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시골에 내려가지 않은 지 오래됐다. 아빠의 고향인 김제는 전라북도에 있는 곳이다. 명절 대이동을 할 때마다 키미테를 붙인 채 고속버스를 타고 6~7시간씩 기진맥진 실려 가야 했다. 할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 병원에 다니기 위해 도시로 올라오신 이후에는 김제에 갈 일이 없어졌고, 몇 년 후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친 후 장의차를 쫓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았던 것이 김제에 갔었던 마지막 기억이다.
김제에서의 추억은 단편적인 장면으로만 남아 있다. 근처에 유일하게 놀 만한 곳은 초등학교에 딸린 조그만 놀이터뿐이었는데, 마주 보고 앉아서 발을 구를 수 있는 그네를 타고 있노라면 꾸구-꾸구 하고 우는 새 소리가 들렸다. (다소 스산하게도 들렸던 그 소리가 산비둘기의 울음 소리라는 사실은 얼마 전에 알게 됐다) 내가 그곳에 갈 때는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휴일이었으니 사람이 없는 게 당연했겠지만, 인적이 드물고 적막한 분위기를 그 당시엔 좀 무섭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편식 심한 손녀들을 데리고 동그랑땡을 사러 공판장에 가던 할머니의 뒷모습과 시골길의 정경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 길에는 논과 밭과 더 이상 버스가 오지 않는 다 무너진 정류장이 불규칙한 줄무늬처럼 이어졌었다. 낯 가리는 뭉툭한 손녀를 할머니에게 얼마나 예뻐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애틋한 감정보다는 나프탈렌 냄새가 나는 베개와 눅눅한 유과, 손으로 직접 쓴 전화번호부 같은 조각난 이미지들이다. 그래도 그것들이 싫지는 않았다.
한참 엄마가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 중, 방송국 pd 출신의 유튜버가 김제로 내려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같은 시골 라이프를 가꾸는 모습을 보여주는 채널이 있다. 영상 속 김제의 모습은 드넓은 논밭에 파란 볏잎이 물결치고 유채꽃이 흐드러져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나에게 김제란 아무것도 싱그럽지 않고 삭막한 곳이었는데. (물론 할머니 댁이 있던 곳과 유튜버의 동네는 다른 면面에 위치해 있다) 그 유튜버는 밭도 일구고, 카페와 책방을 만들고, 묶여 있지 않은 강아지도 두 마리나 키우고 콘서트도 하면서 김제를 활기찬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맞아줄 사람 없는 곳이지만 한 번쯤은 그 동네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사실은 그 편이 오히려 좋을 듯하다. 아버지의 고향도 할머니의 집도 아닌 생뚱맞은 김제에 가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엄청나게 재미없는 단편 영화 같을 것 같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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