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동생, 양양이 (2)
믿음이의 원래 주인인 형 친구네 가족들과 우리는 강아지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만들고 동네 여기저기와 동물병원 같은 곳에 붙이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을 짜며 전단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믿음이를 찍어둔 사진은 없어서(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란 게 없었던 시절이니까) 인터넷에서 비슷한 슈나우저 사진을 찾아 붙여야 했다.
믿음이를 데리고 있다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거의 2주 가량 지난 무렵으로 기억한다. 그 집 딸이 골목에서 혼자 놀고 있던 믿음이에게 인사를 했더니, 믿음이가 냅다 그 집까지 쫄래쫄래 따라갔단다. 귀여운 말썽쟁이를 비글 같은 매력이 있어서 '비글미(비글+美)'가 있다고 얘기하곤 하는데, 그 후로 내 머릿속엔 '슈나우저미'가 비글미보단 훨씬 강력한 표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집에서도 주인을 찾아보려 수소문하다 포기하고, 자기네가 기를 생각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러 동물병원에 들어갔다가 비로소 전단지를 발견하고 연락을 줬다고 했다.
믿음이는 이후 원래의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매일 서로의 집에 놀러다니는 사이였던 형 친구네와 사이가 서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가족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었는데 누굴 탓하겠는가. 믿음이를 찾았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가서 믿음이를 한 번 본 이후로 나는 다시는 믿음이를 보지 못했다. 다만 내 머릿속의 ‘슈나우저미’를 더욱 강화시키는 후일담은 전해들을 수 있었다.
믿음이는 원래 식구들에게 돌아가서도 여전히 가출을 밥 먹듯 했다고 한다. 그런데 형 친구네 가족들이 명절 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데 믿음이를 도저히 맡길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맡겼다 잃어버린 적도 있었으니 남에게 맡기기가 더욱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집을 오래 비우는 것도 아니니 별 일 있겠느냐며 이 식구들은 그냥 믿음이를 반지하 집에 혼자 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믿음이는 창문의 방충망을 뚫고 기어이 또 가출을 해버린 것이다. 어떻게든 믿음이를 다시 찾아냈지만 그 집 식구들도 넌덜머리가 나 버린 후였다.
결국 믿음이는 예전에 가출을 했을 때 임시보호를 해 줬던 식구네에서 키우게 되었다.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었지만, 믿음이에게는 슬픈 일이었다. 결국은 믿음이가 버림을 받은 이야기니까. 그 이후 믿음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저 믿음이의 새로운 가족들이 믿음이의 ‘슈나우저미’를 싫어하지 않았기를, 그리고 믿음이가 버림받은 상처를 잘 도닥여줄 수 있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믿음이가 우리 집을 떠난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 가족도 믿음이의 공백을 여실히 느껴야만 했다. 한 마리의 강아지가 우리 가족들에 가져 온 것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동물을 좋아했다. 한 주가 아무리 전쟁 같았더라도 일요일 아침에는 티비 앞에 모두 모여앉아 동물 농장을 보며 평화를 만끽하는 것이 우리 집의 일과였다. 믿음이는 우리 집에 그런 평화가 일요일 아침만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머물게 해 주었다.
사춘기의 절정이었던 나는 그 즈음에 반항기가 폭발해 매사에 아버지와 날을 세우고 싸웠다. 어머니와 형과 내가 편을 먹고, 두 사람의 무언의 응원 속에서 내가 아버지와의 싸움판을 벌이던 것도 이 즈음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부드러울 때도 이따금 있었지만, 이 때만큼은 우리 집은 매일이 전쟁이었다.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 외로우셨을 것이다.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뼈빠지게 일을 하고 돌아온 집에서 가족들로부터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나라면 그런 생활을 오래 견디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 아버지였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믿음이는 집에서 공공의 적이 된 아버지를 유일하게 반겨주는 존재였다. 덕분에 매일 저녁 우리 집의 풍경이 달라졌다. 이전 같았으면 아버지가 돌아오면 아버지의 눈치를 살살 살피다가, 아버지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 보이면 우리는 얼른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거나 핑계를 대고 외출을 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귀가한 아버지 앞에서 믿음이가 배를 까뒤집고 꼬리를 흔들고 있으면, 우리도 그 때만큼은 각자 방으로 흩어지는 대신 까르르 웃으며 아버지를 반길 수 있었다. 믿음이의 재롱이 우리 가족들의 크레바스같은 감정의 골을 매워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골로부터 시선을 돌려 서로를 웃는 낯으로 볼 수 있게는 해 주었다. 우리 가족은 믿음이에게 평화를 빚졌던 것이다.
우리 가족은 차마 그 냉랭함을 다시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믿음이를 원래의 식구들에게 돌려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엄마는 노란색 꽃무늬 이불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꽃무늬 이불엔 어른 주먹 하나보다 조금 더 클까 말까 한 강아지가 폭 싸여 있었다. 너무 작아서 방문 문턱도 혼자 넘지 못했던 그 강아지는 미용실에 다녀온 날 엄마의 파마 머리처럼 복슬복슬하고 흰 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하얀 강아지에게 양양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다행히 우리 가족 모두 그 이름을 좋아했다. 그 즈음에 우리 가족이 즐겁게 의견을 일치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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