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월에는 친구와 함께 대만 여행을 떠난다. 일정을 짜기 위해 대만 여행 브이로그를 탐색하기로 했는데, 관광 스팟은 고만고만하게 비슷해 보였다. 서너 개를 연달아 보던 중에 한 영상에서 대학 교정에서 유바이크(따릉이 같은 자전거 대여 시스템)를 타는 장면이 나왔다. 다른 것은 오 좋네 정도의 반응이었던 친구가 어디에서든 상관 없으니 유바이크는 꼭 타고 싶다고 거듭 강조를 했다.
사실 나는 자전거를 잘 타는 편은 아니다. 보행자가 드문 곳이나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만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다. 겁이 많고 자전거를 자주 타지도 않으니 실력이 늘 리가 없다. 그나마 자전거 페달을 밟을 줄 알게 된 것은 다 ‘자전거 요정 아저씨’의 덕택이다.
때는 16년도, 보조 바퀴를 단 네 발 자전거를 도둑 맞은 이후로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무슨 바람이었는지 친구에게 두 발 자전거 교습을 요청했다. 친구가 무척 고맙게도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가져와 주었고 우리는 중랑천 공터에서 야심차게 연습을 시작했다. 어찌어찌 안장에 앉아서 페달을 굴려 보려는데, 아무리 친구 가 뒤에서 잡아주어도 자전거는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비틀거리며 넘어지기만 하는 것이다. 한참 악전고투 하는 중 어디선가 아저씨 한 분이 튀어나와서 내 자전거를 붙잡았다.
“전방을 보면서 밟아야지! 바보야, 겁 먹지 말고 저 멀리 앞을 보라구.” 아저씨는 우왕자왕 하고 있는 나에게 거진 윽박을 질러가며 매섭게 가르쳤다. 생판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혼나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황당한 가운데, 점차 내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말대로 먼 곳에 시선을 두고 페달을 밟자 자전거가 제법 달리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이제 탈 줄 아네.” 감사 인사를 받은 아저씨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친구와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자전거 요정 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몇 년 뒤 또 다른 친구가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자전거 요정 아저씨’를 만났을 때 내게 자전거를 빌려줬던 친구까지 셋이서 중랑천에 갔다. 이번에는 둘이 달라 붙었지만 역시나 자전거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때 놀랍게도 또다시 어떤 아저씨가 등장했다. 그는 우리를 제치고 자전거에 탄 친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중랑천을 배회하는 아저씨들이란 자전거 망아지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인가? 이 아저씨 역시 무사히 교습을 마친 후 왔던 곳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중랑천에 가거나 자전거를 탈 때면 자연스럽게 자전거 요정 아저씨들을 떠올리게 된다. 오지랖이라기엔 너무 흔흔하고 무뚝뚝했던 그 호의들을 말이다. 아저씨 덕분에 대만까지 가서 자전거 타보겠네요,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안녕!
- 당신의 친구, 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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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따뜩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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