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매직
가끔은 작은 일에도 마음이 지칠 때가 있다. 심호흡을 해봐도 깊게 쉬지 못한 숨이 남아있을 때가 있다. 나의 지난 토요일이 그랬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이 길의 끝에는 내가 원하는 삶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딸. 차가운 말 한마디에 마음이 바스러진 엄마. 둘이서 렌트카를 타고 각자의 숨을 쉬기 위해 무작정 달렸다. 붉게 물들던 하늘이 서서히 파랗게 식으며 저녁이 될 무렵 우린 허브 농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인기가 많은 핑크 모래가 있는 곳부터 가보기로 했다. 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가파른 언덕 길을 오르며 두세 번 걸음을 멈춰서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숨통 좀 틔려고 왔더니...’하는 생각이 들 무렵, 산등성이를 반듯하게 다듬어 놓은 널따란 평지 위에 도달했다. 수만 마리의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LED 불빛, 몽글몽글한 글귀의 네온사인, 모래 언덕과 그 위에 심겨진 나무들까지 모든 게 핑크로 뒤덮인 세상. 그곳에서 우리는 마냥 신이 나 있었다. 신기하다는 듯 분홍색 모래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마젠타 핑크색 나무들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마치 엄마의 치마폭에 들어가 장난을 치며 노는 어린아이들처럼. 그렇게 우리는 충분히 충전하고 새 힘을 얻었다.
늘 잘해야 하고, 더 가져야 하고, 잘 버텨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세상 속에서, 강해지기 위해 몸부림치고, 능력치 이상으로 애쓰느라, 벌겋게 달아오른 마음 위에 핑크색은 조용조용히 쉼과 위로라는 마법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 헤어짐이 아쉬워 자꾸 뒤돌아보듯 가던 길을 멈추고 머리를 돌려 두 눈 가득 핑크색을 담았다. 서서히 우리의 호흡도 돌아오고 있었다.
-조비온
▶ ‘핑크색’은 단순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넘어, 정서적 불안과 분노, 애정결핍을 완화하는 심리적 안정효과를 지닌 색이다. 모성애적 보호감을 자극하여 내면의 안정감을 회복시키며, 감성 회복과 자기 수용을 돕는 “감정의 쉼표” 같은 색으로 정의한다.
-《The little book of colour-Karen Haller 》 Penguin life, 2019 -
📖감상 한마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깊게 쉬지 못한 숨이 남아있다’거나 ‘각자의 숨을 쉬기 위해’라는 탁월한 표현들 덕분에 그 때를 떠올리며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시각적인 묘사들 역시 뛰어나서 직접 눈앞에 그 장면들이 펼쳐지는 듯한 행복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핑크색이 좋아졌었는데 핑크색의 그런 효과 때문이었나 봅니다. 호흡을 되찾기 위해 자연으로 나가봐야겠습니다.
-SSY
무겁게 시작해 살짝 익살스러웠다가 따뜻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어, 짧은 글 안에서도 감정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시각적으로 묘사해 생생하게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 것도 이 글의 장점인 것 같아요. 덕분에 잠깐 허브 농장에 다녀온 것 같습니다. 2025년의 한가운데로 접어들며 연초에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산적해있는 문제가 무거워 지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입니다.
-안나
한 편의 시를 읽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글귀와 의미가 담긴 글이었습니다. 그 글귀를 따라 핑크빛 풍경에 함께 당도한 느낌입니다. 그 가운데 어머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그리고 인생이라는 당연하지만 힘겨운 고난을 이겨내고 있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어서 더욱 뭉클해졌습니다. 핑크색이라는 따뜻함이 위로가 되듯 내가 좋아하는 색을 떠올리며 찾아보게 됐습니다. 색이 가득한 세상에서 색이 주는 풍요로움을 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머쓱해지기도 하네요.
-오광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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