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집 집들이에 내 집이 소개되었다.

곱슬머리는 왜 악당이 되어야 했는가

2022.07.10 | 조회 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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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 오늘의집에 데뷔하다.

 

구독자에게 자랑 하나 늘어놓고 시작하겠다. 얼마 전 숙원사업, <오늘의집>에 나의 자취방을 소개하기,를 이뤘다. 일주일 만에 만 명이 넘는 사람이 내 집을 봤고, 500명이 넘는 사람이 집을 스크랩해갔다. <오늘의집>을 몇 년간 사용하면서 150건의 스크랩을 했고, 이로인해 수백만원을 썼다. 내가 <오늘의집>의 중앙값을 대표하는 사용자라고 할 순 없지만, 대충 비슷하다 치면 이 플랫폼은 게시물 하나로 꽤나 재미를 본 셈이다.

숙원사업이 이뤄진 것은 사전적으로 따져보면, 오랫동안 품어왔던 염원이나 소망이 이뤄졌음을 말한다. 다른 뜻으로 말해보자면,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뤘던 일을 드디어 해치웠음, 정도랄까. 딱히 오늘의 집의 매출을 올리려고 하지도, 집을 엄청나게 유명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으니 나의 경우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도 집이 소개돼서 좋았던 점을 두 개 꼽을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에게 칭찬받았다는 점(고래도 아니고 실제로 춤도 추지 않았지만), 그리고 집을 업로드하기 위해 구석구석 청소하고 열심히 카메라로 나의 일상을 기록해봤다는 점이다. 내가 왜 이 물건을 샀더라? 왜 여기에 뒀더라? 고양이랑 사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지? 내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나의 공간을, 그리고 나를 정의해볼 수 있군, 정도의 생각이 작아졌다 커졌다 교차하며, 콘텐츠를 만드는 내내 머릿속을 오갔다.

숙원 이야기로 잠깐 새면, 요즘 시대에 염원이라는 단어는 거의 쓰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오래'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3년마다 이직하는 시대에 ‘00기업 들어가기'는 염원이 될 수 없다. 통일이라던가, 세계평화 같은 뭔가 나 말고 좀 더 거대하고 대단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욜로니 카르페디엠이니 하는 세상에, 사람들은 염원이라는 단어와는 점점 사이가 소원해진다.

 

코숏과꼬불킴

게시글이 올라가기 전에, 오늘의집 콘텐츠 매니저로부터 프로필 사진으로 자신을 드러내면 게시글 반응이 더 좋다는 말을 들었다. ‘닉네임이라는 게 있었어?’ 하면서 ‘마이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개인 페이지에 오래전 회원가입 하면서 자동생성된 닉네임와 아주아주 오래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등록되어있었다. 그대로 업로드되면 너무 성의 없을 것 같아 고양이를 끌어안은 사진을 프로필로 하고, 닉네임을 ‘코숏과꼬불킴'으로 바꿨다. 집에 코숏 한 마리, 그리고 꼬불머리 인간(김해 김씨)가 살고 있으니, 나름 직관적인 닉네임인 셈이다.

나는 완전 곱슬머리다. 어머니는 직모, 아버지는 곱슬인데, 외형은 아버지 쪽을 많이 닮아서 그렇다. 근 몇 년간 짧은 머리를 하다가 요즘에는 머리를 많이 길렀다. 그랬더니 자꾸 사람들이 파마했냐, 물어보고 나는 매번 ‘원래 머리가 이래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보통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정말요 정말? 파마 값 아꼈네, 파마 값 아꼈네요, 부러워요, 부럽다.’

‘곱슬머리’

중학교땐 내가 곱슬머리라는 사실이 그렇게 싫었다. 그땐 단정한 머리가 유행이었다. 샤키컷이니 뭐니 해서 긴 머리가 유행하긴 했지만 적어도 곱슬거리는 사람들을 위한 머리는 아니었다. 잘나가는 애들은 다 단정한 머리를 했다. 특히 일자 앞머리, ‘뱅 헤어'가 독보적인 유행이었는데, 곱슬머리에겐 꿈도 못 꿀 스타일이다. 미용실 가서 그렇게 머리를 잘라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땀이라도 조금 나면 바로 꼬불꼬불 제멋대로 앞머리가 휘어버린다. 키도 작고, 여드름도 나서 외모에 잔뜩 심술 난 중2병한테 유행을 따라갈 수 없는 곱슬머리라는 악재까지 덮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무렵, 나와 비슷하게 곱슬머리를 가졌던 친구가 ‘스트레이트 매직'이라는 묘안을 냈다. 몇만 원을 내면 머리를 바짝 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선발대로 나섰고, 결과는 말그대로 ‘마법' 같았다. 겁나 멋졌다. 단 두 시간 만에 저렇게 변신할 수 있다고? 나도 부모님을 졸라 용돈을 타서, ‘매직'을 했다. 그때는 ‘네추럴한 매직'을 해주는 미용실이 별로 없어서(적어도 우리 동네는 그랬다.) 모든 두발이 바짝 펴져서, 처음 며칠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됐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러운 일자 머리가 되었다. ‘뱅헤어'를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강한 곱슬머리에게 매직은 훌륭한 처방전이 되지 못한다. 한 달도 채 안돼서, 시술한 머리카락 사이로 곱슬머리가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기 때문이다. 반듯이 펴져 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고불고불한 머리카락이 튀어나와서, ‘여기! 여기 내가 있어, 내 곱슬거림좀 봐!!’ 라고 끊임없이 외친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보통이 아닌데, 거금을 들여서 다시 매직하거나, 매일매일 엄마 고데기로 몰래 머리를 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머리가 빨리 상하게 되고, 결국 과자처럼 부스러기 같은 머리카락만 남아서 매직을 할 수도 없게 된다. 역시, 세상에 공짜 마법은 없다.

‘악성 곱슬머리'의 전형적인 새드 스토리다.

 

 

곱슬머리는 왜 악당이 되어야 했는가

 

어제는 머리를 커트하러 갔는데, 커트를 마친 후 디자이너 선생님이 머리를 말려주면서 아주아주 다정하게 ‘단정하게 머리를 드라이하는 법'을 알려줬다.

뒷머리는 그냥 말리면 안되시구요, 뒷 목을 눌러가면서 말리고, 전체적으로 브러시로 꼭꼭 빗으면서 말려야 단정해져요. 앞머리는 또 .. 참, 머리가 튀니까 옆머리는 단정해지도록 알아서 정리해줬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한 마디 덧붙였다.

곱슬머리때문에 옆머리가 붕 떴는데, 다음에는 다운펌 꼭 하세요.

감사의 말을 건네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 곱슬머리는 왜 숨겨져야 하지? 무슨 죄라도 저질렀나? 머리가 뻗치면 안 된다는 법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고불거리고 머리가 좀 커 보이면 어떤가, 어차피 내 머린데.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파마 값 아꼈네!’라고 말해주던 어른들을 빼면 지난 삼십 년간 곱슬머리는 늘 혼나기만 했다. 이쯤 되면 곱슬머리 혼내기 비밀 위원회라도 있는 게 아닌가. - 하는 의심도 들었다.

아무튼, 과거엔 나에게도 내 곱슬머리가 악당이었지만 지금은 내 곱슬머리가 좋다. 그래서 곱슬머리에 굳이 ‘마법'을 부리지 않게 된지 7년이 넘었다. 가끔 ‘깔끔하게' 스타일링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수백도의 열기로 한올한올 머리카락들을 괴롭힐 이유가 없다.

굳이 내 머리의 새드스토리를 이야기하자면, 할아버지가 민머리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있을 때 아껴주자, 괴롭히지 말고.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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