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 결혼 축사 선공개! (유출금지)

안녕하십니까? 신부의 아버지 최0우입니다. 남들은 거누파파라고 부르더군요.

오늘 축사를 위하여 남들 꺼 컨닝 좀 하려고 유투브 몇 개 봤는데, 대부분 하객인사, 덕담하는 걸로 되어 있더라구요. 전 직업이 특이해서 (크리에이터, 유투버) 뭔가 특이하게 하고 싶어서 엄청나게 고민 했지만, 결론은 그냥 대세에 따르는 걸로 했습니다.

원래 결혼식에 오면 눈도장, 인증사진 찍고, 식사하러 가야지 주례사나 축사 귀에 들어 오지도 않고, 특히 조금 길면 지루해 지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원래 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 축사를 장황하게 해 볼까 했는데, 3~4분 안에 끝내라고 원고 몇 번 칼 질 당했습니다. 이상한 얘기 할까 봐 내용도 누군가 사전검열 다 하더라구요. 편하게 몇 분만 떠들겠습니다.

바쁘신 주말 오후에도 불구하고 저희 자녀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하객 여러분, 친지 여러분께 양가 혼주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아들을 잘 길러 주신 사돈 내외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키 큰 아들을 보내주셔서 종자개량의 기회를 주신 점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물심양면으로 결혼식 응원하고 지원하느라 고생한 제 부인, 한여사님께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00, 00아?

너희들의 결혼을 축하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덕담을 보내왔는데, 시간관계상 다 전달 할 수는 없고 동생 덕담을 먼저 들려줄께. 너 하나 밖에 없는 동생 세화가 드디어 소원을 이루었다라고 하더라. 어렸을 때 너한테 터지고 대성통곡하며 “언니 집 나가버리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는데, 20년만에 소원을 이루었다고 하더라. 조금 살살 패지 그랬냐? 형부 만한 사람을 살면서 본적이 없었대. 엄마 입원했을 때 너희들이 굶을까 봐 직접 김밥을 싸서 챙겨주고, 잠바 찢어진 거 손수 꼬매 줄 정도로 다정하고 세심한 형부. 결혼 진심으로 축하하고 사랑한다고, 형부 때문에 자기 눈이 너무 높아졌다고 둘이 책임지라고 하더라.

추운 겨울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런닝 셔츠만 입고 벌받고, 아빠한테 사기 치고 동방신기 공연 보러 갔다가 집 쫒겨 나서 경비아저씨한테 찜질방 갈 돈 빌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서른이 넘어 결혼한다니까 만감이 교차한다.

너희들 키우느라 들어간 비용 회수도 못했는데 결혼을 핑계로 집 나간다니 아빠 엄마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구나. 어차피 원금도 회수 못할 바에 너 고등학교 때 캐나다 한 달 보내준 거 한 천만원 들었는데 엄마아빠 해외여행 한번 보내주는 걸로 통 치자.

추접스럽게 결혼식 축사에서 돈 이야기하는 아빠 미워하지 말고 앞으로 기대하마.

신랑 000군?

나는 자네 장모님 꼬실 때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 준다고 약속하고 그 것 만은 지켰네. 자네도 비싼 내 딸 데려가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도록 해주게. 고무장갑 비싼거 사주면 해결되네.

그리고 내 경험이지만 돈 관리는 절대 남자가 하지 말게. 자네 장모님이 지금도 내 월급통장 한 번 구경하는 게 소원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런다고 비자금까지 몽땅 바치라는 건 아니네. 거시기 할 때 비자금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알아서 잘 만들어 보게.

00이가 어려서부터 책을 끼고 살 정도로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겉으론 강하지만 의외로 마음이 여린 성격을 가지고 있다네. 집에서 큰 딸 부를 때 항상 “아빠의 희망 큰 딸” 이라고 했는데 이제 우리 품을 떠나 자네한테 갔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00이 눈에 눈물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해주게. 이건 명령이자 부탁이네. 그렇게 할 수 있지?

00아?

아빠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18년만 빨대 꼽았는데, 너는 거의 30년이 넘게 빨대 꼽았으니 네가 결혼한다니까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하지만, 4인용 식탁 의자 하나가 비워지니까 정말 허전하구나. 이런 게 부모 마음 아닐까 한다.

너희 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큰 효도라는 걸 잊지 마라.

그리고 떨어져 살지만 동생이 뭐 촬영한다고 하면 총알같이 와 주고, 우리집 대표선수 강아지 거누 큰누나로서 거누 간식 의무는 계속하길 바란다. 결혼식 축사를 빌미로 너무 속물적으로 접근해서 미안하다.

축사가 너무 길어 진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 저희 유투브 많이 봐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축사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 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끝>

무려 일주일이나 고민해서 작성했는데 괜찮은가요? 댓글로 많은 피드백 부탁드려요. 제 레터 구독자 여러분들에게만 특별히 먼저 공개드리오니 외부 유출은 절대 금지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