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자는 무능력해진다.

2022.10.16 | 조회 239 |
0
|

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일을 한 지 오래되었다. ‘작장인’으로 근로 계약서를 쓰고 일한 지는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전에도 계속해서 일을 했다. 대학원 장학금을 받기 위한 근로를 하기도 했고, 수업 조교를 했고, 산학 프로젝트의 리더나 일원으로 일을 했다. 더 어렸을 때는 단기 아르바이트나 학교 강사로 일을 했다.

일이란 무엇인가? 단기 아르바이트가 될 수도 있고, 근로계약서를 쓰고 회사를 다닌 것이 될 수도, 단순한 심부름이 될 수도 있다.

범위를 조금만 좁혀보자. 일이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해주거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한다. 회사원이라면 임원진이 정한 회사의 비전과 로드맵을 달성하기 위한 일을 하고, 식당에 종사한다면 매출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일(배달, 요리, 서빙)을 한다.

일하는 자는 무능력해진다.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요즘 유식한 말로는 ‘자기 통제권을 상실’ 했다고 한다. 나도 그렇고, 술자리에서 한탄하는 지인도 그렇고, 나의 상사도 그렇고, 나의 상사의 상사도 그렇다. 나는 원하는 의사결정을 때때로, 자주 할 수 없다. 의사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한탄하는 지인은 왜 무능력해지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나, 조직구조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상사와 상사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 최고위 임원도 다르지 않다. 이사회가 허락하는 일을 해야한다. 의사회 구성원도 자유롭지 않다. 사람이 아니라 돈 그 자체가 허락하는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사람 위에 돈이 있는 셈이다.

일의 목적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일은 사람이 한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개인이 진정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은 인간의 모든 활동 그 자체다. 친구와 영화를 보는 것도 삶이고, 아침에 깨어나서 기지개를 켜는 것도 삶이다. 그리고 일터에 나가 밭을 갈거나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삶이다. 일도 사람의 삶이다.

경제 활동의 기본은 거래이다. 거래를 통해 경제 가치가 이동하거나 창출된다. 사람들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물건을 ‘상품’화하고 가치를 매기고 사거나 판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삶 일부분을 ‘상품화’해버렸다. 바로 ‘일’ 이다. 문제는 칼 폴라니가 지적한 것처럼, 상품은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줄이거나 늘리고, 모양을 바꿀 수 있지만 삶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 이라는 형태로 개인의 삶을 의도적으로 조정한다.

모 보험사에 일하는 지인이 있다. 매일 전화가 울리고 고객의 욕지거리를 듣는다. 늘 그렇듯이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자신보다 낮은 인간이라고 여기고 업신여기기 위함이다. 인간은 기분이 나쁘지만 상품은 기분이 나쁜면 안된다. 전화를 받고 있는 그 순간에 그는 인간이라기보다 상품이다. 그러므로 화를 내거나 분노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말을 건넨다. “말씀해주신 부분 빠르게 개선하겠습니다. 다른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고객님?” 그보다 더한 일도 겪는다. 직장 상사에게도 그는 일하는 부품일 뿐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물을 터뜨리지만 책임질 부모와 동생 셋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울음을 그친다. 눈물을 닦아내고 잠을 청한다. 자신의 무능력해진 삶에 스스로를 탓하지만, 이는 생각해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서 잠에 들어 내일 아침에 다시 ‘상품’으로서 출근하는 것이 유일하게 무능력을 떨치는 방법이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리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이라도 어쩔 수 없다. 100%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조직되고 운영되는 ‘사업’체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을 포함해 일부 IT 기업은 ‘조직과 함께 성장’ 할 수 있게끔 여러가진 지원책과 비전을 마련한다. 도서지원비나 직무 관련 교육비 제공, 성장을 위한 코칭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는 조직이 추구하는 성장의 방향이 개인이 원하는 성장과 일치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업종과 조직은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조직되어있지 않다.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짜여져 있으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일하는 사람에게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개인이 스스로 어떻게 성장을 통해 자유를 추구하고 행복을 찾아갈 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일을 통해 성장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 거의 없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할지 너무 알지만, 어떤 성장을 추구하고 싶은지는 전혀 모른다.

이들에겐 성장에 대한 생각 자체가 피로하다. 앞서 언급한 지인의 꿈은 교사였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주는 것이 꿈이라고 ‘옛날엔’ 자주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간 현재와의 괴리를 떠올리게 될테고, 그랬다간 지금이 그럼에도 왜 불행하지 않은지 설명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열정 조차 근무시간에 모두 쏟아버려서 남은 것이 없다.

자기통제감이 떨어졌음에도 오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을 하면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는 착각’ 자신이 무능력해진 것을 잊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다시 무능력의 악마가 찾아오지만 애써 잠에 들면 그 뿐이다. 무의식은 계속해서 그의 무능력함에 우울감을 더해준다.

‘무능력해지는 기분’ 은 분노와 증오를 낳는다. 즉 상사, 지인,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내적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분노하는 자의 특징은 ‘대상의 파괴’ 를 추구하는 다는 것이다. 분노의 대상이 사라지거나 무찌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비유적으로든 실제로든) 자신을 무능력하게 만든 상사, 지인, 가족을 파괴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다. 대상이 자기자신일 경우, 자학적인 행동과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든, 특정 대상을 미워하든 분노와 증오의 상태, 무능력으로 찾아온 무기력함이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다. 삶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즉 삶을 사랑하는 능력 자체가 쇠약해지며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야 말로 ‘진짜 무능력’ 이라고 할 수 있다. 증오나 분노는 어떤 기분 나쁜 현상에 대한 반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랑의 능력이 약함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증오의 반대는 열정적인 긍정인 셈이다.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수동성’에 대한 자각이 우선이다. 야근을 하고, 오래 일을 하는 사람, 그로부터 높은 성과를 인정받는 사람은 자신을 능동적인 사람으로 착각한다. 오래 일을 하는 것과 능동적인 삶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 현대인은 분주함(busy - business)를 능동적인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야근하는 자는 자기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봐야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과정과 결과 모두를 자발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지, 누군가의 평가와 압박 속에서 무능력해지지 않기 위해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단순히 ‘분주한 수동성’ 에 갇힌 것은 아닌지.

우리가 진정으로 길러야하는 능력은 삶에 대한 열정적인 긍정이다. 삶에 대한 사랑은 현상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깝다. 삶을 의식적으로, 긍정적으로 사랑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를 연습하고 훈련해서 능력을 갖춘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바다김 레터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