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10월 두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여성의제 관련 기사들을 모은 TOPIC EDITION입니다. 여성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강력범죄들이 매일 신문지상을 뒤덮고 있어 TOPIC EDITION도 그와 관련된 기사들을 주로 다루게 되는데요, 이런 기사들의 큐레이션으로 이루어진 레터를 읽는 동안 암담한 현실을 확인하여 좌절하고 사기 저하를 느끼실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에서 용기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는 우선 동두천시 성병관리소 철거와 관련된 기사를 모아 현재 상황과 역사적 의의를 살폈습니다. ‘진주 편의점 폭행사건’이 항소심에서 ‘여성혐오 범죄’임을 인정받았습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전남 순천에서 일어난 10대 여성 살해 사건이 “묻지마 아닌 여성 겨냥 범죄”라는 데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들었습니다.
‘N번방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오프라인 상에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그루밍 범죄는 여전히 처벌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소지하거나 구입·저장·시청할 경우에도 처벌을 받게 됩니다.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이용한 협박에 대한 처벌 규정도 신설되었습니다. 2017년 인천에서 발생한 성폭행 미제 사건의 범인이 7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범인은 검거 직전까지 경기도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행정 공무원으로 일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자살 시도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지난 5개년 동안 모든 성별과 연령을 통틀어 20대 여성의 자살 시도가 가장 많았으며, 전문가들은 젠더폭력 및 불안·좌절의 경험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전 세계 여성 8명 중 1명이 18세 이전에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는 유니세프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니세프는 이번 조사 결과가 “모든 형태의 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포괄적인 예방·지원 전략이 시급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뉴스 헐리버리가 이번 호에서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깊이와 관점이 있는 심층 기사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오진달래 드림
“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 일본의 ‘역사 지우기’와 같아”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자락에는 과거 한국 정부가 운영했던 성병관리소가 있다. 1973년부터 1996년까지 미군 ‘위안부’를 상대로 성병 검사를 해 보균자 진단을 받은 여성을 완치 때까지 가둬두던 장소다. 동두천시는 최근 소요산 개발사업을 이유로 이 건물 철거에 나섰지만, 이에 맞서 건물의 보존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3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인근 카페에서 성병관리소 보존을 외치는 안김정애(65)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들었다.
인하대에서 ‘미국의 주한군사고문단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안김 대표는 육사 강사, 옛 국방군사연구소(현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 조사2과장, 1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팀장 등을 지낸 군인권 문제 전문가다. 2012년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출범 때부터 공동대표를 맡아 진상규명위 조사과장 시절(2019∼2021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단체를 이끌었다. 2014년 기지촌 여성 국가 상대 집단 손배소송을 이끌어 2022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아냈다.
안김 대표는 최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등 64개 단체가 참여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도 맡았다. 그는 “성병관리소 건물 2층을 보면 군대식 막사 형태로 돼 있어 한국 군사주의가 여성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며 “건물 원형을 보존하면서 미군 위안부 역사박물관을 만들어 이곳에 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했다.
실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당시 한국 정부가 일종의 ‘포주’로 역할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정부는 1961년 제정한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있었음에도 미군 기지 반경 2㎞를 ‘특정 지역’으로 규정해 성매매를 허가했다. 그러면서 1969년 발표된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 철수 목소리가 커지자 미국을 달래기 위해 이들이 요구해온 성병관리 문제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대법원이 기지촌 여성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유다.
(이준희·강성만, 한겨레, 24.10.01)
누가 왜, 여성 착취의 역사를 지우려 하는가
동두천시 성병관리소는 1973년부터 1996년까지 운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 이후 30년 가까이 방치됐다가 지난해 2월 동두천시가 성병관리소 건물·부지를 매입해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철거 논란이 불거졌다.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경관을 저해하고 흉물로 방치돼온 폐건물에 대한 주민 민원을 해소하고, 관광객들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소요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이 지난해 4월 철거 반대를 표명했고, 이어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만들어졌다. 공대위 시민들은 토론회를 열고 동두천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지난 8월 25일부터는 시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24시간 농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동두천시는 철거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시의회는 철거를 위한 추경예산을 의결했다. 공대위는 지난 9월 18일부터 성병관리소 바로 앞 길목에 천막과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다. 철거를 막기 위해 밤낮으로 순번을 정해 자리를 지킨다.
왜 성병관리소를 보존해야 할까. 최희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활동가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와서 만들어진 이 동네에서 한국의 여성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하고 역사적인 장소”라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한 동두천, 의정부, 파주 등지에는 미군을 상대로 한 상업지구, 이른바 ‘기지촌’이 형성됐다. 한국 정부는 법적으로는 성매매를 금지했지만 실제로는 허용·조장·관리했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유엔군사령부가 서울로 이전할 무렵인 1957년 한국 정부는 전국에 미군 위안시설을 지정해 위안부들을 집결시키며 성병을 관리하기로 했다.
정부는 1961년 윤락행위방지법을 만들어 성매매를 강하게 금지하면서도, 이듬해 성매매 영업이 가능한 ‘특정지역’을 설치·관리했다. 박정미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논문을 보면 1963년 전국의 특정지역에 등록된 위안부는 1만3947명이나 됐다. 이중 75%인 1만1044명이 경기도 거주자였다.
공무원들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며 위안부들을 치켜세우는 한편, 성병 관리라는 명분으로 강제 연행했다. 경찰과 보건소, 미군이 합동 단속을 벌여 검진증 없는 여성을 잡아가는 ‘토벌’, 성병에 걸린 미군이 자신과 성매매한 여성을 지목하는 ‘컨택(추적조사)’과 같이 폭력적인 방식이 행해졌다. 그렇게 여성들이 끌려간 곳이 바로 성병관리소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도 없었지만 여성들은 곧바로 격리됐고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
이런 정책은 ‘한·미동맹’, ‘국가안보’, ‘외화벌이’ 때문이었다. 법원 판결 내용이다. “위법한 성병 치료가 행해진 데에는 (정부가) 원고(위안부)들을 국가안보나 외화 획득에 활용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즉 외국군들이 성매매 과정에서 성병에 걸려 건강이나 사기가 저하되면 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안보 또는 성매매 활성화를 통한 외화 획득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위안부들의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이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등한시한 채 성병 근절과 감소에만 치중했다.”
(이혜리, 경향신문, 24.10.20)
‘진주 편의점 폭행사건’ 항소심 징역 3년 선고…‘여성혐오 범죄’ 인정
지난해 11월 경남 진주에서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편의점에서 일하던 일면식도 없던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2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5일 창원지방법원 형사1부(이주연 부장판사)는 특수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에서 검사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측 변호사, 여성단체는 징역 3년이라는 판결과 가해자의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됐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1심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가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한 언동이나 피해자의 휴대전화기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손괴시키는 범행 수법이 비상식적이라는 점을 심신미약의 근거에 포함시킨 데는 다소 부적절한 면이 있다”면서도 “그것만으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모든 증거를 종합해 봐도 검사가 심신미약 사유의 부존재를 증명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폭행하면서 ‘페미니스트니까 맞아도 된다’는 말을 반복했고, (또 다른) 피해자가 말리자 ‘같은 남자면서 왜 남자 편을 들지 않느냐. 저 여자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면서 (또 다른) 피해자를 폭행했다”며 “피고인의 범행은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와 편견에 기반한 것으로 비난받을 만한 범행 동기를 갖는다”고 명시했다.
(김세원, 여성신문, 24.10.15)
법원, 부산 ‘돌려차기’ 가해자에 1억원 배상 판결 확정
20대 여성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가혹하게 폭행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부산지법 민사3단독 최영 판사는 피해자 ㄱ씨가 가해자인 이아무개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억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소송 과정에서 피고인 이씨가 한 번도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의견서도 내지 않아 ‘자백 간주’로 판단해 피해자 청구 금액 전부를 인용했다. 자백 간주는 원고 주장 사실에 대해 피고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경우 원고 주장을 자백하는 것으로 간주해 승소판결을 선고하는 것이다.
이씨는 지난 2022년 5월22일 새벽 5시께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ㄱ씨를 성폭행하려고 쫓아간 뒤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무차별 폭행해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강간살인 미수 혐의로 이씨의 징역 20년형을 확정했다.
(김영동, 한겨레, 24.10.21)
이수정 교수 “순천 10대 소녀 살해자, 살해 후 목표달성 만족감에 ‘미소’”
전남 순천에서 1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박대성이 살해 후 웃는 듯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과 관련,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분석이 심층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사건”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2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박씨가 피해자를 해친 직후 웃는 얼굴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데 대해 “반사회적인 판타지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 중에 내가 목표를 달성했다, 이런 만족감을 느끼는 듯한 웃음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박씨가) 폭력 전과가 꽤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얼굴에 흉터가 있고 목에 문신이 있다. 일반적으로 문신을 목에다, 정면에다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술을 4병이나 마신 것은 인사불성이라는 이야기인데 (박대성이) 도주하는 행위를 보면 목격자가 나타난 (곳으로부터) 반대 방향으로 굉장히 합리적으로 달아난다”며 “또 일정 기간 도주 후 여유롭게 행동하며 다른 술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어 “전과가 많은 사람이 반사회적으로 벌이는 범죄가 있기는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난 뒤 은둔하거나 도주하는 식으로 행위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사람(박대성)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술집을 찾아가 재차 문제를 일으킨다”며 “여러 번 (피해자를) 공격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범행이) 기억나지 않고 인사불성이 된 사람의 행위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또 이 교수는 박대성이 폭력 전과가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도대체 어떤 종류의 소셜미디어(SNS), 인터넷 정보에 노출됐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인터넷에서 마치 경쟁하듯 살인 예고 글, 묻지마 테러 예고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며 “폭력적이고 전과도 있는 사람이 (인터넷 살인 예고 글 등에) 장기간 노출돼 ‘내가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기록적인 행위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흉기를 든 채 집에서 나온 것이라면 (범행 후) 박씨의 웃는 표정이 해석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문경근, 서울신문, 24.10.02)
순천 10대 피살에 전문가들 “묻지마 아닌 여성 겨냥 범죄”
26일 전남 순천시에서 30살 남성이 길을 걷던 1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가운데, 피해자 ㄱ(18)양의 아버지가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며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와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뉴스1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ㄱ양 아버지 인터뷰를 공개했다. ㄱ양 아버지에 따르면, ㄱ양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약을 사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살해당했다. ㄱ양 아버지는 “‘아빠 약국에 약이 없대’라는 말이 마지막 통화가 됐다”며 “더 이상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매체에 말했다. ㄱ양은 최근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경찰관을 꿈꿨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피의자가 ‘일면식 없는’ ㄱ양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단순 ‘묻지마 범죄’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여성 혐오적 인식에 기반해 자행되는 각종 폭력의 심각성이 흐려지고 대응도 미온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중략)
허 조사관은 여성혐오 범죄의 기저에는 “여성을 살해했을 때 (사회적) 비난이 적다”는 점이 작동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노인이나 아동을 살해했을 때와 달리 여성, 특히 ‘밤늦게 돌아다닌 젊은 여성’을 살해했을 때는 피해자에 대한 (그릇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가해자에 대한 비난 정도가 약해진다는 점을 가해자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분풀이성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발)가 심해지면서 여성을 성적 또는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폭력을 가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제어가 안 되는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살인’이라는 통계 분류를 처음으로 추가했을 정도”라고 했다.
(최윤아, 한겨레, 24.09.30)
'순천 여성살해' 범행동기보다 중요한 것
9월 말 전남 순천에서 일면식 없는 10대 여성을 거리에서 살해한 가해자 박대성(30)에 대해 경찰은 범행 동기를 밝히지 못했다. 검찰 송치 후 경찰은 ‘이상 동기 범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언론은 이 사건을 ‘무차별 살해’로 다루고, 범행 동기가 “오리무중”이라는 제목을 단다. 2024년 한국 사회는 박씨가 피해 여성을 왜 800m나 쫓아가서 살해해야 했는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고 한다.
원한도 금전적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죽을 만큼 흉기를 휘두르는 건 자연스럽게 납득되는 상황은 아니다. 가해자가 자신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선택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는 ‘무차별 범죄’(Random Crime) 개념을 가져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래도 좋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A양은 정말 ‘무차별하게’ 겨냥되었나. 일면식 없는 사이의 살해 사건에서 분명히 성별화되는 피해양상을 무시한 채 그저 ‘모르는 사람’으로 퉁치는 건 온당한가.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을 만만히 여겨 손쉽게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것을 사회 문제화하지 않으려는 국가의 태도는 적절한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회피하는 이 사회야말로 여성들에게는 ‘오리무중’ 그 자체다.
순천 사건이 터지자마자 이들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남성이 처음 본 여성을 별 이유 없이 살해했다는 점에서 유사했기 때문이다. 당시 가해자는 상가 화장실에서 여러 남성을 그냥 보낸 뒤 여성이 들어오자마자 살해했다. 평소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도 진술했다. 이 사건을 여성혐오에 기반한 혐오범죄, 여성 표적 살해 등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그러나 그때나 8년이 지난 지금이나 수사 기관 및 사회 전반의 시선은 ‘여성혐오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식 석상에서 남성의 여성 살해를 뜻하는 ‘페미사이드’(Femicide)는 좀처럼 개념화되거나 가시화되지 못한다. 한국에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것 자체로는 여전히 사건화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성은 무차별하게 희생되는 피해자들 중 한 유형일뿐이고,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여성이라서만’ 당하는 일 따위는 절대 없다. 그 ‘다른 이유’가 안 보일 때조차 안갯속에 남기면 남겼지 성별이 핵심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꿋꿋이 외면한다. 이런 사회에 살고 있기에 우리는 더더욱 “여성이 약해보여서 당한 것이지 여자라서 당한 건 아니”라는 흔한 반론을 그냥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정지혜, 한국기자협회보, 24.10.08)
‘N번방 사건’ 5년… ‘오프라인 그루밍’은 여전히 처벌 사각지대
2022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A(18)양은 한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정신과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40대 남성 B씨를 만났다. ‘심리 치료를 해주겠다’며 접근한 B씨에게 3개월 넘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A양은 B씨를 만나 성폭행까지 당했다. A양은 곧장 경찰에 신고한 뒤 법정에도 섰지만, 친밀한 관계를 맺어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만든 뒤 성적으로 착취하는 이른바 ‘그루밍’은 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온라인으로 나눈 대화가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16세인 피해자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성관계했을 가능성이 있어 위계에 의한 간음이라 보기도 어렵다”는 취지로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이후 고등학교를 자퇴한 A양은 당시의 충격으로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김현아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은 “그루밍 처벌에 온오프라인 구별이 없었다면 재판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
미성년자 그루밍과 성 착취로 공분을 샀던 ‘N번방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오프라인 상에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그루밍 범죄는 여전히 처벌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루밍 범죄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만큼 온라인에 한정된 그루밍 범죄 처벌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에는 아동·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피해자와 친밀감을 쌓은 뒤, 오프라인으로 만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방식이 유독 잦아지고 있다는 게 경찰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춘기 청소년에게 고민 상담을 해준다고 접근한 다음, 온라인에서는 성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다가 실제 만남 이후 본색을 드러내는 수법을 쓴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와 동향 분석’을 보면, ‘인터넷 채팅 등에서 알게 된 사람’이 성범죄 가해자인 경우가 33.7%로 가장 많았다.
(김예슬, 서울신문, 24.10.06)
경찰, 올해 딥페이크 성범죄 921건 수사…474명 검거
경찰청은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딥페이크(허위영상물) 성범죄 사건 921건을 접수·수사해 피의자 474명을 검거했다고 16일 밝혔다.
텔레그램 기반의 딥페이크 성범죄가 확산하면서 경찰이 집중단속에 나선 시점(8월 28일)을 기준으로 나누면 총 신고 건수는 단속 전 445건, 단속 후 476건이다.
일평균으로 따지면 단속 이전 1.85건에서 단속 이후 9.92건으로 5배 이상 늘었다.
검거된 피의자 총 474명을 연령대별로 구분하면 10대가 381명으로 80.4%의 비중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촉법소년(10세 이상 14세 미만)도 71명(15.0%)이나 됐다.
(윤보람, 연합뉴스, 24.10.16)
정부 “딥페이크 성 착취물 소지·시청만 해도 처벌”
앞으로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만든 성 착취물을 소지하거나 시청하기만 해도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정부는 10일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소지·시청만 해도 처벌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 공포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소지하거나 구입·저장·시청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딥페이크 성 착취물에 대한 편집·반포 등 법정형을 기존 5년 이하에서 7년 이하로, 영리 목적인 경우 법정형을 7년 이하 징역에서 3년 이상 징역으로 강화했다.
또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이용한 협박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딥페이크 성범죄와 불법 촬영물 관련 자료 삭제와 피해자 일상 회복 지원을 국가 책무로 명시하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 공포안’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협박·강요 행위에 대해 가해자 처벌과 함께 경찰 수사권도 강화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공포안’도 통과됐다.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한 공포안 3건 가운데 처벌법의 경우 대통령 재가를 거쳐 관보 게재 후 즉시 시행된다.
(오인애, 법조신문, 24.10.11)
교사 67% “졸업앨범 제작 반대”…딥페이크 피해 우려
교사 10명 가운데 9명이 졸업앨범이 딥페이크 등 불법합성물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교사 10명 가운데 7명은 졸업앨범 제작을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한국교원총연합회는 지난 9월30일부터 10월9일까지 전국 유·초·중·고 교원 3537명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여파 졸업앨범 제작 등 실태 파악 교원 설문 조사’를 실시해 15일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교사 93.1%는 졸업앨범 사진을 활용한 딥페이크 범죄, 사진 합성, 초상권 침해 등이 ‘우려된다’(매우 우려 69.5%, 약간 우려 23.6%)고 답변했다. 졸업앨범을 계속 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이 67.2%로, ‘제작해야 한다’는 답변(32.8%)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대다수 학교가 기록·추억 등의 의미로 졸업앨범을 만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속 학교 등에서 졸업앨범을 만드느냐는 질문에는 97.1%가 ‘만든다’고 응답했다. (중략)
교사들은 딥페이크 피해 우려에 평상시 학생들과 사진 찍는 것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졸업앨범 외에 현장체험학습, 학교생활 중 학생들과 사진 찍는 것에 대해 불법 사진 합성 등의 문제가 있을지 걱정이 되냐는 질문에 ‘그렇다’(매우 그렇다 47.5%, 약간 그렇다 36.4%)는 답변이 83.9%로 나타났다.
졸업앨범에 사진 넣기를 꺼리는 것은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넣기를 꺼리거나 빼기를 원하는 학생이 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매우 그렇다 13.5%, 약간 그렇다 32.0%)는 답변이 45.5%로 나타났다.
(신소윤, 한겨레, 24.10.15)
7년 전 성폭행 미제 사건 공범…잡고 보니 여고 행정공무원
2017년 인천에서 발생한 성폭행 미제 사건의 공범이 7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부천 오정경찰서는 특수준강간 혐의로 30대 교육행정직 공무원 A씨를 체포해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9월 인천 한 축제장 옆 천막에서 공범 B씨와 함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범인을 찾지 못해 미제로 남았으나 지난해 B씨가 경기 과천에서 또 다른 성폭행 사건으로 경찰에 적발되면서 A씨의 과거 범행이 드러났다.
경찰은 B씨의 유전자 정보(DNA)가 2017년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DNA와 일치하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후 B씨로부터 A씨와 함께 범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A씨는 검거 직전까지 경기도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행정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손현규, 연합뉴스, 24.10.14)
죽음 앞에 선 여성들…10·20대 여성 '하루 34명' 꼴 자살시도
젊은 여성들의 자살 시도가 꾸준히 늘어 지난해 자살을 시도한 10대·20대 여성이 1만2287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젠더폭력 및 불안·좌절의 경험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2024.6월까지 자살 시도자 현황' 자료를 <프레시안>이 분석한 결과, 지난해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3만9404명으로 이 중 10대, 20대 여성은 1만2287명이었다. 10대, 20대 여성의 자살시도는 전체 인구 대비 31%를 차지했다.
자살을 시도한 10대, 20대 여성들은 2020년도부터 꾸준히 30%대를 기록하고 있다. 2024년 상반기에만 4788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2020년에는 1만200명 (29%), 2021년 1만2224명 (33%), 2022년 1만1969명 (32%), 2023년 1만2287명 (31%)이 자살을 시도했다. 지난해 기준 하루 34명 꼴로 10대, 20대 여성들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5개년 동안 모든 성별과 연령을 통틀어 20대 여성의 자살 시도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에는 7329명의 20대 여성이 자살을 시도했다. 같은 해 자살을 시도한 20대 남성(3,067명)의 2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자살을 시도한 20대 여성은 2022년에는 7417명, 2021년에는 7993명, 2020년에는 6866명을 기록했다.
문제는 10대 여성들의 자살시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자살을 시도한 10대 여성은 3334명이었으나, 4231명(2021년) → 4552명(2022년)→4958명(2023년)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2022년대비 406명이나 늘면서 10대 여성이 지난해 다른 성별, 연령과 비교해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중략)
이민아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청년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의 자신의 위치에서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2018년도 이후 노동시장의 상황을 보면 비정규직 시간제 비율이 청년 여성에게서 급격히 증가하는 등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어려움이 청년 여성들에게 집중됐다. 거기에 청년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외모나 행동 등 사회적인 압력과 통제가 심하다. 또한 젠더 폭력의 위험에도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 있어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불안과 좌절의 경험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남인순 의원은 "청년여성의 자살을 정신병리학적 문제로만 접근하면 개선이나 해결은 쉽지 않으며, 자살을 유발하는 사회구조적 문화적 원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며 "뿐만 아니라 결혼과 출산을 전제로 한 지원 정책만이 아닌 청년 여성 개인에 초점을 맞춰 노동시장내 차별 및 심각한 젠더폭력 등 구조적 문제 개선에 국가가 더욱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연, 프레시안, 24.10.14)
“전 세계 여성 8명 중 1명, 18세 이전에 성폭력 피해”
전 세계 여성 8명 중 1명이 18세 이전에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10일(현지시간) 유니세프가 발표한 전 세계 아동·청소년 성폭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18세 이전에 강간 등을 비롯한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소녀와 여성은 3억7천만명 이상이다.
온라인상의 폭력이나 언어 폭력과 같은 비접촉(non-contact) 형태의 성폭력으로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18세 이전에 성폭력 피해를 겪은 여성의 숫자는 6억5천만명으로 추산됐다. 전 세계 여성 5명 중 1명이 피해를 겪은 것이다.
유니세프는 이번 조사 결과가 “모든 형태의 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포괄적인 예방·지원 전략이 시급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캐서린 러셀 유니세프 총재는 “아동 성폭력은 우리의 도덕적 양심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라며 “(아동 성폭력은) 아동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하는 장소에서 종종 알고 있고, 신뢰하는 사람에 의해 발생해 깊고 지속적인 트라우마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중략)
유니세프는 “대부분의 아동 성폭력은 청소년기에 발생하며 14~17세 때 급증한다. 성폭력을 당한 아동은 반복적으로 학대를 받을 위험이 더 크다”며 “청소년 시기에 개입해 악순환을 끊고, 트라우마의 장기적인 영향을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성인이 되서도 트라우마를 겪으며, 성병과 약물남용, 사회적 고립, 불안증과 우울증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을 위험이 높고,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세원, 여성신문, 24.10.10)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