아빠의 마음이 이런건가싶네요 감동적이면서도 마음이 씁쓸하고 그러네요 잘 읽고 가요 ㅎㅎ 큰누 결혼 축하드려요♡

    ㄴ 답글 (1)
  • dino의 프로필 이미지

    dino

    0
    over 2 years 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졋어요ㅠㅠㅠㅠ저희아빠도 뭔가 제가 결혼할때 그럴거같아서 벌써 마음이아파요ㅠㅅㅠ

    ㄴ 답글 (1)
  • 쑤의 프로필 이미지

    0
    over 2 year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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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동석이랑 같은 성을 가진 마한결의 프로필 이미지

    마동석이랑 같은 성을 가진 마한결

    0
    over 2 years 전

    즐거운 이야기인데 딸 입장으로써 눈물날뻔 했어요 ㅠㅠㅠㅠ 저도 결혼할때 아빠가 투머치로 할까봐 걱정돼요 😂😂(전 아직 20살이에요,,,) 다들 너무 고생많으셨고 앞으로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래요 ❤️

    ㄴ 답글 (1)
  • 구피깡의 프로필 이미지

    구피깡

    0
    over 2 years 전

    제가 그 결혼식장에 있었던것처럼 좀 마음이 뭉클하네요🥹🥹 큰누님 결혼 넘 축하드리구 거누파파네 모두들 행복하세요🥹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 SNOW의 프로필 이미지

    SNOW

    0
    over 2 years 전

    앗ㅎㅎ 제가 축사 검증 때 너무 길다구 시간체크 하시라고 했는데ㅠㅠㅠ 서운하실까봐 저도 기준을 너무 높게 제시했나 봅니다ㅜㅜ 근데 남의 경사 때 면박주는 사람은 진짜.. 자기딴에는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한건지.. 너무 열받네요!!!

    ㄴ 답글 (1)
  • 클로이의 프로필 이미지

    클로이

    0
    over 2 years 전

    방금 전 유튜브 영상으로 보고 온 큰누 또래의 오래된 구독자 입니다. 오랫동안 구독하다 보니, 뭔가 거누파파님이 제2의 아버지인것처럼 친숙하답니다.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데, 나주도 많이 다녀봤던지라 왠지 더요...) 저도 큰딸인데, 우리 아버지도 이러시겠구나 생각하며 나중에 있을 결혼식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담뿍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큰누 작누 모두에게도 이 사랑이 전해질거라 생각하니, 같은 딸로서 큰 행복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김밥 한 줄을 보고 목이 멕혀오는 듯 하였습니다 😭 결혼식날의 현실이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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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리골드의 프로필 이미지

    메리골드

    0
    over 2 years 전

    고작 결혼 했는데 이런 마음이면 내가 죽을 때 얼마나 내 마음이 아플까. 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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