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하입니다 :)
은장도를 아세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목에 '은장도'를 대고는 "정절을 잃을 바에는 자결하겠다!"고 외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거에요. 우리는 흔히 은장도를 '여성의 정절을 지키는 칼', '자결용 도구'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은장도는 요즘의 명품시계와도 같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조선시대의 '명품시계', 은장도
많은 사람들이 시계를 차고 다닙니다. 정교한 세공과 아름다운 장식을 갖춘 '명품시계'는 소장이나 패션 목적으로 많이 쓰여요. 반대로 장식을 줄이고 튼튼하게 만들어 실용성을 챙긴 시계도 있고요. 장도도 그와 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손에 들어올만큼 작은 칼을 시계처럼 패용했어요. 아름답게 꾸며진 칼은 마치 명품시계와 같은 위상이었지요. 은, 옥, 대모, 자개 등 귀한 소재로 꾸민 장도는 사대부나 왕족이 많이 소장했고요. 장식을 줄이고 실용성을 챙긴 장도는 평민들이 가지고 다녔습니다.
상단의 사진을 보실래요? 전체를 은으로 만들고 매화와 새(*매조문梅鳥紋)를 조각했어요. 꽃잎과 새는 도금하여 멋을 더했고요. 정교한 공예기법이 돋보이는 수작이에요.
자결하기 위한 칼을 이렇게 아름답게 꾸미지는 않겠지요? 단장할 장粧 칼 도刀. 장도는 스스로를 단장하는(*꾸미는) 목적의 칼이었습니다.
어쩌다 이런 오해가?
장도가 이런 오명을 가지게 된 까닭에는 다양한 추측이 있어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무라이의 '할복문화'와 엮여 와전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사극 드라마에서 잘못 쓰이기 시작한 게 점차 굳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중요한 건 '장도는 자결용이 아니다'는 사실이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오명을 벗어던진 장도의 '진짜 모습'을 볼 차례에요. 장도를 만드는 장인을 살펴보며, 다양한 장도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게요.
국가무형유산 장도장 박종군 장인
국가무형유산: 춤이나 기술과 같이 형태가 없는 문화유산 중 보존할 가치가 있어서 국가에서 지정·보호하는 것.
장도를 만드는 기술과 장도문화는 '국가무형유산 장도장' 종목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어요. 이 기술을 온전히 갖추어서 종목의 '보유자'로 인정된 분이 박종군 장인입니다.
앞서 보여드렸던 은장도도 박종군 장인의 작품이에요. 더 많은 작품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은이 아니라 '흑단'이라는 나무로 만들어졌어요. 깊은 검은색이 아주 인상적인 나무에요. 튼튼하기도 하고요. 칼날이 칼집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장식'은 은으로 만들어졌어요.
우리는 은장도라는 단어에 익숙해요. 하지만 장도는 은으로도, 나무로도, 심지어는 금이나 옥으로도 만들 수 있어요. 은으로 만들면 은장도, 나무로 만들면 목장도인거지요.
장도는 소재만큼 모양도 다양해요. 이 작품은 각이 8개, 팔각도입니다. 칼집과 칼자루 그리고 장식 모두 팔각형이지요. 이외에도 원통 모양의 '원형도', 사각형 모양의 '사모도'가 있고요. 지휘봉 모양으로 만드는 '지휘도' 등의 창작양식도 있어요.
박종군 장인은 부친이기도 한 故 박용기 장인을 사사했어요. 박용기 장인은 고향의 장인으로부터 장도 제작 기술을 전수한 후, 전국의 대장간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기술을 습득했어요. 그래서 박용기, 박종군 장인은 우리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장도 대부분을 제작할 수 있어요. 을자도, 팔각도, 원형도, 사모도 등 다양한 모양의 장도가 제작되는 까닭이기도 하고요.
울산시무형유산 장도장 故 장추남 장인
조선시대에 울산은 왜구의 침입이 잦았어요. 그래서 '경상좌도병마절도사'라는 직책의 지휘관이 상주하며 방어에 힘을 썼어요. 그렇다면 지휘관을 포함한 군인들이 쓸 무기와 갑옷을 만드는 사람들도 필요하겠죠? 네, 그래서 울산은 야장기술이 많이 발달해왔습니다. 이 야장들은 군에 납품하는 무기를 만드는 한편, 장도나 백동연죽 등의 공예품을 민간에 판매하기도 했어요. 이것이 '울산장도'의 시작입니다.
故 장추남 장인을 비롯한 울산 지역의 장도장들은 '오동상감'이라는 기법을 많이 썼어요. 금과 구리의 합금인 오동을 오줌으로 착색시키면 검게 변하는 특성을 이용한거에요. 위 작품을 보면 전체를 은으로 만들고 중간중간 오동을 섞어서 아름다운 흑백대비를 연출한게 눈에 띄어요.
우리나라의 장도는 삼국시대 때 만들어지던 작은 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만들어지고 있어요. 박종군 장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장도장분들은 새로운 장도를 개발하기도 하며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사진은 장도에 '펜'의 기능을 더한 '딥펜장도'입니다. 박종군 보유자의 창작품이에요. 이런 작품은 우리의 무형유산이 과거 어느 순간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흐름이라는 점을 일깨워줘요.
장도에 새겨진 마음
장도는 칼날에 '변하지 않는 하나의 마음', 즉 '일편심一片心' 이라는 문구를 새겨넣어요. 전국의 장도장들이 공통으로 지키는 양식이지요. 과거엔 여성의 장도에 일편심을, 남성의 장도에는 '군자도"(군자의 칼)라는 문구를 새겼다고 해요. 지금은 일편심이라는 문구만 사용해요.
???:이제 군자 없어 돌아가
일편심, 장도를 '자결용'으로 생각한다면 여성의 정절을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장도가 자결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요? 장도에 담긴 '일편심'의 진짜 의미는 사용하는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에요. 저는 매화로 꾸민 장도를 가지고 있는데, 최애에 대한 일편심을 담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당보야!
한 뼘 남짓의 작은 칼을 캔버스 삼아 펼쳐지는 전통공예의 아름다움, 끊임없이 발전하는 전승공예의 미학. 그리고 일편심一片心의 의미까지. 이제는 장도에 담긴 가부장적 서사를 잊고 편하게 직관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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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랭이떡
넘 재밌어용~~~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은 많은데 직접 찾아보고 연구할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못한데, 메일로 간단하고 흥미롭게 정보 알려주니까 넘 좋은거 같아용 >< 언젠가 저만의 커스텀 은장도를 가져보는게 꿈...
교하 뉴스레터 (91)
와~ 소중한 첫 댓글이네요 ^^ 정말 감사합니다. 재밌는 내용 많이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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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
???: 아 장도 자결용 아니라고!! 항상 장도 볼때마다 너무 예쁘고… 지갑은 가볍고… 늘 눈물만 훔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딱 흥미로운 주제를 딱딱 찾아서 가져와 주시는지! 너무 재밌네요~ 다음 레터도 기대만빵입니다!
교하 뉴스레터 (91)
우와~ 너무 감사합니다 ㅠㅠ 다음 레터는 일정을 앞당겨서 오늘! 발송되었어요 ㅎㅂㅎ 잘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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