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저주
며칠 동안 소복이 쌓인 눈 위를 걸었다. 발밑에서 뽀득뽀득 소리가 나며 내 발자국이 고요히 이어졌다. 내 걸음마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이 따라붙었다.
길가 양옆으로 늘어선 가게들은 서로 더 밝게 빛나려는 듯 전구를 잔뜩 매달아 두었다. 반짝이는 불빛 아래 사람들은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들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크고 작은 트리들이 세워져 있었다. 트리 앞은 아이들의 차지였고, 한 장이라도 더 추억을 남기고 싶은 부모들은 자식이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 옆에서 연인들은 서로의 목도리를 고쳐 매주며 스치는 손끝마다 작은 웃음을 흘렸다. 거리의 사람들은 전부 인생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마치 크리스마스에는 모두에게 행복하라는 주문이라도 걸린 것처럼.
나는 그 웃음들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정확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따뜻함들에 내가 멈춰진 것에 가까웠다. “이제 연말이구나.” 작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정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처럼. 나만 세상에서 혼자가 된 듯한 쓸쓸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휴대폰을 잡았다. 약속을 잡아볼까 싶어 화면을 켰지만, 손가락은 그 위에서 잠시 멈칫 했다. 그냥 평소처럼, 아무 약속 없는 하루로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면 안 되는 걸까.
도시의 불빛이 밝아질수록 내 마음은 조금씩 더 어두워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해온
📖감상 한마디
첫 번째 문단의 ‘내 걸음마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이 따라붙었다’, ‘가게들은 서로 더 밝게 빛나려는 듯 전구를 잔뜩 매달아 두었다’와 같은 문장이 두 번째 문단의 ‘마치 크리스마스에는 모두에게 행복하라는 주문이라도 걸린 것처럼’과 연결되며 행복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시끌벅적한 상황 속에서 자신만 고요한 행복을 원하는 것 같은 외로움이 느껴졌어요.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대한 축제날일지라도 ‘나만 세상에서 혼자가 된 듯 쓸쓸’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또한 모두가 마음의 저항 없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준 글이었습니다.
-안나
너무 과한 표현이나 너무 많은 수식어 대신 딱 적절하고 적합한 묘사들로 문장들이 잘 다듬어져있어서 잘 읽히면서도 오감을 자극하는 풍부한 글이 된 것 같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 떠오르는 쓸쓸함 뒤로 나만의 행복, 나만의 길을 꿋꿋이 좇아가는 강한 자아가 느껴져 의외로 긍정적이고 희망찬 기운이 전해졌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어쩌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SSY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 ‘캐럴’, ‘셔터 소리’, ‘웃음소리’ 등 청각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거리의 생동감을 잘 표현한 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행복한 풍경과 혼자된 듯한 쓸쓸한 감정을 대비함으로써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특정한 날에는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감과 의무감에 대한 반문과 군중 속 고독에 대해서 담담하게 써내려간 부분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조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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