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법칙
내 시선을 끄는 놈이 있다.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콧잔등을 건드리기도 한다. 내가 손사래를 치고 자리를 옮겨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을 뿐인데... 그 꼴을 못 보겠는지 급기야 내가 읽고 있는 문장 언저리에 앉더니 꼬불꼬불 걸어 다닌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적의로 가득 찼다. 이젠 내가 움직일 차례다. 비장하게 주위를 살핀다. 쓸 만한 도구를 찾아 손에 든다. 이미 낭비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평온을 되찾고 싶다. 포물선을 그리며 도망치는 모습에, 나는 약이 오른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팔을 휘두른다. 시행착오 끝에 위치를 선점한다. 가까이 다가왔을 즈음 재빨리 팔을 휘두른다. 그것은 유유히 빠져나간다. 아아... 도구로 대응하기엔 너무 작은 것일까. 일순간 몰려왔던 좌절을 뿌리치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그래, 맨 몸에는 맨 몸으로 응수해야지. 도구를 내려놓고 양 손을 들어 자세를 잡는다. 본능을 쫓아 나에게 다가오도록 살의를 최대한 숨긴다. 원을 점점 작게 그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숨죽여 집중한다. 깨알같이 작았던 것이 병아리콩처럼 커 보이는 그 순간, 짝!
아무리 날쌔도 체급의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법. 날파리가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었다. 날파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안나
📖감상 한마디
시선을 괴롭히는 날파리의 정체가 나중에 드러나서 재미가 배가된 것 같습니다. 누구나 겪을 상황에 대한 공감과 적당한 리듬감이 내내 지속되어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 글이었습니다. 날파리와의 싸움을 비장하게까지 그려낸 점이 긴장감과 웃음을 만들어낸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잡혀버린 날파리의 결말이 간단명료하게 묘사되어 오히려 그의 죽음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오광락
일상에서 그저 스쳐지나갈 수 있는 상황을 잡아내어 긴장감 넘치는 글로 표현해낸 점이 돋보였습니다. 날파리를 잡기 위한 나의 사투가 점진적 묘사를 통해 느껴져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게임’으로 비유한 점 역시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날이 선선해지면서 날파리와의 싸움이 줄어들 것 같아 다행입니다.
-SSY
일상의 사소한 사건인 '날파리와의 싸움'을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로 만들어낸 점이 매우 독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은 문장과 반복되는 동작 묘사 덕분에 생생한 전투 현장을 보는 듯했습니다. 또한 깨알 같던 날파리가 병아리콩 만큼 압도적인 존재로 확대되었다가 제거되는 과정에서는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마지막 문단의 표현에서는 단순히 인간과 날파리의 대결을 넘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와 불균형 속에서 드러나는 비극과 불가항력까지도 생각해보게 되는 글인 것 같습니다.
-조비온
😊 다음주 레터는 한번 쉬어갈께요~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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