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동생이 내 방에 들이닥쳐서는 “나… 비밀이 있어.”라고 말했다. 한참을 우물쭈물하기에 대체 무슨 중대한 사항인가 했더니 사주를 보았단다. 사주 본 것이 무슨 대수라고? 하지만 신실한 기독교인인 엄마의 감시 아래 자란 우리 자매에게 사주를 본다는 것은 꽤 발칙한 일탈 행위임이 틀림없다.
나는 이미 사주를 본 적이 있다. 점술이나 정해진 운명 같은 걸 믿지는 않지만, MBTI나 퍼스널 컬러 검사와 같은 느낌으로… 일종의 ‘캐해석’을 받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엄마는 미신 비슷한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으로, 우리가 몰래 점을 보러 갈까 봐 생시生時를 결코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이사를 다니면서 산모 수첩도 잃어버린 듯했다. 그러나 원래 금지된 것은 청개구리처럼 더욱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검색해 보니 나처럼 생시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방법이 있었다. 바로 법원에 가면 알 수 있단다.
법원에서 어떻게 생시를 알 수 있느냐? 출생 신고를 했던 관할 법원에서 나의 출생신고서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복사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만 27세가 지나면 폐기한다고 함) 그래서 나는 하루 연차를 내고 법원에 방문했다. 난생처음 가본 법원은 너무나 정적이고 엄숙한 나머지, 고작 사주 한 번 보겠다고 연차까지 써서 법원에 온 내가 어처구니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전산에 등록된 게 아니라 담당자가 손수 종이 서류를 뒤져서 찾아주어야 했다. 어쨌든 지난한 과정 끝에 나는 사주를 볼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게 된다. 마침내.
나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사주 보는 곳이 많은지도 처음 알았고, 그중에서도 유명한 곳은 1년 치의 예약이 꽉 차는 것이 능사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들 사주에 정말 진심이구나. 비용도 한두 푼이 아닌데 이왕이면 잘 본다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친구와 함께 열심히 검색한 끝에 잠실 어드메에 있는 곳에 찾아갔다. 가정집처럼 생긴 오피스텔이었고, 대기실에 있다가 순서가 되면 들어가서 상담을 받는 식이었다.
역학사 왈 내 사주에는 금金이 많아서 풀이가 아주 쉬운 편이란다. 평생 일복이 있고 금전도 따른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황당했다. 내가 청담동 며느리 자리라 시댁 덕을 볼 거라나? 일단 결혼 생각이 없고, 더군다나 남자와 결혼할 일은 까마득하므로 그 이후로는 역학사가 하는 말이 죄다 의심스러울 뿐이었다(결과적으로 안 맞는 이야기가 많았음). 뒤이은 친구의 사주 풀이 역시 내가 듣기엔 반절은 오 그런가? 싶고 나머지 반은 흠… 하게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문화 체험적 관점에서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으나 결국 사주 자체에는 심드렁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사주 풀이가 잘 맞지 않아서 오히려 달갑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누군가에겐 사주명리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유용한 매뉴얼로 쓰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내 운명을 생년월일에 굳이 매어두고 싶지 않다. 공략집 없이 플레이하는 게임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 구불구불 헤매면서 나아가는 인생도 성실한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면 그닥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안녕!
- 당신의 친구, 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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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니
여성의 사주에서 말하는 '남자복' 및 '자녀복' 같은 경우에는 요즘시대엔 직장에서의 운과 관련된 말이라고 해석하시더라구요. 평생 직장이나 업무에서 잘나가실 거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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