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동생, 양양이 (3)
엄마가 10만원을 주고 데려왔다는 잡종 푸들 양양이는 10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았다. 우리가 양양이가 잡종이라고 생각한 것은 양양이의 꼬불꼬불한 털 때문이었다. 양털처럼 희고 보드라운 털 속에는 빨갛고 얇은 새치가 속털처럼 드문드문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보고 누군가는 순종 푸들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마저 웃으면서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빨갛고 거칠거칠한 새치까지도 사랑스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양양이가 가장 좋아한 사람은, 그리고 양양이를 가장 좋아한 사람은 물론 아버지였다. 그건 믿음이를 떠나 보낸 우리가 양양이를 서둘러 입양한 이유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을 것이다. 믿음이가 그랬듯, 양양이도 가족 중 유일하게 아버지의 귀가를 반겨 주었으니까. 반 년 남짓 우리 집에 머물렀을 뿐인 믿음이와는 달리 양양이는 10년의 짧은 생을 다하도록 항상 아버지의 곁에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그게 아버지에겐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저녁밥 한 술을 뜨더라도 고기 반찬 한 점은 꼭 양양이에게 먹이는 팔불출이 되었다.
우리 가족의 온 이목이 양양이를 향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양양이가 몸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양양이는 유난히 잔병 치레가 잦았다. 무언가를 잘못 먹으면 반드시 설사를 하고 끙끙 앓았다. 뿐만 아니라 양양이는 한 눈이 보이지도 않았다. 불의의 사고였지만 양양이를 애꾸로 만든 건 다름아닌 아버지였다. 골프에 한참 취미를 붙이고 있었던 아버지는 이따금 안방 문을 닫고 골프채를 휘두르며 스윙 연습을 했었다. 그런데 닫힌 줄 알았던 방문이 열려 있었고, 양양이는 골프채를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신이 나서 달려들었던 것이다.
골프채에 각막이 떨어져나간 양양이는 한동안 동물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다친 눈에 갑자기 핏물이 차올라서 황급히 동물 병원으로 안고 뛰어간 것도 수 차례였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아버지를 탓하지 못했다. 가장 상심했던 것이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 후로 지금껏 골프채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버지는 인색했던 지갑을 아낌없이 열어 양양이의 병원비를 대었다. 병원에서는 다친 안구를 적출하고 봉합하는 것이 싸고 빠르다고 넌지시 제안했고, 반려견 보험 같은 게 흔하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제 구실도 하지 못하는 양양이의 다친 눈을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어했다.
그건 아버지가 얼마나 구두쇠였는지를 생각하면 기적같은 일이었다. 아버지가 평소에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문제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돈이었고 하나는 형과 나의 영어 교육 문제였다. 아버지는 당신이 보기에 낭비라고 여겨지는 일이 있으면 화를 버럭 내며 십 원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건 아마 IMF 이후 벌였던 사업에서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기껏 청약이 당첨되었던 아파트 한 채를 빚을 갚기 위해 처분한 후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동업자는 아버지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친구와 집을 잃은 아버지의 빈 자리엔, 꼬리를 흔드는 애꾸눈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양양이의 상처는 잘 아물었다. 평생토록 서로에게 안겨 주었던 상처에는 눈을 흘겼던 우리 가족은 강아지의 다친 눈에는 지칠 줄도 모르고 온 정성을 쏟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랬기에 우리는 평화로울 수 있었다. 걱정거리나마 우리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고, 그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동안에는 과거의 상처 따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불안하게나마 우리 집에는 평온이 싹텄다. 퇴근한 아버지를 맞는 내 목소리에는 어느덧 고등학생다운 장난기도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나는 양양이를 사랑했다. 양양이가 나에게 두 가지를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가족이란 것이 평화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가족은 사랑할 만 했다. 흔들리는 외나무다리 같은 불안에서 자라난 나는 독신주의를 꿈꾸고 있었다. 가족을 이루는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바뀌었다. 그건 일차적으로는 결혼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 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가장 깊은 근간에는, 양양이와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웃음꽃이 피었던 우리 집안의 풍경이 자리잡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을 보았더라도 저건 내 얘기가 아니라며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관계의 상실이었다. 죽음이라 이름하는 그것이 실존한다는 것을, 그것이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당장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나른하게 낮잠을 자는 조그만 강아지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그 뻔한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려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을, 양양이는 나에게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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