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제대로 고장 난 갓생 소녀, A/S가 필요해

그것이 잠시 그녀의 질주를 멈추게 할지라도

2024.11.21 | 조회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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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ley From Korea

권성은에서 헤일리가 되기까지, 캐나다에서의 짧은 기록

‘성취 중독’ 

20대 초반을 네 글자로 요약하자면 ‘성취 중독’ 일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그리 안간힘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의 모습이 가끔은 안쓰럽게 느껴진다.

늘 무언가를 이루고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썼다. 아무래도 캠퍼스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발목을 잡았던 탓이다. 새내기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에브리타임을 열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건 익명성을 악용한 공격적인 말들이었다. 그중에는 우리 캠퍼스를 비난하는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온라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떤 친구는 우리를 진짜 X대생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가짜가 된 기분이었다. 생각 없이 던져진 말들이 돌멩이처럼 날아와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때부터였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사회가 말하는 좋은 스펙을 쌓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비로소 ‘진짜’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눈에 띄는 대외활동 공고는 모조리 지원했고 합격 소식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친구들의 칭찬과 인정이 또 다른 보상이 되어 다가왔다.

자신을 돌보는 일은 뒤로 미룬 채 앞만 보고 달렸다. 시간을 아끼는 데 익숙해지며 ‘헤르미온느’라는 벌명까지 생겼다. 여행이나 밤늦게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시간 낭비라생각했다.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젊음의 특권이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라는 걸 어리석게도 몰랐다.

 

지칠 줄 모르던 경주마가 발을 헛디디기 시작한 건 2022년 겨울이었다. 어릴 적 방송국을 동경하던 TV 소녀는 2021년에 프리랜서 마케터로 그곳에 입성했다. 약 2년간 다양한 기회를 얻으며 방송 작가로도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유 모를 통증이 시작됐다. 핸드폰 알림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어느 날은 두통이 심해 침대에 누워 엉엉 울었다. 극복한 줄 알았던 강박 증세가 스멀스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고, 결국 엄마는 "돈을 벌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쉬라"고 했다.

결국, 서브 작가로 일한 지 3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개편 시기에 맞춰 작가 일을 관두기로 했다. 그 시기에 맞춰 LA행 티켓을 예약했다. 당장이라도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LA를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가족들이 있는 유일한 해외 도시였다. 둘째, 여행의 동행인인 엄마가 가고 싶어 했다.

티켓을 결제한 이후부터는 떠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미국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번거로웠지만 설렘이 불편함을 모두 흐릿하게 덮어 주었다. 

그리고 미국에 가는 김에 캐나다에 가기로 했다. 캐나다에는 내 친구 혜영이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난 밴쿠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혜영이를 만나기로 결심한 후에야 LA에서 비행기로 약 세 시간 거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캐나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저스틴 비버의 고향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땐 이리될 줄 알았을까.

1년 뒤 내가 캐나다에서 살게 될 줄.

 

그렇게 나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새로이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2023년 2월 4일 LA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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