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10월 첫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여성의제 기사들 가운데 관점과 깊이가 있는 심층기사와 칼럼을 모아 전해드리는 PERSPECTIVE EDITION입니다. 이번 호에서도 에디터가 엄선한 기사들과 함께 언론이 관심을 기울인 여성의제의 최전선은 무엇이었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재명정부 1기 내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대에 머물렀습니다. 목표로 삼은 30%에는 한참 못 미쳤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로 성평등가족부가 남성 ‘역차별’에 대응하는 부서를 신설한 것이 알려지며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여성 징병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강선미 하랑젠더트레이닝센터 대표가 안보 영역에 여성이 참여하는 의미를 짚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전 경제안보상이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습니다. 그러나 26년간 자민당과 동행했던 공명당이 연립정권 탈퇴를 선언하며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선출은 불투명해졌습니다. 다카이치 리더십의 여성주의적 의미에 대해 일본의 페미니스트 정치학자인 오카노 야요 도시샤대학 교수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2024년 ‘맨키핑에 관한 이론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맨키핑’이란 이성애 연인 관계에서 여성이 남성의 감정적 요구를 채워주기 위해 수행하는 불균형한 감정노동을 의미합니다. 플랫폼이 법의 부재와 미비점을 이용해 어떻게 가사노동자를 통제하고 있는지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습니다. 최혜영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연구원이 플랫폼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체계적으로 박탈되고 있는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여성 스포츠계에는 여성 건강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만연해 있습니다. 영국에서 성과만을 강요당하며 건강을 돌보지 않는 문화를 고발한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위고비 등 비만치료제가 국내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며 여성을 향한 외모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이 여성을 향한 구조적 폭력이 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았습니다. 여성서사는 부단히 변화하며 그 지평을 넓혀왔습니다. 문학에서는 전경린의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과 신경숙의 <외딴방>을 통해 이 목소리가 도달한 지점을, 드라마에서는 <사마귀>와 <은중과 상연>을 통해 모성 신화의 해체와 여성 간 관계성의 변화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뉴스 헐리버리가 이번 호에서 준비한 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주목할 만한 여성 인물 관련 기사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김예빈 드림

여성 입각 비율 목표 30% 못 미쳐 ‘숙제’ [심층기획-李정부 첫 내각 진용 분석]
이재명정부 1기 내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대에 머물렀다. 이재명 대통령이 목표로 삼은 30%에 못 미치면서 여성 입각 비율 확대는 여전한 숙제로 남게 됐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정부 1기 내각 구성원 중 여성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4명에 불과하다. 19개 부처 장관 가운데 여성 장관 비율은 21%다. 국무총리까지 포함하면 내각 구성원 20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겠다”며 소수 성이 내각에서 30%를 넘기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 7월11일 장관 후보자 지명을 모두 끝냈을 때는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강선우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포함해 여성 장관이 총 5명으로 19명 장관 중 26.3%를 차지했으나, 두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비율이 조정됐다. 여가부 장관으로는 여성인 원 장관이 다시 지명돼 임명됐으나, 교육부 장관에는 남성인 최교진 장관이 취임하면서 여성 장관이 줄어든 탓이다. 다만 전임 윤석열정부 초대 내각 18개 부처 장관 중 여성이 3명으로 약 16.7%에 그쳤던 것보다는 많은 수준이다.
(이강진, 세계일보, 25.10.10)

'모두'의 대통령, '여성'의 외주화?
이 대통령의 '역차별' 메시지는 돌발적이기보단 맥락적이고, 그래서 위험하다. '여성이 당하는' 구조적 차별과 '남성이 당하는' 역차별을 동시에 챙기겠다는 그의 말은 말 그대로 '구조'의 문제인 젠더 문제를 단순·수치화된 '고통 따지기'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했지만, 진보와 보수, 여성과 남성, 노동자와 기업을 따지지 않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선 슬로건과 맞물려 형식적 당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다시 말하면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치의 영역에서, 여성이라는 '일부'의 문제는 '당위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났다.
6월 대선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민주당의 젠더 회피 전략이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노골적인 혐오정치에 대응해 여성 인권을 강조해온 이 대통령은, 지난 21대 대선에선 젠더 문제를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어진 "청춘남녀의 싸움"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20대 대선의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젠더를 아예 배제하는 방식으로 특정 계층에 호소했다면, 21대 대선의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모두를 챙기겠다'는 당위 아래 젠더를 '뒤로 미루는' 전략을 취했다.
국민의힘이 주도한 백레시가 불평등 문제인 젠더 '차별'을 가치중립적 의미의 젠더 '갈등'으로 전유했다면, 그 백레시를 반영해 수정·보완한 민주당의 새로운 젠더 전략은 이를 애초부터 사소한 '젊은 애들 다툼' 정도로 다시 격하시켰다. 비동의강간죄·차별금지법·낙태죄 대체 입법 등 민감한 젠더 사안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민생과 경제가 먼저"라는 딱지가 붙어 국정과제에서 탈락했다.
이 대통령은 '모두의 파이를 늘린다'는 큰 차원의 해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모두' 아래 가려지는 '일부'의 모습이 바로 '구조적 차별'의 작동 방식이다. 애초부터 이것은 파이의 성장이 아닌 권력의 분배 문제다.
(한예섭, 프레시안, 25.10.06)

‘남성 역차별 대응 지시’라는 무책임
“남자는 여자가 무시할까봐, 여자는 남자가 죽일까봐 두려워한다.”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오래전 했던 이 말은 한국 사회 현재의 젠더 위계를 적확히 포착합니다. 그러나 동서양 여자 공히 남자의 ‘기분’을 망쳐 삶의 ‘기본’, 생명을 위협받는다는 점이 같아 뵈지만, 실상은 아주 다릅니다. 한국 여성사에는 ‘환향녀’ ‘위안부’ ‘기생관광’ ‘기지촌’ 등 서구 여성사에는 없는 특이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조선시대 이래 지금까지 한반도에 거주했던 여성들이 남성으로 표상된 왕실, 국가, 정부에 의해 한 번도 보호받은 적 없다는 사실입니다. 일상과 전쟁 등의 위기에서 가정과 여성 보호를 명분 삼아 가부장제를 정당화해온 서구 남성사와 달리, 한국 남성사는 위기나 기회 앞에서 자국 여성을 상대국 남성의 손에 밀어 넣어 여성의 존엄을 지우며 가부장제를 유지해왔습니다.
해방 후 정부는 일본 남성들의 한국행 ‘기생관광’을 막지 않았고, 박정희 정권은 미군 상대 기지촌 여성을 ‘민간 외교관’으로 치켜세우며 달러를 챙겼지요. 한국계 미국인 사회학자 캐서린 문은 미군으로부터 당시 기지촌 여성을 보호하지 않은 한국 정부에 대한 그녀들의 분노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사과를 요구했던 한국의 어떤 ‘진보’ 정권도 정작 자국 여성의 존엄을 지키지 않은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나임윤경, 경향신문, 25.10.13)

[강선미의 이슈와 쟁점] 국민의 군대, 평화의 군대
안보는 무력 유지가 아니라 국민과 맺는 사회적 계약이기도 하다. 국민은 군복무, 세금, 재난 대응 같은 의무를 나누어 감당하고, 국가는 그 대가로 안전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남성에게만 복무를 지우는 방식은 오래된 계약 모델이다. 이제는 남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다층적 복무제도를 설계하고, 국가는 복무 경험을 능력 인증·경력 자산으로 환류시켜야 한다. 같은 임무에는 같은 기준을, 다른 임무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공정한 계약이다. 군이 ‘국민의 군대’로 신뢰를 얻으려면, 전투력이 아니라 이 계약을 지키는 능력이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여성 시민으로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자연스럽다. ‘그 계약 구조 속에서 여성은 어떻게 참여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가?’ 국제사회는 이미 2000년 UN 안보리 결의 1325호를 통해 여성의 참여가 평화와 안보에 필수적임을 합의했다.
1325호는 네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평화협상·안보정책에 여성 참여 보장(Participation). 둘째, 분쟁 상황에서 여성과 아동 보호(Protection). 셋째 갈등 예방 과정에 성평등 관점 반영(Prevention). 넷째 분쟁 이후 구호·재건에서 여성의 필요와 역량 반영(Relief & Recovery)이다. (중략)
그러나 한국에서 여성의 안보 참여를 말하면, 흔히 군복을 입고 전장에 나서는 이미지만 떠올린다. 여성 징병 논의가 곧 “여성을 전쟁터로 내몬다”는 우려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1325호가 말하는 참여는 전쟁 수행자가 되라는 권고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며, 파괴된 삶을 복구하는 전 과정에서 여성의 정당한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다. 여성의 평등참여는 총을 들라는 말이 아니라, 평화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길이다.
(강선미, 여성신문, 25.10.03)

[강선미의 이슈와 쟁점] 스웨덴의 성중립 징병제 – 성평등의 원칙이 작동하는 제도를 향해
스웨덴은 노르웨이에 이어 2018년부터 성중립 징병제를 시행한 두 번째 나라였다. 징병제를 폐지했다가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스웨덴은 '성중립적 군복무 제도(gender-neutral conscription)'라는 실험에 나섰다. (중략)
이 제도의 초점은 병력 보충이 아니라 징병제의 정당성 회복이었다. 남성만 복무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인식과, 유엔(UN) 안보리 결의안 1325가 확산시킨 '여성을 안보 주체로 포함해야 한다'는 국제 규범이 주요한 배경이었다. 성 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제도의 정당화와 유지를 위한 조건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도입은 단순히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결정이 아니었다. 정책 설계의 초점은 '누가 복무하느냐'보다 '국가가 국방과 군복무의 책임과 의무를 모든 국민에게 어떻게 나누어야 공정한가'에 있었다. '성중립'은 성별 집단의 평균적 차이보다 개인의 역량과 동기를 공정하게 평가하겠다는 원칙의 천명이었다.
이 원칙은 관련 제도의 여러 층위에서 드러난다. 첫째, 스웨덴은 모든 18세 국민을 병역 의무 대상으로 두되, 국가가 정한 소수 정예의 필요 인력을 남녀 구분 없이 적성과 동기에 따라 선발하는 '선택적 징병제(selective conscription)'를 운영한다. 체력뿐 아니라 협업 능력과 리더십이 기준이며, 복무자에게는 동일한 훈련과 보상이 적용된다.
둘째, 복무 형태의 다양성이다. 스웨덴은 이미 1989년 여성에게 전투 직책을 포함한 모든 직무를 개방한 뒤, 여성과 남성이라는 집단적 평균의 차이를 복무 분야를 나누는 기준에서 배제했다. 각 개인의 역량과 의지를 중심으로 책임을 배분하며, 징집 절차, 면제 기준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또한 군사 복무 외에도 재난 대응·구조 지원·사회 서비스 등 민간 복무가 병행될 수 있다. 총을 드는 사람뿐 아니라 의료나 구호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국가방위의 일부로 인정된다.
셋째, 성중립 징병제가 사회적 합의 속에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랜 기간에 걸친 돌봄·육아·가족 책임의 공동화 문화가 있었다. 1970년대 유급 육아휴직 도입, 1990년대 '부모별 할당제' 시행을 통해 스웨덴은 돌봄과 국방을 모두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다루는 기반을 형성했다. 이러한 문화적 토대가 성중립 징병제를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제도로 받아들이게 했다.
(강선미, 여성신문, 25.10.10)

첫 여성 총리 탄생 앞둔 일본…성평등 시작일까 착시일까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4) 전 경제안보상이 지난 4일 일본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1955년 창당한 자민당에서 여성 총재가 나온 것은 70년 만에 처음이다. 오는 20일 이후 치러질 임시국회의 총리 지명선거에서 다카이치 총재가 당선될 경우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다만 무난히 차기 총리가 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 달리 26년간 자민당의 우군이었던 공명당이 연립정권 탈퇴를 선언하면서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선출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중략)
다카이치 총재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성신문이 일본의 페미니스트 정치학자인 오카노 야요(岡野八代) 도시샤대학 글로벌스터디스연구과 교수에 의견을 물었다. 인터뷰 진행과 번역은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이 맡았다. 오카노 교수는 다카이치 총재를 "상징적 여성 리더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정치권의 변화가) 구조적 성별 격차 해소에 기여하기보다 여성들을 피해자나 수동적 존재로만 보는 시선을 강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략)
- 다카이치식 리더십은 일본 정치문화 안에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장하는 실험일까. 아니면 기존 남성 중심 권력구조에 포섭된 '상징적 여성 리더십'으로 봐야 할까.
"일본에는 여전히 극명한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 남성 중심 사회로의 동조가 강요되는 현실 속에서 다카이치 총재가 보내는 메시지는 '여성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로 요약될 수 있다. 다카이치 총재는 극우 성향의 이념을 가진 여성이기에 자민당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인물이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는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던 여성뿐 아니라 차별이나 억압을 겪는 이들에게 매우 가혹하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일본 내 거의 모든 정당이 우파에 속하지만 이번 사례는 우파 진영의 여성 정치인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다. 특히 새롭게 등장하는 우파 정당들이 앞으로 더 많은 여성 후보를 선출할 가능성도 커졌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기존 남성 권력에 흡수된 '상징적 여성 리더'라고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구조적 성별 격차 해소에 기여하기보다는 여성들을 피해자나 수동적 존재로만 보는 시선을 강화하고, 자기책임·가족책임 담론을 부추겨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강경한 마초 남성 권력'에서 공식적으로 여성의 지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유연한 남성 권력'으로 옮겨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성의 지지를 당연하게 여기는 남성 권력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하나·김세원, 여성신문, 25.10.14)

“자기야, 어머니께 전화 드려야지”···돌려받지 못하는 여성의 감정노동 ‘맨키핑’을 아시나요
최근 ‘맨키핑(남자 관리·mankeeping)’이란 용어가 화제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포브스 등 주요 매체와 코스모폴리탄, 보그 등 라이프스타일 전문 잡지가 맨키핑 개념을 소개했고, 온라인상에선 이에 공감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3일 관련 연구와 외신을 종합하면, 맨키핑은 ‘남자(man)’와 ‘돌봄·관리(keeping)’를 합한 신조어로 이성애 연인 관계에서 여성이 남성의 감정적 요구를 채워주기 위해 수행하는 불균형한 감정노동을 의미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2024년 발표한 연구 ‘맨키핑에 관한 이론화: 남성 우정의 침체와 젠더 불평등의 구조적 구성 요소로서 여성의 관련 노동’에서 이 용어를 처음 도입했다. 여성이 가족(kin) 내 감정적 유대를 도맡는 것을 지칭하는 ‘킨키핑(kinkeeping)’을 변용한 개념이다. (중략)
예를 들면 남성의 사회적 소통과 네트워크를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맨키핑이다. ‘그 친구한테 연락해봐’, ‘이 친구랑 만나봐’라고 하거나, ‘어머니한테 전화해’라고 안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과 연락하거나 만날 수 있도록 행사를 만드는 일도 포함된다.
또한 다른 이들로부터 남편이나 남자친구를 향한 지지를 끌어내는 것 역시 맨키핑에 해당한다. 친구로부터 감정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감정적 지원을 받는 것, 여성이 남성에게 소통법과 감정 표현법을 가르치는 것까지도 맨키핑의 예시다. (중략)
맨키핑 논의에서 중요한 점은 여성은 남성 연인에게서 맨키핑과 같은 관리를 받지도 못하며 대체로 그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는 것, 즉 관계의 불균형성이다. 여성은 동성 관계에서 정서적 지지를 얻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돌봄, 상담, 일정관리와 같은 감정노동을 수행하지만 그 반대는 잘 성립하지 않는다. 보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이처럼 젠더화된 감정노동의 특징이다.
(김서영, 경향신문, 25.10.03)

가사서비스 플랫폼은 어떻게 가사노동자를 통제하는가?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가사노동자 A씨는 고객의 집에 가서 고객을 위해 일하지만, 정작 고객의 연락처도 모르고 때론 만날 일도 없다. 일터를 찾아가는 길안내도 플랫폼에게 제공 받는다. 청소 방법이나 가전제품 작동법 등의 문의도 고객에게 직접 하는 게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서 해야 한다. 고객이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라는 요청을 남겼을 때도 플랫폼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업무에 대한 보상도 플랫폼에 의해 결정된다. 이처럼 플랫폼의 지휘·관리·통제하에 일하고 있는데도, 플랫폼은 A씨의 고용인이 아니다. 중개인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가사노동자들을 노동권의 사각지대로 몰고 있다. 2022년 6월 16일부터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지만, 실제로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가사노동자는 극소수이다. (관련 기사: 근로기준법에 가사노동자 제외한 건 사실상 ‘성차별’ https://ildaro.com/10211) 가사노동자는 ‘노무제공자’(현재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일부’를 노무제공자라는 개념으로 묶어 산재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고 있다)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많은 가사노동자가 플랫폼 노동자이며, 그 중 다수는 3.3%의 세금(사업소득세)을 내는 프리랜서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노무제공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재 논의되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중략)
플랫폼은 중개업체라고 하지만,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매니저의 노동력을 직·간접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며, 그 과정에서 정보 불균형과 불이익을 전가한다.”는 게 최혜영 연구원의 분석이다.
플랫폼 노동은 유연하게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노동시간은 미리 정해져 있다. 매칭에 의해서 미리 업무 스케줄이 정해져 있고, 업무 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준수하지 않을 시 불이익이 있다.”

(박주연, 일다, 25.10.13)

“생리 끊겨야 정상?”…여성 스포츠계 잘못된 편견, 붕괴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라면 생리가 없어도 괜찮다.”
미국 사이클리스트 베로니카 유어스(31)는 2022년 건강검진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의사가 던진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호르몬 수치가 거의 바닥인데도, 의료진은 이를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는 12일 글로벌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여성이 생리를 멈출 때가 피트니스의 정점’이라는 말을 믿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3년 부상으로 시즌을 접은 뒤, 회복 과정에서 발 뒤꿈치가 부러졌고 골밀도 검사를 받자 결과는 ‘골다공증 직전’이었다. 그는 “생리를 멈춘 것은 몸이 경고를 보낸 신호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영국 여성 선수 769명을 대상으로 한 2023년 ‘여성선수건강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36%가 생리 이상이나 무월경을 “운동을 많이 해서 생긴 정상적인 현상”으로 여겼다. 심지어 30%는 의료진에게서 “활동량이 많으니 생리 안 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고 답했다. 오레코 연구소 케리 맥골리 교수는 “지금도 선수들이 ‘생리가 있으면 훈련이 부족한 거야’라는 말을 듣는다”며 “누구도 그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그저 성과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세훈, 스포츠경향, 25.10.13)

거울 보면 "내 몸 잘라내고 싶어"…'위고비 신드롬' 이면의 '마른 몸 지옥'
위고비(성문병 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타이드) 등 주사 형태의 비만치료제가 국내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여성을 향한 외모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치료가 필요한 체중이 아닌 여성들이 '자기관리'를 명목으로 위고비를 처방받는 사례는 일상이 됐고, 부모에게 위고비 사용을 강요당한다는 딸들의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마른 몸'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여성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몸을 잘라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고 있다. <프레시안>은 섭식장애와 위고비 사이에서 시름하는 7인의 여성들을 만나 '외모 지옥'에 헤어나기 어려워하는 이유를 물었다. (중략)
'게임 체인저', '위고비 신드롬' 등 찬사가 쏟아지는 위고비의 이면엔 전보다 더욱 거세진 '마른 몸에 대한 선망'이 있고, 이런 선망은 특히 여성들을 향한다. 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처방된 위고비 8만3305건 중 남성이 3만1875건, 여성이 5만1430건으로 여성이 61% 더 많이 처방받았다. 반면 지난달 30일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의 비만율은 48.8%, 여성은 26.2%다. 비만율은 남성이 두 배 가까이 높은데 비만치료제 사용은 여성이 훨씬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번갈아 겪어 온 IT 업계 종사자 F(29) 씨는 167cm 키에 54kg로 저체중에 가까운 몸무게임에도 살이 너무 쪘다고 생각해 지난 6월 평소 다니던 병원의 주치의에게 위고비 처방을 요구했다. 외부 환경의 변화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체중뿐"이라며 다이어트에 집착했고, 그런 F 씨에게 50kg대의 몸무게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실패자"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주치의가 반대해 위고비는 사용하지 않게 됐지만, 여전히 F 씨는 스스로 건강하지 못한 걸 알면서도 갈비뼈가 드러나는 몸이 아니면 불안해하는 등 체중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박상혁, 프레시안, 25.10.07)

전경린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아버지의 집’을 떠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1990년대에 낭만적 사랑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낭만적 사랑이 왜 문제인가? 대중화된 ‘낭만적 사랑’의 이야기들은 부유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신분 차이에도 한눈에 반하고, 여성이 결혼으로 신분 이동의 기회를 획득한다는 상투적 문법을 공유한다. 재클린 살스비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낭만적 사랑은 경제 결혼의 추악함을 은폐하기 위해 화려한 베일을 필요로 한다”, “로맨스는 박탈당한 자들의 반사실적 사고”라고 풍자한다. 로맨스 서사가 근대적 사회계약으로 남성은 권리를 가진 시민이 되지만, 여성은 그런 남자의 구원을 받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은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낭만적 사랑’은 여성에게 보수적인 품행지침서로 기능한다. 낭만적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 가족(결혼과 재생산), 섹슈얼리티를 일치시킴으로써 남녀 모두에게 순결의 의무를 부여하는 듯하지만, 언제나 억눌리는 것은 여성의 욕망이다. 그래서 슐라미스 화이어스톤은 성차별을 은폐하고 공고히 하는 사랑의 심장을 겨누지 못하는 여성해방 이론은 실패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전경린은 낭만적 사랑에서 탈영토화의 가능성을 찾는다. 낭만적 사랑은 봉건적 공동체주의가 해체되고 자본주의화가 진행돼 남성과 여성이 연애와 결혼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과 자율성을 행사하게 된 시기에 발생했다. 낭만적 사랑은 적어도 이론적으로 평등한 개인이 열정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자발적으로 성애적 관계를 실현함으로써 계급 질서나 가족 제도에 도전하는 급진 문화였다. 바로 이 점이 여성들이 낭만적 사랑에 열광했던 또 다른 이유였다. 가문 중심의 혼인제도 속에서 딸들은 영토 확장을 위해 교환되는 ‘아버지’의 재산 목록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트로피 걸로 남고 싶지 않은 여성들은 에로스의 날개를 이용해 아버지의 영토 바깥으로 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중략)
전경린의 소설은 초남성적 아버지들 밑에서 코르셋이 입혀진 채 자란 규범적인 여자아이들이 사랑을 하며 지독한 상처를 입고, 불온한 욕망의 축제를 통해 아버지의 집을 떠나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시대의 텍스트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불완전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계급이나 민족문제 같은 거대 서사에 가려져 있던 가족과 사생활 등 친밀성 영역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의제가 됐다. 광장의 민주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적 영역의 민주화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김은하, 경향신문, 25.09.30)

신경숙 ‘외딴방’…여성 노동자의 자전적 글쓰기가 닿은 지점
신경숙의 <외딴방>은 ‘여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당사자의 눈으로 그린 ‘자전소설’이다. 자전적 고백과 허구적 소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자서전은 무엇보다 당사자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사실적 충동에 지배된다면, 소설은 상상을 통한 허구의 창조를 장르적 특성으로 지니고 있다. <외딴방>은 자서전의 사실성과 소설의 허구성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글쓰기의 동력으로 삼아 작가 자신이 여공으로 살았던 한 시대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작가의 개성적 방식이 이 작품을 1990년대 문학을 대표하는 정전의 반열에 올려세운다. 신경숙 특유의 내면의 글쓰기와 사실적 재현의 결합은 이 작품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후 한국문학이 산출한 “가장 감동적인 노동소설”이라는 찬사를 안겨준 요인이다. (중략)
‘나’는 동남전기주식회사 여공으로 일하면서 산업체 특별학교 야간 학생으로 공부했던 당시 직접 목격한 노동 현실과 생활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한다. 작품에는 저임금과 단순 반복 노동, 노조 설립 운동과 회사의 방해 공작, 남성 감독관의 성추행, 파업 농성과 탄압, 벌집 형태의 열악한 주거환경, 공순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다녔던 야간고등학교의 환경, 그들의 신체 체험과 그들이 나누었던 자매애, 그들의 어깨를 내리누른 가족부양의 부담 등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반 여성 노동자들의 세밀한 풍속화가 그려져 있다. <외딴방>이 그린 여성 노동자들의 초상은 1980년대 한국문학이 충분히 대변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전투적 노동운동이나 총체적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민중문학이 주변으로 밀어낸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과 생활의 체험,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 경험을 복원한 모습이다.
(이명호, 경향신문, 25.10.10)

사마귀, 고현정의 얼굴이 비추는 사회의 그림자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여전히 성역에 가깝다. 산업화, IMF, 팬데믹을 거쳐도 ‘가족은 마지막 남은 공동체’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믿음은 희생과 억압 위에 세워져 있다. 특히 ‘모성’은 헌신의 이름으로 여성의 삶을 감금하는 가장 강력한 제도로 작동해 왔다.
‘사마귀’의 정이신은 이 신화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한때 평범한 주부이자 어머니였던 그녀는 남편의 폭력과 사회의 냉대 속에서 점점 무너진다. 그리고 마침내, 억압의 구조를 깨뜨리며 ‘살인자’가 된다. 법정 장면에서 정이신은 담담히 말한다:
“내가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일 자격까지 박탈할 순 없잖아요.”
그 말은 죄의 변명이 아니라, 모성 신화에 대한 저항의 선언이다. 사회는 여성이 ‘좋은 어머니’의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비정상’으로 낙인찍는다. 정이신은 이 장면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대신 무표정 속의 미세한 떨림, 숨 고르기 사이의 정적이 법정의 공기를 바꾼다. 정이신의 침묵은, 한국 사회가 여성을 침묵시켜 온 방식을 역전시킨다. (중략)
여성이 범죄자가 되는 순간, 사회는 법보다 더 무거운 도덕적 심판을 내린다. 남성의 범죄는 사회적 병리로 해석되지만, 여성의 범죄는 즉시 여성다움을 잃은 ‘괴물’로 규정된다.
‘사마귀’는 이 이중 규율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언론은 정이신의 범죄를 다루며 ‘모성을 상실한 살인자’, ‘비정상적 여성’ 같은 수사를 반복한다. 기자회견 장면에서 한 남성 기자가 묻는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습니까?”
정이신은 냉소적으로 답한다.
“한 아이의 엄마라서, 더는 참을 수 없었죠.”
(박미숙, 슬로우뉴스, 25.10.10)

SNS에 은중과 상연이 많아진 이유
‘은중과 상연’은 새로 쓰인 여성 서사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미디어에 늘 존재하긴 했다. 주인공이기보다는 감초 혹은 상황과 사건의 매개로서 주로 등장했다. 남성들의 관계는 우정과 의리로 포장됐지만, 여성들의 관계는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라는 낙인으로 축소됐다. 때로는 애정과 성공을 욕망했다는 이유로 ‘쌍년’으로 불렸다. 사회가 바뀌며 대중의 인식도 변화해 미디어 속 여성 서사가 더 다양해졌지만, 단지 등장인물 가운데 여성이 많은 것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여성이 주체적 존재로서 관계와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방식이다. 실제 여성들의 삶과 관계는 그간 미디어가 재현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갈등과 경쟁 속에서도 돌봄과 연대, 사회적 경험을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은중과 상연’은 이런 점에서 그간 반복된 여성 서사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궤적을 그린다. 무엇보다 둘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한 여성 서사를 보여준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가진 역량을 발휘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여성들의 관계를 어떤 편견 어린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상연의 파란만장한 사연은 상연의 행위를 쉽게 정당화하거나 ‘악녀’ 프레임에 가두는 데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연을 이해하도록 돕는 주석과 같은 구실을 한다. 두 사람은 사진 동아리 선배인 김상학(김건우)을 사이에 둔 ‘연적’이기도 하다. 이런 설정도 다른 이성애 삼각관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상학은 두 사람에게 한때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은중과 상연을 뒤흔들고, 인생 경로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는 상학이 아니다. 은중과 상연, 두 사람 자신이다.
(오수경, 한겨레21, 25.10.09)
의견을 남겨주세요
초록떡볶이
대부분 읽었던 기사라 더 반갑고 좋네요 헐리벌리 응원합니다🩷
뉴스 헐리버리
대부분 읽으셨던 기사라니 헐리버리의 뉴스 큐레이션을 주의 깊게 읽고 계신 독자시군요. 감격이네요. 앞으로도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