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9월 세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깊이와 관점이 있는 기사와 칼럼을 모은 REPORT EDITION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여성 대상 폭력과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성차별적 구조, 난임과 아이돌 육성 등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건강권 문제, 탈코르셋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사회운동으로써의 불매, 여성 서사 드라마의 현황 등에 대한 기사들을 모아 분야별 여성 문제를 좀 더 심도 있게 들여다보았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교제살인을 막기 위해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 대한 처벌로써 가정폭력처벌법 전면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국가가 주한미군을 상대로 기지촌 성매매를 자행해왔음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물증인 동두천 성병관리소가 철거 위기에 놓였습니다. 시민단체들과 기지촌 성매매 피해자들은 성병관리소를 근현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여성평화 인권박물관 등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팀 eNd 활동가들의 재판방청 연대 기록을 담은 <그래서 우리는 법원으로 갔다>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국내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이 7%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여성 고용 비중, 연봉 격차, 근속연수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성별 격차와 양극화 해소를 ‘국가 계획의 문제’로 바라본 아이슬란드의 사례를 살펴보았습니다. 국회 토론회에서 아동청소년이 대부분인 아이돌 연습생들의 노동권과 인격권 침해 실태를 조명했습니다.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뜻하는 출생 성비가 다시 정상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남아 선호 사상이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난임 여성 당사자가 말하는 난임을 둘러싼 젠더와 사회 문제를 들어보았습니다.
탈코르셋과 제로웨이스트 등 사회운동으로써의 불매 실천과 이를 지속시키는 사회적 감정인 죄책감을 살펴보았습니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간이 현재에 어떻게 기입돼 있는지 문학장을 통해 들여다보았습니다.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가 보여주고 있는 여성 대상 폭력의 미러링 방식에 대해, 그리고 하반기에도 계속될 여성 서사 드라마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뉴스 헐리버리 이번 호에서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동안 뉴스 헐리버리 영문판 발행이 들쭉날쭉했는데요, 앞으로 영문판 발행은 해외 독자들의 관심사와 맞닿은 여성 인권과 안전 관련 기사를 모은 TOPIC EDITION으로만 한정하고 PEOPLE과 REPORT는 국문판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소원 드림
교제살인 막으려면 ‘친밀한 관계 내 폭력’ 처벌법 필요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약칭 가정폭력처벌법)엔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①고소 특례조항 등을 통해 형법상 ‘배우자’, ‘친족’은 처벌되지 않거나 고소할 수 없었던 일부 범죄를 처벌, 고소 가능하게 했다는 점, ②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강력한 통제를 수반하는 폭력의 특성을 반영하여 ‘응급조치, (긴급)임시조치 제도를 통해 경찰 신고 시 사건 초기 단계부터 수사기관이 피해자 신변보호 및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조치할 수 있다는 점, ③피해자보호명령제도를 통해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청구하여 일상을 가해자의 추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정폭력처벌법은 “가해자 처벌을 실질화하지 못한다”는 등의 여러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최선혜 사무처장은 지적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한국여성의전화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관련 법안’으로서의 내용을 담은 가정폭력처벌법 전면개정안을 제안했다.
개정안엔 여성계가 오랜 기간 요구해왔던 ‘법의 목적’ 변경이 포함되어 있다. 현행법의 목적엔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최선혜 사무처장은 “‘가정유지‘ 관점으로 인한 문제점은 꾸준히 문제 제기 받아왔으며, 국제사회에서도 이러한 관점의 목적 조항에 대한 우려와, 관련 조항 폐기를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선 “이 법은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를 정하고, 피해자의 자유로운 생활 형성과 인권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변경했다.
(박주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24.09.23)
"'난 정말 인간도 아니었구나' 하지 않게, 동두천 성병관리소 남겨주세요"
서울 은평구 출신이었던 김아무개(67·여)씨는 열아홉 때인 1976년 '미군 장교 클럽'이라고 적힌 신문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어린 마음에 미국이나 서양 문화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씨의 나이를 묻더니 서울 종로로 오라는 얘기를 듣고 친구와 함께 갔다. "좋은 데 보내주겠다"던 소개업자의 차를 타고 향한 곳은 경기도 의정부의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업소였다.
기지촌의 포주는 소개업자에게 돈을 지불했다며 대뜸 김씨에게 돈을 갚으라고 했다. 돈이 없다고 하니 일을 해서 갚으라고 했다. 대신 새 옷과 화장품을 주며 먹여주고 재워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후에 알고 보니 이 역시 모두 김씨가 갚아야 할 '빚'에 더해지고 있었다. 첫날 생긴 빚만 당시 돈으로 80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 나이엔 꿈도 못 꿀 큰 돈이었죠." 업소를 떠나지 못 하게 하려는 포주들의 술수였다. 김씨 외에도 이미 20여 명의 젊은 여성들이 그 업소에 살고 있었다. 미군들이 기지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오후 5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쉬는 날 하루도 없이 매일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중략)
성병관리소는 국가가 주한미군을 상대로 하는 기지촌 성매매를 사실상 조장해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삼았음을 뒷받침하는 가장 대표적인 물증 가운데 하나다. 기지촌의 역사는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1950년대로 거슬러 오른다. 지난 2022년 9월 대법원은 기지촌 성매매 여성 100여 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의 기지촌 조성·관리·운영 행위 및 성매매 정당화 및 조장 행위는 구 윤락행위방지법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권 존중 의무 등 마땅히 준수돼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기지촌을 만든 건 국가였고, 이는 잘못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김성욱, 오마이뉴스, 24.09.26)
‘n번방’ 재판 방청 연대기를 다시 읽다
요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면 심심찮게 ‘여성안심 화장실’, ‘불법촬영 카메라 단속 중’이라는 스티커가 붙여진 곳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인가 ‘몰카’라는 말 대신 ‘불법촬영’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가해자에게 한없이 관대한 태도를 보이던 판사는 시민들의 청원 이후 교체되었고, ‘N번방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성범죄 처벌 범위가 확대되고 수위 또한 상향되었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한편 뒤를 돌아보면 새로운 길이 닦여있음이 보인다. 범죄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우리의 의지로 가능해진다. 세상이 다시 뒤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여도, 적어도 나와, 우리와 함께하는 페미니스트들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누군가 지쳐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산다고 해도, 좀 더 자신의 일상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해도,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빈자리를 채워줄 것임을 믿는다. 그 연속된 움직임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선의로 뭉친 연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온라인 탄원서에 서명하고 국회 청원에 동의한 것이다. 앰네스티 홈페이지에서는 구글이 성 착취물 생존자들의 피해영상과 개인정보를 신속히 삭제하는 등의 신고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탄원 서명을 받고 있다. 국회전자청원 사이트에서는 딥페이크 및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여러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여성재판방청연대 ‘연대단F’의 SNS 계정(@attend_f_trial)에는 최근 주요 성범죄 공판 일정이 정리되어 올라온다. 팀 eNd의 활동가들이 재판을 방청할 때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준 ‘연대자 D’의 계정(@D_T_Monitoring)에는 방청 기록과 재판 결과가 매일같이 정리되어 업로드되고 있다. 그 정보를 찬찬히 읽어보며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날짜를 찾아본다.
이렇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피해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아주 느리게 변화하는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잠시 지쳐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도해정,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24.09.21)
대기업 여성 임원 겨우 7% 넘었다... ‘고용 성별격차’도 여전
국내 500대 기업의 다양성지수가 2020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기점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기업 여성 임원이 꾸준히 증가해, 여성 임원 비율이 처음으로 7%를 넘어섰다.
단, 여성 고용 비중, 연봉 격차, 근속연수 변화는 크지 않았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상층부 변화’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민인이노베이션(WIN)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국내 주요 기업 다양성지수 평가 결과를 10일 발표했다.
다양성지수는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500대 기업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353개사를 대상으로 △남녀고용 비율 △근속연수 차이 △연봉 차이 △남녀임원 비중 △등기임원 내 남녀비중 △고위임원 남녀비중 등 6개 항목을 평가해 매긴다. 올해 이들 기업의 양성평등지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54.7점으로 2019년 51.7점 비해 3.0점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항목 중 가장 크게 향상된 부분은 여성 임원 비중이었다. 500대 기업 여성 임원 비중은 2019년 3.9%에 불과했으나 2024년 7.3%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20년 자본시장법 통과 후 2021년 5.5%, 2022년 6.3%, 2023년 7.0%, 2024년 7.3%로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등기임원 여성 증가율은 더욱 높았다. 2019년 2.9%였던 여성 등기임원이 올해는 11.3%를 기록하며 3배 가까이 늘었다. 증가한 등기임원 대부분은 사외이사들이었다. 2020년 5.5%였던 여성 사외이사 비중이 올해 16.4%로 10.9%포인트(p) 커졌다. 반면 여성 사내이사 비중은 2020년 2.0%에서 올해 3.8%로 1.8%p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미정, 여성신문, 24.09.10)
성별 격차와 양극화 해소는 ‘국가 계획의 문제’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정치 영역에서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이 1975년 ‘여성 파업’을 계기로 열렸다면, 2008년 금융위기는 경제 분야에서 평등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이후, 상장기업과 직원수 50명 이상인 비상장기업이 이사회를 구성할 때, 특정 성별이 과소 대표되지 않도록 하는 ‘성별 할당제’가 법제화됐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여성과 남성 모두 최소 40% 이상이 되도록 하여, 한 성별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의사결정 테이블을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정치 분야에서는 성별 할당제가 의무화된 건 아니지만, 정당들은 선거 후보를 공천할 때 최소 40%를 한 성별로 구성되게 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성별 균형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 2022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에 한해 여성 임원을 한 명 이상 선임해야 하는 조항을 마련했다. 그러나 당초 개정안이 ‘이사회 3분의 1 이상을 여성으로 의무화’하는 것으로 발의됐던 것을 생각하면 많이 후퇴한 결과다.
첫발 내디딘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한둘로는 안 된다. 이사회에 여성 한 명은 그냥 전시용이고, 둘은 소수지만, 셋은 있어야 집단 역학에 변화가 온다. 대화 방식도 변하고 토론 내용도 바뀐다’며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했던 전 상공회의소 회장이자 현 아이슬란드 대통령 할라 토마스도티르의 말을 곱씹어야 할 때다. (중략)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평등 임금 관리 기준(Standard ÍST 85)’이라는 직무 평가 도구를 개발해 임금 제도를 분석하고, 임금 불평등을 식별한다. 정부는 이를 증명한 기업에 동일임금 증명서를 발급하고, 동일임금 라벨(Equal Pay Label)을 제공해 ‘성차별 없는 회사’임을 인증한다.
증명서는 3년마다 갱신해야 하며, 이유 없이 임금 격차가 시정되지 않으면, 벌금이 한화로 하루 약 50만 원씩 시정될 때까지 누적된다.
2020년부터는 직원수가 25~49명 사이인 중소기업은 동일임금 인증을 받거나, 그보다 절차가 간소화된 동일임금 확인(Equal Pay Confirmation)을 받는 것 중 선택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고, 성평등국(The Directorate of Equality; Jafnréttisstofa)이 감독을 강화해 동일임금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정이예슬,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24.09.17)
케이팝 세계적 성공 뒤 어두운 그늘…“아이돌 연습생 무월경·불면증은 기본”
“연습생 생활 8년 동안 지하 연습실에 갇혀 낮에 햇빛을 받지 못해서인지 스물여덟 살에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제 뼈나이가 80살이라고 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건강적으로 문제가 없는 연습생이 없습니다. 무월경, 만성위염, 염좌 등은 흔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연습생들의 건강한 성장과 인권 보장을 위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허유정, 전 그룹 단발머리 멤버·현 케이팝 연구자)
최근 아이돌 그룹 뉴진스(NewJeans)가 소속사 어도어의 모회사인 하이브 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피해를 폭로하면서 아이돌 노동권과 인격권 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이 가운데 국회에서 전현직 아이돌 멤버들이 모여 아이돌과 연습생의 인권 실태를 되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에 간 아이돌, 케이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토론회에는 전현직 아이돌이 참석해 공개 증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센터장 등 관계자들도 자리했다. (중략)
이외에도 아동·청소년기 아이돌 연습생의 인권과 건강권이 현장에서 침해되고 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특히 전문성이 부재한 기획사 직원들이 다양한 업무를 맡으며 연습생을 관리하는 탓에 아동·청소년 연습생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현재 중앙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과정에 재학하며 전현직 아이돌 연습생을 대상으로 질적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허유정씨는 “연습생들은 납득되지 않는 통보나 차별대우 등 부당한 상황을 겪어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보니 참고 견뎌낸다. 인터뷰 대상자 중 중학생임에도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가 온 친구도 있었으며, 불면증과 무월경은 기본”이라며 “아동·청소년기 연습생들에게는 인격적 성장과 권리를 보장하는 체계적인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세원, 여성신문, 24.09.30)
셋째 이상은 아들 천국… 저출산에 흐려졌다 다시 고개 든 ‘남아 선호’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뜻하는 ‘출생 성비’가 지난해 10년 만에 다시 108명을 돌파했다. 셋째 이상 자녀는 딸보다 아들이 훨씬 많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에 남아 선호 사상이 아직까진 잔존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5일 통계청의 ‘2023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셋째 이상 출생 성비가 전년 대비 4.4명 높아진 108.3명으로 집계되며 정상범위인 103~107명을 벗어났다. 정상범위를 벗어난 건 2020년 107.2명 이후 3년 만이고, 108명을 돌파한 건 2013년 108.0명 이후 10년 만이다.
셋째 이상 출생 성비가 108.3명이라는 건 셋째 이상 순위로 태어나는 자녀는 딸보다 아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백분율로 계산하면 아들 52%, 딸 48%다.
이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낳다 보니 셋째 이상일수록 아들의 비중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아들이 태어나야만 출산을 멈추다 보니 상대적으로 딸의 비중이 작은 것이다. 시대상의 변화와 함께 옅어지던 남아 선호 현상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영준, 서울신문, 24.09.13)
피임하지 않으면 임신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난임이 젠더 문제인 일차적 이유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는 점이다. 내 주변만 봐도 정말 많은 여성이 고독한 치료 과정을 겪고 있다. 직장 상사는 물론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난임병원에서 동료를 2명이나 만났다. 이미 그 병원을 거쳐간 친구, 선배도 여러 명이다. 여성 연예인들이 난임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응원해달라며 유튜브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난임 치료 과정을 (비록 광고일 수도 있지만) 대중에게 공개하는 이유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이 매우 고독하고 잔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졸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우수수 떨어진다.
치료 부작용도 우려된다. 내 배에는 자궁근종과 폴립 등을 제거한 복강경 수술 자국 4곳이 선명하다. “비키니 수영복은 못 입어”라고 웃으면서 말하지만, 배에 구멍을 낸 뒤 생긴 색소침착 자국 사이로는 얇은 자가 주사를 수백 번도 넘게 찔렀던 기억이 선명하다. 피검사도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바늘이 몸을 찌르는 느낌은 이제 너무 익숙하게 참고 견딘다. 호르몬 성분의 약을 수시로 주사하다보니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외로움과 절망감이 약 성분 때문에 발현된 것인지 정말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시로 눈물이 나고 수시로 화가 난다.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처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해 처방한 약이 내 몸에서는 이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을 국외 직구로 구입해 먹으라는 처방을 받았으나 그 약을 먹은 뒤 정상 수치의 3배가 넘는 호르몬 부작용이 생겨 몇 달째 고생 중이다. (중략)
생물학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은 임신·출산에 기여도가 매우 낮다. 이 때문에 같은 나이라면 남성은 난임 판정을 받는 비율이 더 낮다. 그러나 40대 이후 남성의 경우 술, 담배, 야근 등으로 인한 난임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살아남느라 에너지를 다 쓴 여성과 남성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또 한 번 온 힘을 다해야 하는데 그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난임여성A, 한겨레21, 24.08.31)
탈코부터 제로웨이스트까지: 페미니스트들의 불매 실천과 동인으로서의 죄책감
앞서 우리는 드럭스토어가 젊은 여성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유혹의 정동을 불러일으키는지 살펴보았다. 젊은 여성들은 생리대 혹은 샴푸를 사기 위해 방문한 소비자 공간에서 다시 ‘얼마든지 예뻐질 수 있는 환상의 나라’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저항을 실천하고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이며 모든 연구 참여자가 보여주는 것이 ‘불매’(boycott) 실천이다. 연구자가 만난 여성들 역시 페미니스트 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일상의 전방위적인 국면에서 다양한 온오프라인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저는 탈코르셋이라는 게 여성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들에 대항하는 것도 있지만 소비에 대해서, ‘이런 거를 소비해야 하고’. ‘이런 걸 소비하지 않는 여성은 여성다운 여성이 아니다’라는 그런 자본주의와 결합한 성차별적인 구조에 대한 대항으로도 읽힐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탈코르셋 실천이 소비랑 연관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특히 제 삶에서 탈코르셋이 가져온 확실한 변화라고 한다면 소비에요. 소비. (혜진)
꾸밈소비 보이콧을 통해 소비 실천을 바꾸는 것은 여성들에게 단순히 이전보다 덜 사고 안 사는 것 이상의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탈코르셋 이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드럭스토어를 방문해서 대량으로 구매하고, 올리브영 정기 세일 기간에는 필요한 게 없어도 쇼핑을 했다는 혜진은 탈코르셋 이후에는 드럭스토어를 거의 찾지 않게 되었다. 드럭스토어가 젊은 여성을 겨냥한 뷰티 하우스라는 상징성을 차치해도 화장품 소비의 변화는 핵심적인 탈코르셋 실천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지속되는 실천으로서 숏컷이나 노메이크업을 하지 않는 여성이 여전히 페미니스트라는 증거다.
꾸밈소비 보이콧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소비 실천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소비 자체에 대한 보이콧’이다. 이는 “쓸데없는 것을 사지 않는”(혜수) 것으로, 소비시장 자체가 젊은 여성들을 과도하게 겨냥한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이런 소비가 환경에도 해롭다는 에코 페미니스트 시각을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구매 충동을 느끼는 것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필요하지 않은 것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품목 줄이기’와 ‘사서 다 쓸 때까지 새로 사지 않기’는 탈코르셋과 환경주의의 이상을 모두 만족시키는 원칙으로, 다른 연구 참여자 여성들의 발언에서도 공통으로 등장했다.
민재가 올리브영 등의 드럭스토어를 이용하는 방식 역시 페미니즘과 환경주의의 결합을 잘 보여준다. 쓸데없는 것이나 의류를 소비하지 않는 것 이외에도 일상에서 ‘플라스틱 불매하기’가 이들의 환경주의적 불매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하영은 친구들과 있을 때도 모든 일회용품을 거부하는 실천을 하고 있었는데, “저는 일회용품이 너무, 사실 강박적으로 싫어서, 그래서 절대 받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페미니스트 불매와 환경주의적 불매는 완전히 같은 범주는 아니지만, 많은 연구 참여자 여성들에게 환경주의적 불매는 페미니스트 불매의 윤리적 확장이다. 페미니스트 불매가 화장품·옷·성형 등 여성화된 소비에 대한 거부라면, 환경주의적 불매는 ‘쓸데없는 것은 무엇이든 불매’라는 차원이다.
(최예령,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24.09.25)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시간성을 질문하기
과연 불가역한 문화운동으로 여겨졌던 페미니즘 리부트는 고작 7~8년짜리 소동에 불과했을까. 어느 학술대회에서는 “강남역, 광화문, 혜화역으로 나아가던 시간으로부터 명백한 시차가 발생”(전예원)한 현재의 폐색된 국면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시간으로 명명되고, 이 시간성을 지배하는 것이 소진·탈진된 기운 및 단절감·무력함의 정동이라고 진단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2024년 현재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시간으로 호명하는 것은 여전히 망설여진다. ‘이후’라는 호명이 종종 충족되지 않은 기대와 성급한 청산의 의지를 반영하는 레토릭으로 쓰인다는 것을 떠올려볼 때, 심문의 대상은 페미니즘 리부트 자체라기보다는 ‘이후’를 발설하는 주체의 욕망이리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라는 호명을 유보하더라도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간이 현재에 어떻게 기입돼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간성을 역사화·정치화하는 일은 곧 그것의 유산 중 어떤 것이 현재를 구성하는 데 취사선택되는지를 점검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여성’과 ‘퀴어’가 현저한 가시성을 획득했다는 것이 한국문학(장)의 페미니즘적 전회를 설명하는 데 고려해야 할 유일한 지표는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82년생 김지영』(조남주, 2016)을 필두로 부상한 일군의 여성서사는 어째서 수도권에 거주하며 화이트컬러 직종에 종사하는 20~30대 이성애자 비장애인 선주민 여성 주인공만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지, 그 서사들은 왜 ‘평범한 보통 여성의 이야기’라고 회자되는지, 혹은 동시대 퀴어문학에 등장하는 비규범적·비순응적 성별·성애 실천자들은 어째서 그토록 열정적으로 성실한 노동자, 모범적인 군인, 매력적인 소비자 되기에 몰입하고 자신들의 친밀한 관계를 제도적으로 승인받으려 하는지 궁금했다.
물론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모든 소설이 이 같은 경향을 띠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한경쟁체제와 능력주의가 주조한 자기계발의 실천이 합리적 에토스로 자리 잡은 오늘날, 여성/퀴어의 시민권과 소수자정치를 재현하는 많은 작품들이 신자유주의적 레짐 하에서 안정적으로 생존하는 일에 집중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는 페미니즘이 타자에 대한 환대와 공생을 모색하는 정치학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지배를 합리화하는 ‘권리’와 ‘공정’의 언어로 간주되는 포스트페미니즘 시대의 문화정치와 관련 있다.
(오혜진, 교수신문, 24.09.04)
'지옥에서 온 판사' 작가 "박신혜의 무자비 처단? 그것이 역지사지"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SBS 금토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를 집필한 조이수 작가가 극 중 처단 방식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이제부터 진짜 재판을 시작할게! 지옥으로!’ 판사의 몸에 들어간 악마 강빛나(박신혜 분)가 지옥 같은 현실에서 인간적인 열혈형사 한다온(김재영 분)을 만나 죄인을 처단하며 진정한 판사로 거듭나는 선악공존 사이다 액션 판타지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옥에서 온 판사’ 2회 시청률은 전국 가구 기준 9.3%를 기록했다. 특히 강빛나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사이다 처단 방식이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쾌감을 전했다. (중략)
조이수 작가는 이같은 표현 방식에 대해 “강빛나는 무자비하게 죄인들을 처단한다. 하지만 그전에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죄지은 자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이 역지사지이며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한 의미를 판타지라는 저희 드라마의 장르적 특성과 결합하며 ‘지옥에서 온 판사’만의 특별한 처단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강빛나가 악마로서의 능력을 활용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죄인들이 저지른 죄를 그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방식을 떠올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최희재, 이데일리, 24.09.25)
‘정년이’→’정숙한 세일즈’, 하반기에도 여성 서사 풍년
여성 서사를 앞세운 드라마가 올 하반기 안방극장을 공략한다. 단순히 스토리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도 여배우로만 구성된 작품들이 많아진 모습이다. 여성 서사가 방송계에선 이미 주류 콘텐츠로 자리 잡았단 분석이다.
오는 10월 방송하는 tvN 새 금토 드라마 ‘정년이’는 여배우들의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소리 천재 정년이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를 그린 시대극이다. 국극은 모든 배역을 여성들로만 구성한 창극이다. 이에 국극 단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정년이’ 캐스팅 역시 여배우들로 꾸려졌다. 배우 김태리가 주인공 윤정년 역을 맡고, 신예은(허영서 역), 라미란(강소복 역), 정은채(문옥경 역), 김윤혜(서혜랑 역), 문소리(서용례 역) 등이 출연한다. 배우 이덕화, 류승수 등 남성 배우가 아예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배역은 모두 여배우가 도맡았다. (중략)
다만 여성 서사를 앞세운 것에 되려 비판 요인으로 작용한 경우도 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우씨왕후’는 두 번 왕후에 오른 우씨왕후를 모티브로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고 했으나 불필요한 노출신과 베드신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며 당초 의미가 퇴색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 서사의 기준이 단순히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하고 어떤 서사와 관계성으로 만들어내는지에 따라 호평이 될 수도, 혹평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강주희, 일간스포츠, 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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