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시집 간 큰 딸 내외가 온단다. 갑자기 집안이 부산스럽다. 아버지는 거실 탁자 위 먹다 만 주전부리를 정리하고, 괜히 식탁 의자를 이리저리 옮겨 본다. 엄마는 찬장과 냉장고를 오가며 반찬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죄다 꺼낸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에 먼지들이 춤을 춘다. 오늘만큼은 집안 구석구석이 딸을 맞이할 준비로 활기를 띤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비 속에서 구수한 향이 피어오른다. 며칠 전 미리 말려 둔 파 뿌리 한 줌과 멸치, 다시마를 넣고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곱게 익힌 집된장 두어 숟가락을 툭, 던져 넣는다. 끓어오르는 찌개에, 싱싱한 조선호박과 말캉한 두부 한 모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칼칼한 맛을 더해줄 청양고추도 쫑쫑 썰어 올린다. 그리고는 나무 국자로 휘휘 저으니, 냄비 가득 따뜻한 정성이 차오른다. 갓 담근 아삭한 겉절이 한 접시, 노릇하게 구운 고기 한두 점,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한 공기. 거창하진 않아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배가 고팠는지 녀석들은 허겁지겁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그리고 밥통 뚜껑이 서너 번 더 열렸다 닫힌 후에야 비로소 숟가락을 놓는다. “배부르네” 하면서도 과일 먹을 배는 남겨뒀는지 빨갛게 잘 익은 수박 한 조각을 앙! 야무지게 베어 문다. 달콤한 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연신 하품을 하더니 낮에 든 볕이 뜨뜻하게 달구어 놓은 마룻바닥에 등을 대고 “아이고 편하다~”며 스르륵 눈을 감는다. 그렇게 한 잠 늘어지게 자고 나면 그제서야 진짜 집밥이 완성된다. “아~ 잘 잤다! 어? 늦었네. 집에 갈 시간이다!” 녀석들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엄마의 마음을 가득 담아 싸준 올망졸망한 반찬 꾸러미를 챙겨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집을 나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마치, 텅빈 연료통에 기름을 가득 채운 자동차가 주유소를 떠나듯, 든든한 힘을 얻어 서서히 멀어져 간다. 사랑스러운 녀석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힘껏 외친다.
만땅이요! 출~바알~
-조비온
📖감상 한마디
글의 도입부터 가족을 만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느껴졌습니다. ‘먼지들이 춤을 춘다’는 표현으로 반가움과 활기를 나타낸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식사 시간의 풍경을 묘사하는 두 번째 문단에서도 밑줄 치고 싶은 표현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특히 ‘밥통 뚜껑이 서너 번 더 닫혔다 열린 후에야 숟가락을 놓는다’거나, ‘한 잠 늘어지게 자고 나면 그제서야 집 밥이 완성된다’는 문장에서 감탄했어요. 생각지 못한 표현 속에서 깊은 공감을 마주했습니다. 재밌게 읽은 것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몽글몽글해진 글이었습니다
-안나
간소하지만 따듯한 집밥을 느끼면서 가족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있어서의 집밥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집밥을 준비할 때 쓰인 ‘툭’, ‘숭덩숭덩’, ‘쫑쫑’, ‘휘휘’와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의 적절한 묘사로 재미가 가득한 글이기도 했습니다. 가족이라는 아낌없는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집밥의 완성은 단순히 먹을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여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광락
튀지않는 담백한 표현으로도 충분히 오감을 자극하는 풍성한 글을 완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글이었습니다. 하나의 글에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골고루 건드리는 묘사들을 다 담아낸 점이 돋보였습니다. 과하지 않고 딱 적당하게 들어간 수식어들 역시 각 문장을 빛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접속어 없이도 문장 간 연결이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첫 문단이 흡입력 있게 읽혀서 좋았습니다.
-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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