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돌이켜보니 ‘좋은 의사결정’과 ‘고유성’ 이란 키워드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폴 그레이엄과 나발 라비칸트가 등장하는데요, 두 사람은 제가 인생에 고민이 생길 때 항상 찾게 되는 사람들이에요.
온전한 나의 기준, 선호, 취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는 요즘이에요. 스캐터랩 김종윤 대표의 EO 영상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결국 욕망이라는 게 내가 그걸 수립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욕망으로 채워져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탐구하지 않으면 세상이 정한 욕망을 추구하며 살게 된다는 거에요.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되네요. 이번 주 콘텐츠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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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x.com/ycombinator/status/1958582370656805226
지난 뉴스레터에서도 소개했던 폴 그레이엄의 또 다른 에세이 How To Make Wealth 의 일부. 왜 스타트업은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나는 이게 스타트업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보다 강한 상대를 이기려면 지저분해져야 한다. 나도 힘들지만 상대방은 더 힘든 전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결국 경쟁우위에 대한 이야기. 아래는 위 내용의 번역이다.
회사의 전반적인 목표를 설정할 때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의 갈림길에서도 어려움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Viaweb에서 우리가 따르던 경험 법칙 중 하나는 “위층으로 달려라(run upstairs)”였습니다. 당신이 작고 민첩한 사람이고, 큰 덩치의 불량배에게 쫓기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문을 열었더니 계단이 있습니다. 위로 갈까요, 아래로 갈까요? 저는 위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불량배는 당신만큼이나 빨리 아래로 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 때는 그 덩치가 단점이 됩니다. 위로 달리는 건 당신에게도 어렵지만, 그에게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실제로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일부러 어려운 문제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가치 있는 두 가지 기능을 소프트웨어에 추가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항상 더 어려운 것을 선택했습니다. 단지 더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느리고 큰 경쟁자들을 힘든 길로 끌어들이는 것을 즐겼습니다. 마치 게릴라가 중앙정부 군대가 따라올 수 없는 산악 지형을 선호하듯, 스타트업은 이런 험난한 지형을 택합니다. 하루 종일 끔찍한 기술적 문제와 씨름하고 지쳐 있을 때가 있었는데, 저는 오히려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경쟁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좋은 방법일 뿐 아니라, 스타트업이란 본질적으로 그런 것입니다. 벤처 투자자들도 이를 알고 있으며, 이를 “진입 장벽(barriers to entry)”이라 부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VC를 찾아가 투자 요청을 하면, 그가 처음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걸 다른 사람이 개발하기 얼마나 어려울까요?” 즉, 잠재적인 추격자와 당신 사이에 얼마나 어려운 장애물을 만들어 두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기술을 복제하기 힘든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회사가 당신의 기술을 알게 되자마자 그들만의 버전을 만들고, 브랜드, 자본, 유통망을 앞세워 순식간에 시장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게릴라가 정규군에게 탁 트인 평지에서 포위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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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 라비칸트의 3가지 의사결정 원칙. 폴 그레이엄의 “위층으로 달려라(run upstairs)” 라는 원칙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통달한 사람들은 어떤 공통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 같기도.
- If you can’t decide, the answer is NO (결정하기 어렵다면, 거절해라).
- 뭔가를 선택하는 순간 오래 묶이게 된다. 우리는 어떤 결정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소한 프로젝트라도 시작하는 순간 최소 3개월은 내 시간을 앗아간다. 공동 창업자를 정하는 것, 결혼, 집을 사는 것 등은 최소 5년에서 길게는 평생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긍정적이지 않다면 선택하면 안 된다.
- If both options looks equal, take the path that is more difficult, more painful in the short term. (항상 단기적으로 더 어려운 옵션을 선택해라.)
- 우리 뇌는 단기적인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아는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단기적인 고통은 장기적인 보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면 오늘은 고통스럽겠지만 장기적으로 더 건강해진다. 그래서 비슷한 두 옵션 중에 고민이 된다면 단기적으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 Make the choice that will leave you more equanimous(a state in which you enjoy more peace of mind, calm state) (마음이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를 느낄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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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버전]
이세돌의 팟캐스트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부분. 원래 바둑에서 소위 ‘삼삼침입((3, 3) 위치에 두는 것)’이라고 불리는 수는 금기로 여겨졌다고 한다. 모든 바둑 기사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고. 그런데 알파고는 대국에서 삼삼을 둔다. 날고 기는 바둑 기사들이 절대 두지 않는 수를 알파고는 둔 것이다. 이세돌은 이 부분에서 AI의 창의성을 발견했는데, AI는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에 틀을 깨는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창의성이란 대단하게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것이라기 보단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능력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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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많은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인물, 조수용 JOH 대표의 세바시 강연. 조수용 대표는 카카오 공동대표, <매거진B> 로 유명하지만, 사업가이기 전에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흔히들 “크레이티브”, “창의성”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면 감각 있는 누군가가 “번쩍”하고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크레이티브는 그렇지 않다. 크레이티브는 다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파고든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가장 창의적인 것은 내 안에 있다. 10년 전 강연임에도 여전히 들을 가치가 있다. 영상이 좋았다면 작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일의 감각> 도 추천한다.
크레이티브는 나한테 있어요. 그런데 굉장히 구체적이어야 돼요. 대부분은 구체적이지 못해서 그렇게까지 잘 안나오게 되는 거고요. 또 하나는 그렇게 구체적이려면 실제로 굉장히 좋아해야 해요. 좋아하지 않으면 구체성이 안 생겨요. 아주 좋아해야 해요. 카페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거에요. 정말 좋아해야만 구체적으로 떠올라요. 크레이티브를 할 수 있는 기반은 무언가를 엄청나게 좋아할 수 있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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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형 인공지능 “이루다”로 유명했던 스캐터랩 김종윤 대표의 EO 인터뷰. 그의 창업 스토리와 “제타”라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김종윤 대표나 스캐터랩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영상 말미(17분 이후)는 꼭 보셨으면 한다. 삶의 방식에 옳고 그름은 없지만,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느끼는 게 많을 것이다.
인생이 뭐냐라고 생각했을 때 “고유한 삶”, “나만 살 수 있는 삶” 이런 것들이 저한테 되게 중요한 가치고, “그건 너만 살 수 있는 삶이다.” 이게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 같거든요. 그 반대 축에 서 있는 게 전 (정신적) 중산층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차 사고 싶다. 서울에 아파트 사고 싶다. 좋은 대학 갔으면 좋겠다. 대기업 갔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만 원하는, 나만의 욕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그게 제가 정의하는 정신적인 중산층이에요. 그 사람의 욕망을 들어보면 어떤 것도 고유한 욕망이 없어요. 다 합리적인 욕망밖에 없어요. 크든 작든 상관없는데 무언가는 그 사람만의 뭔가 있어야 되는 거 같은데. (…) 결국 욕망이라는 게 내가 그걸 수립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들의 욕망으로 채워지거든요.
멋진 제품은 어느 영역에든 어떤 식이든 항상 있죠. 다만 그걸 내가 발견해 낼 수 있고 내가 실행해 낼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인 거 같고 그럼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뭐에 관심이 있고 나는 어떤 분야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그걸 잘 알고 있어야 되거든요. 좀 사람이 모가 나야 되는 거 같습니다. 둥글둥글한 사람은 남들을 보는만큼만 보고 남들 못 보는만큼 못 보는 거 같거든요. 나만 재밌는 거. 남들은 다 재미없다고 했는데 나만 재밌는 거 바로 그 지점에서 나만 볼 수 있는게 생기는 거 같거든요.
그게 뭔지는 사람마다 당연히 다 다를 거고 그걸 발견하는 거는 정말 각자의 몫이죠. 전 인생이라는 건 나만의 인생이라는 거는 내가 고통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무언가를 정하는 일인 거 같거든요. 그리고 그건 고통을 당해 봐야 아는 거기도 하고. 저는 인생에서의 고난과 고통이 그 역할을 하는 거거든요. 그게 개같이 힘들어야 알 수 있어요. 그게 진짜지냐. 근데 그걸 하면은 돈도 못 벌어. 사회적으로 욕 먹어. 부모님도 다 싫어하고 여자친구도 싫어하고 가족도 다 싫어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걸 하겠다는게 진짜 저의 욕망이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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