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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는 좀 황당한 사례로 시작해볼게요.
지난 2026년 2월, 40대 남성 A씨가 컴퓨터 부품 판매점에 침입해 약 1700만원 상당의 GPU를 훔쳤다가 구속된 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 조사에서 밝혀진 그의 범행 동기는 충격적이었어요.
"챗GPT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주식 리딩방 사기 피해자였던 A씨, 챗GPT에 해결책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훔친 돈을 피해 계좌에 송금하면, 절도범으로 검거될 때 리딩방 사건도 함께 수사해줄 것"이라고요. A씨는 그 말을 그대로 따랐고, 결국 피해자에서 전과자가 됐습니다.
기사 댓글엔 "본인이 AI보다 못한 존재"라는 조롱도 달렸는데요. 저는 그 댓글을 읽으면서 오히려 이런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애초에 저 어이없는 이야기를 왜 믿었을까, 그리고 이런 일이 정말 A씨만의 이야기일까?"
AI를 믿을수록 '나'를 불신하게 된다
우리가 AI의 말을 맹신하는 이유에 대해 국제 데이터센터 협회의 메흐디 파라비 대표는 지난해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AI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먼저 '자기 확신의 상실' 이 시작된다. 뒤이어 AI가 나보다 똑똑하다고 믿게 되면, 점차 자신감도 잃게 된다.
저는 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직접 경험해봤습니다.
제가 기자 시절 AI로 몇 개월 동안 기사 초안을 써봤다는 이야기, 과거에 고백했던 적이 있죠? 그때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기억나요. AI가 의외로 저만큼이나 글을 잘 쓰는 겁니다. 당시 제 자부심 중 하나가 바로 '글솜씨'였던지라 더 혼란스러웠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나는 AI만큼 기복 없이 항상 고품질 글을 쓸 수 있을까?' 솔직히 답은 '아닐 것'이었어요.
하지만 만약 그 상태에서 계속 AI에 의존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면? 아마 저도 '글은 AI가 더 빠르고 낫다'는 확신이 점점 단단해졌을 겁니다. 그리고 그 확신이 굳을수록, 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반대로 깎여나갔겠죠.
이게 바로 파라비 대표가 말한 구조예요. AI를 신뢰하면 할수록, 그 신뢰는 역설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전환됩니다.
나보다 빠르고, 나보다 정확하고, 나보다 기복 없는 AI를 옆에 두고 있으면, '그냥 AI한테 물어보지 내가 왜?'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요.
또한 이게 처음에는 사소한 일에서 시작하지만 습관이 되면 더 중요한 영역까지 번지게 됩니다.
AI를 왜 믿게 될까?
여기서 한 가지 팩트를 반드시 떠올려야 해요.
AI의 모든 답변은 확률적으로 만들어진 불확실한 결론이고, 인간의 입맛에 맞게 다듬어지며, 모르는 정보는 환각으로 채워진 상태로 나온다는 것. 제가 늘 강조하는 이야기들이죠.
다만 AI는 이런 맹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글을 굉장히 세련된 문체와 논리적인 구조로 포장해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의심할 틈이 쉽게 보이지 않기도 해요.
그런데 자기 확신을 잃은 상태에서 이런 AI의 답변을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요. 비판보다 수용이 먼저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든 한번 수용하고 나면 그 결론에 맞춰 역으로 자신이 납득할 이유를 짜맞추기 시작하죠. 이게 바로 잘못된 맹신으로 가는 지름길이고요.
원래 인간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 (1) 의문 (2) 질문 (3) 정보 탐색 (4) 비판·이해 (5) 결론과 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AI가 만든 결론부터 시작하면? 탐색과 비판 같은 핵심 과정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건너 뛰고 얻은 지식, 결과는 사실 불완전한 것이 되고요. 남이 물어봐도 쉽게 기억 못 합니다. 그래서 AI가 없으면 불안해지고, 직접 하려니 자신감도 점차 사라져 가는 악순환이 생겨나죠.
A씨 사건에서도 AI에 대한 맹신이 어떻게 작동했을지 한번 추정해봅시다.
극심한 금전 피해 상태, 어디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 절박함. 그 상황에서 이미 자기 판단에 대한 확신이 무너진 A씨에게 AI는 세련된 문장과 논리적으로 들리는 답을 내놨습니다. 이미 정신적으로 약해진 A씨에게는 의심할 틈이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AI는 아무 책임도 져주지 않죠. 결국 A씨는 전과자가 됐습니다.
물론 이 사건은 꽤 극단적인 사례예요.
하지만 중요한 건 A씨와 우리의 차이는 상황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아무 기준 없이 AI가 주는 답변을 덥썩덥썩 믿고 신뢰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낭패를 보는 날이 올 테니까요. 그리고 지나서 보면 "내가 그걸 왜 믿었지?"라고 땅을 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AI를 신뢰하고 의지할수록 역설적으로 나에 대한 불신은 커져 갑니다. — 휴마이즘
대응 전략
오늘 하루를 잠깐 돌아보세요. AI의 추천이나 답변을 별다른 의심 없이 그냥 수용하고 따른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나요? 그 중 하나만 골라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왜 그 답변을 믿었지? AI가 틀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판단, 나는 스스로 내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맹신의 함정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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