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백번만
등은 바닥에 닿아있지만 고개와 다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45도 각도로 천장을 찌르고 있다. 몸을 가누느라 복부가 부들부들 떨리는 와중에 어깨 관절로는 팔을 우아하게 움직여야 한다. 호흡이 가빠온다.
이게 무슨 신종 고문인가 싶겠지만 필라테스의 ‘헌드레드’라는 동작이다. 코로 다섯 번에 나누어 균일한 양의 숨을 들이쉬고, 마셨던 숨을 오므린 입으로 다섯 번에 나누어 내쉰다. 이렇게 열 번의 호흡이 일어나는 걸 한 번으로 치고, 이것을 열 번 반복하면 숨을 마시고 내쉬는 횟수가 총 백 번이 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흡을 하는 동안엔 바닥에서 띄워 놓은 어깨와 목이 긴장하지 않도록 복근에 힘을 주고, 들고 있는 양 다리가 흔들리지 않게 골반을 고정해야 한다. 여기에 양 팔을 바닥과 평행하게 쭉 편 채로 호흡에 맞춰 아래위로 움직이는 동작까지 추가된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팔 동작의 범위, 다리 높이를 조절한다. 이렇게 호흡, 근육, 골격, 신경이 협응하며 하나의 동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요즘 들어 글쓰기도 이 ‘헌드레드’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문단을 어떻게 배치해서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중요한 문장을 어떻게 써서 각 문단 안에서 잘 드러낼지, 그 문장 속 단어는 어떻게 배열해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할지... 이 외에도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 많다. 글의 전체적인 구조에서부터 문단, 문장, 단어, 심지어 문장부호까지 크고 작은 것들을 모두 신경 써야 좋은 글 한 편이 완성된다. 처음엔 피드백 받은 것을 하나씩 차례로 적용해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쓸수록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단어를 고쳐 다듬은 문장이 뒤의 문장과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 문장을 기준으로 앞 뒤 문장을 고치면 문단 안에서 그 세 문장만 도드라졌다. 한 문단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고치면 글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삐뚜름하게 어긋나 있었다. 내 손으로 다듬을수록 고장 난 사다리 같아지는 글을 보면 노트북을 닫아버리고 싶어졌다.
헌드레드를 배운 첫 날을 떠올려보았다. 동작의 겉모양을 만들기 바빴던 것 같다. 고개와 다리를 들고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작을 반복 연습하며 근육이 붙기 시작하니 호흡이 트였고, 숨을 쉴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다시 근육을 사용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익힐 수 있었다. 고르게 호흡하는 동시에 근육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즈음 골격의 움직임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는 동작을 할 때 바른 자세를 벗어나게 되면 스스로 알아채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팔을 아래위로 저을 때마다 근육과 호흡을 통제하며 온 몸이 협응하는 것을 느끼며 움직일 수 있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기에 급급했던 글쓰기도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복하며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언젠간 탄탄한 구조와 정갈한 문장, 적절한 단어가 협응하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 고문 같던 헌드레드가 능숙해진 것처럼.
-안나
📖감상 한마디
필라테스 동작과 글쓰기를 비유해서 표현한 부분이 참 돋보였습니다. 적절하게 잘 매치시켜서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헌드레드’ 자세를 완성하기 위한 동작들이 단계별로 명료하게 설명돼 있는 것처럼 글을 쓸 때 고려해야할 점들 역시 조목조목 잘 적혀 있어서 헌드레드 동작을 시도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글쓰기에 도전해보려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운동치인 저는 반대로 글쓰기의 단계를 필라테스 동작에 한번 적용시켜봐야겠습니다. 도입부 첫 문단에 궁금증을 유발하는 묘사들로 배치한 구성도 좋았습니다.
-SSY
헌드레드라는 동작을 익히는 과정을 글을 쓰는 과정과 맞대어 표현해서 읽는 재미를 배가 하는 것 같습니다. 계속 노력해서 동작이 능숙해졌듯 글도 언젠가는 잘 써내겠다는 다짐이 느껴져서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났습니다. 저도 같은 입장에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려워했던 동작을 해내는 것처럼 글을 쓰는 것도 좋아질 것이라 공감하게 됩니다. 예전부터 읽어왔던 안나 님의 글은 미숙할 수 있지만 매력적인 글이었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제목 짓는 걸 톡톡 튀게 정말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글이 더욱 기대가 되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오광락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표현들, 그리고 필라테스 동작과 글쓰기를 연관 지어 쓴 부분 덕분에 글을 읽으며 공감이 잘 되었습니다. 중복되는 세밀한 표현들을 정리하면 문장 흐름도 조금 더 자연스럽고 글이 빠르게 읽혀질 것 같습니다.
-조비온
평범한 일상에서 글감을 찾고 그것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필라테스와 글쓰기의 공통점을 저 또한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처음 할 때는 하는 것에 급급하여 처음 쓰는 모든 감각들을 일깨우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계속해서 하다보면 어느샌가 익숙해지고 능숙해진다는 말이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도전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이었습니다.
-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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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하게 잘 매치시켜서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헌드레드’ 자세를 완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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