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17) - 나의 작은 동생, 양양이 (1)

나의 작은 동생, 양양이 (1)

2022.08.28 | 조회 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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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별 에세이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8월도 벌써 얼마 남지 않았네요. 이번 연재도 한두 편 정도만 더 쓰면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회사를 퇴직하고 간만에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근무일은 이번 달 말일까지지만, 남은 연가를 퇴직 직전에 모두 몰아 쓴 덕분에 마지막 실근무는 이번 주 금요일이었지요. 오랜만에 한량없는 백수가 된 느낌이 일단은 즐겁습니다.

 

이로써 12년 하고도 반 년 만에 저는 모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학부생으로 입학해 군대를 다녀오고, 미적미적 휴학을 하다 엉겁결에 대학원에 진학하고, 그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2년 간 행정직으로 근무하며 모교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지요. 이제 사설 상담센터에서 인턴 상담사로 근무하며 한동안 내담자를 만날 테고, 나중에 조건이 괜찮은 자리가 있다면 다시 모교로 돌아올 생각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건 나중의 일이지요. 이번 주말은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은 여운에 푹 잠겨 보냈습니다.

 

희나를 제외한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저는 사고뭉치 부적응자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2년은 무탈하고 성실하게 근무를 하며 잘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떠나는 걸 아쉬워하는 교직원 선생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저는 참 낯선 감정을 느꼈습니다. 성공의 감격이었지요. 나도 무언가를 잘 할 수 있구나, 나는 조직 사회에서도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성실하게 제 몫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제게 결여된 줄 알았던, 제가 평생 가지지 못할 줄 알았던 제 모습의 하나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작은 성취감에 언제까지고 매몰되어 있을 수는 없지요. 당장 내일 저는 새로 근무할 상담 센터에 교육을 받으러 갑니다. 그러나 지금의 성취감을 한동안은 가슴 한 켠에 안고 지낼 것 같습니다. 그게 단단하게 뭉치고 여물어, 또다른 자신감이 될 수 있을 때까지요.

 

바람이 갈수록 서늘해집니다. 이젠 엷은 여름 이불을 덮고 자기엔 조금 추운 날씨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여름은 어땠나요? 마음 한 켠에 담아둘 만한 좋은 것이 있었나요? 어떤 감정이든 조금은 여물어야 우리에게 쓸모 있는 것으로 남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그건 마찬가지겠지요. 여러분이 가슴에 남기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요? 그 이름을 댓글에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여름이 어떤 이름일지 궁금해요.

 

 

나의 작은 동생, 양양이 (1)

 

우리 가족이 강아지를 처음 키운 건 내가 중학교 2학년 즈음이었다. 우리가 살던 빌라의 옆 동에는 우리 형의 친구가 살았다. 그런데 우리 빌라가 재건축을 하게 되면서 빌라 입주민들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각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가까운 곳에 괜찮은 집을 얻을 수 있었는데, 형의 친구네 가족이 구했던 집은 비좁은 반지하였다. 그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까지 데리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공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믿음이라는 이름의 미니어처 슈나우저를 한동안 맡아주게 되었다.

 

믿음이는 조그만 미니어처 슈나우저지만, 슈나우저는 슈나우저였다. 그 사고뭉치로 유명한 3대 악마견(좀 더 직설적인 표현으로는 ‘지랄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슈나우저 말이다. 그러나 그 악마견의 뒤치다꺼리는 대개 철부지 중학생인 내가 아니라 어머니의 몫이었기에, 나는 그저 그 일들을 대개는 유쾌한 해프닝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반 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믿음이가 벌였던 사고들은 강산이 한 번 하고도 반쯤 더 바뀔 시간이 지날 동안에도 내 기억 속에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다. 

 

최초의 것은 바로 이삿날에 터진 사건이었다. 형의 친구네가 우리 가족보다 일찍 이사를 가면서, 믿음이는 아직 이사를 하지 않은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웬걸, 이삿짐을 거실에 바리바리 싸둔 채로 믿음이를 집에 두고 외출한 게 화근이었다. 슈나우저의 털은 대부분 검지만 눈썹과 코, 턱에는 흰 털을 가지고 있다. 그게 턱수염을 기른 키 작은 할아버지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줘서 꽤나 귀엽다. 그런데 우리를 반겨주는 믿음이를 안아들고 보니 턱수염과 가슴팍에 노란 물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이었다!

 

물론 믿음이의 턱수염에만 노란 물이 든 건 아니었다. 온 집안이 노란 색으로 난장판이었다. 그 물은 쉽게 빠지지도 않아서 한동안 믿음이의 턱수염은, 그리고 우리 집의 온갖 가재도구들은 샛노란 개나리색을 뽐내고 다녔다. 지금도 어쩌다 그 노란 물이 들었는지는 미스테리다. 집구석에 3분 카레라도 떨어져 있는 걸 뜯어먹었나? 그랬다면 카레 냄새가 당연히 진동을 했을텐데. 아니면 노란색 물감 튜브라도 어디 떨어져 있었던 걸까? 아무튼 믿음이는 우리 집에서 거창한 신고식을 치뤘고, 형과 나는 그저 믿음이의 노란 턱수염이 웃겨서 배를 잡고 낄낄 웃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앞으로 믿음이가 칠 사고의 전초전에 지나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집의 구조는 좀 독특했다. 우리는 단독주택의 2층 전셋집에 입주했는데, 세 가구가 2층을 함께 쓰고 있었다. 우리 집은 세 가구 중 가장 넓었고, 거실의 큰 창을 열면 제법 널찍한 베란다로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 집에 딸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베란다는 2층 입주민이 공용으로 쓰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베란다 한 쪽에는 복도로 통하는 샛문이 달려 있었고, 다른 입주민들도 베란다에 곧잘 빨래를 널거나 바람을 쐬러 나오곤 했다.

 

우리는 거의 항상 거실 창을 열어놓고 지냈다. 비좁은 집에서 야외 느낌을 낼 수 있는 널찍한 베란다가 있으니 믿음이가 가장 큰 수혜자였다. 믿음이는 그 베란다에서 뒹굴고 달리고 똥오줌을 해결했다. 덕분에 우리 가족도 믿음이를 키우는 게 좀 수월했다. 강아지들이 사고를 치는 건 대개 운동량이 부족해서 그 에너지를 실내에서 풀다 보니 생기는 일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집에서 믿음이는 집구석이 답답하면 언제든 베란다를 뛰어놀며 맘껏 체력을 소모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인터넷에서 악마견을 검색하면 수두룩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이가 장판과 벽지를 뜯어먹거나, 리모컨을 씹어서 망가뜨리는 일 같은 건 거의 없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믿음이가 악명 높은 슈나우저 답지 않은 천사견처럼 보일 것이다. 베란다에서 혼자 잘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얌전히 있는 강아지가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칠까? 그건 바로 가출이었다. 다른 입주민들이 베란다를 쓰고 샛문을 제대로 닫지 않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는 그 샛문이 열려 있는 걸 보면 돌연 야생의 질주본능이 꿈틀댔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믿음이는 보이지 않고, 샛문이 열려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 믿음이를 찾으러 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놀란 마음으로 뛰쳐나가 동네가 떠나가도록 믿음아, 믿음아,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 어디선가 믿음이가 달려왔다. 바람을 쐬고 가슴이 부풀어 헥헥거리는 놈은 내가 울고불고 화를 내도 신이 나서 내 주위를 방방 뛰어다녔다.

 

그렇게 믿음이는 강아지가 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를 상습적으로 저지르고 다녔다. 믿음이는 우리 집 강아지도 아니었으니 남의 집 강아지를 잃어버린다면 보통 난감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놀라울 정도로 부주의했다. 아무튼 믿음이가 집에서 멀리 벗어난 적은 없었고, 아무튼 이름만 부르면 항상 달려 왔으니까. 샛문을 자동으로 닫는 도어 클로저를 설치하거나, 하다 못해 연락처가 적힌 이름표 정도라도 목에 걸어줬다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그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그 날도 베란다 샛문이 열려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내 방에 책가방을 툭 던져놓고는 투덜대며 집 앞으로 나가 믿음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믿음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믿음이를 부르던 나의 목소리가 점점 울음소리로 바뀌었지만 믿음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온 가족이 돌아와 동네를 이 잡듯 뒤지며 믿음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럼에도 믿음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글쓰기 공동체 흰 종이 위의 날개 소속 작가입니다. 심리상담과 문학치료를 공부했습니다.

https://litt.ly/heena_day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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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별 에세이 (34)

    0
    about 2 years 전

    자신감이요. 단단하고 언제 어디서나 흔들리지 않는 그런 자신감이 있으면 좋겠네요. 좀 자신감이 과할 때도 있지만 그 때를 빼면 쭈글쭈글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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