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미디어 가이드라인 살펴 보기

10월 첫째 주(2022)

2022.10.04 | 조회 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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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앤임팩트 미디어 뉴스레터

국내외 독립미디어 동향과 의제 브리핑

💌 뉴스레터 17호

🍀 "선을 넘지 마시오."는 교통 법규를 지킬 때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기 위해 정해둔 경계를 함부로 넘을 때도 씁니다. 요즘 그 선을 넘는 미디어가 넘쳐납니다. 여러 이유를 대지만 검은 속내는 단 하나, '나와 다르다'입니다. 자,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인디&임팩트의 선 정리! 짜잔-💦 

🍃 17호에는 앗! 뜨거운 최근 소식은 아니지만, 이 날을 위해 고이 모셔둔 2개의 가이드를 담았습니다. 2015년 '트랜스젠더 유럽(TGEU)'이 발간한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Guide for Journalists)』에 대한 단단한 리뷰와  2018년 '이주민방송 MWTV'에서 발간한 『인종차별예방과 문화다양성증진을 위한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에 대한 활기찬 소개를 담았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3호에 실렸던, 약간 묻혀 아쉬웠던, 「성폭력 생존자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창작자를 위한 6가지 조언」 도 함께 수록합니다. 

🌱 누구나 나 그대로의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미디어로 소통할 수 있길 바라며, 그 활동에 인디 & 임팩트미디어 뉴스레터도 함께 하겠습니다! 🙂🤔

✨ 과연 인디&임팩트는 선을 잘 지킬지! 매의 눈으로 구독하며 지켜봅시다. ✨


📚 목록   

  1. '트랜스젠더 유럽(TGEU)'이 전하는 언론인 가이드를 위한 또 다른 가이드
  2. 다인종 다문화 시대 평등한 삶을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3. 성폭력 생존자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창작자를 위한 6가지 조언

#1. '트랜스젠더 유럽' 이 전하는 언론인 가이드를 위한 또 다른 가이드

  트랜스젠더의 성별불쾌감(Gender Dysphoria)이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의 질병 목록에서 삭제 된지 9년이 지났다. 2018년 6월에는 국제보건기구(WHO)에서도 ‘성별 불일치’(Gender Incongruence)를 국제질병분류의 질병 항목에서 제외했다. 이제 더 이상 전 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는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하지만 의료계 현장에서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편견 속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아무리 공신력 있는 세계정신의학회와 국제보건기구가 질병이 아니라고 공표했더라도 의료계 현장에서는 그들을 환자로 대한다. 대중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법과 제도가 바뀐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삶은 절대 나아지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트랜스젠더 유럽(Trangender Europe, TGEU)’이 2015년에 발간한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Guide for Journalists)트랜스젠더에 대한 언론인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작성되었다. 언론은 대중의 인식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영향을 준다. 미디어가 한 존재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존재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없는 대중들은 그 묘사를 사실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편견을 진실로 되새긴다. '트랜스젠더 유럽'이 자신들이 처한 삶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언론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전달하겠다 결심한 것 또한 이러한 언론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대중의 인식을 좌우하는 언론의 변화가 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Guide for Journalists)』, (트랜스젠더 유럽 TGEU, 2015)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Guide for Journalists)』, (트랜스젠더 유럽 TGEU, 2015)

 

  '트랜스젠더 유럽'은 이 과정을 침착하고 차분하게 전개시킨다. 왜 우리를 혐오하고 왜곡하는지 분노하며 따져 묻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또 다시 왜곡되지 않도록 객관적인 정보와 핵심 내용을 잘 추려서 전달한다. 이성적인 그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내용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절실하고 간절하다. 별 생각 없이 기사화한 내용들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분노했고 상처 입었었는지 가이드북의 내용을 통해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는 절대 언론인들만을 위한 자료집이 아니다. 트랜스젠더를 쉽게 왜곡하고 폭력을 휘둘렀던 모든 이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첫 번째 섹션에서 설명하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기본 개념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보들이다. 기본적인 정보들로부터 가이드를 시작한 이유는 아마도 많은 기자들이 이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지 않은 채 기사를 썼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기사에 언급한 단어들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알고 있다는 오만함 속에서 글을 썼을 테니까. 이러한 현실을 '트랜스젠더 유럽'은 침착하게 문제로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 동안 사용해왔던 단어들이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불편하게 다가왔는지, 또 그 단어들이 왜 불편한지를 잘 설명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트랜스젠더가 겪어야 하는 삶의 문제점들을 쟁점화 하고 이를 기사화 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한다. 먼저 호칭과 관련된 문제적 상황을 설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책들을 전달한다. 그 다음 세 개의 핵심 주제들을 선택하여 각 주제 별로 자세하게 문제적 상황을 나열한다. 법적 성별 인식, 트랜스젠더의 탈병리화(depathologisation)와 보건, 트랜스 혐오 범죄와 차별. '트랜스젠더 유럽'이 선택한 세 개의 핵심 주제들 속에는 그들이 삶에서 겪어야 했던 부당함과 폭력의 근원이 담겨져 있다. 트랜스젠더는 필연적으로 트랜지션 과정에서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이 과정은 당사자에게 육체적, 심리적으로 힘든 과정이지만 언론은 이를 흥미로운 ‘볼거리’로 묘사해왔다. 트랜스젠더 유럽'은 트랜지션이 당사자에게 고통스러운 만큼 이 과정을 존중하고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을 ‘환자’로 대하지 말고 그 고통들을 전시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세 번째 섹션은 이미 기사화된 내용을 예시로 빌려와 무엇이 문제인지 조목조목 따져 묻는다. 특히 트랜스젠더를 자극적인 단어들로 묘사하는 각 기사의 헤드라인들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해선 강한 어조로 금지시킨다. 기사의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대중의 시선을 자극시키려는 언론사의 태도는 트랜스젠더를 도구 삼아 자신들의 자본을 늘리려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 유럽'은 이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며 당사자들의 정체성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들의 삶 자체에 관심을 가져달라 호소한다.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Guide for Journalists)』, (트랜스젠더 유럽 TGEU, 2015)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Guide for Journalists)』, (트랜스젠더 유럽 TGEU, 2015)

 

  세 개의 섹션을 통해서 '트랜스젠더 유럽'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단호하다. 자신들을 기사화 하려면 먼저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의 존재를 존중하여 표현해달라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반드시 취해야 하는 태도이지만 그 기본적인 것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유럽에서 7년 전에 발표된 자료가 한국의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은 자본의 전지구적 상황 속에서 성소수자 인권은 어느 나라든 똑같이 비상사태에 놓여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록 수없이 반복해 주장해왔던 메시지이지만 어쩌면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삶이 변화될 때까지 같은 내용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넘쳐나는 정보들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끝으로 또 한 가지, 이 가이드북을 보는 이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가이드북의 내용들은 절대적으로 유럽을 기반으로 작성된 내용들이다. 대부분 한국의 현실에도 적용되고 해당되지만 절대 유럽과 한국은 상황이 같을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이 가이드북을 보고 트랜스젠더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잠시 멈춰달라. 어떤 존재를 잘 이해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또 다른 편견과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오히려 ‘유럽의 트랜스젠더 상황이 이렇다면 과연 한국은 어떠할까?’ 질문을 바탕으로 한국의 트랜스젠더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직접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아픔에 동참하여 함께 더불어 살아내주길 바란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한국의 트랜스젠더, 더 나아가 한국의 성소수자 삶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Guide for Journalists)』(트랜스젠더 유럽 TGEU, 2015)

 

🖊 이. 이동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연출, 시나리오, 영상이론을 공부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2007), <오이시맨>(2008) 각본을 맡았고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춘천SF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2019년부터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와 함께 한국퀴어영화사(2019), 한국트랜스젠더영화사(2020), 한국레즈비언영화사(2021), 한국게이영화사(2022)를 책임편집 했다. 현재 영화를 통해 세상이 변화될 수 있는 보다 나은 미래를 상상하며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글쓰기를 수행 중이다. 🎬

 


#2. 다인종 다문화 시대, 평등한 삶을 위한 미디어 - 인종 차별 예방과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

 

“서구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은 주로 전문직으로 볼 수 있는 직업의 출신들을 출연시키는 특정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내보내고, 아시아에서 온 이주민들은 주로 이주노동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으로 특화된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것이 이주민들의 출신 국적에 따른 계층적 차이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갖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있으며, 다양한 직업군으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편파적인 출연진 구성으로 인해 출신국적별 직업의 차이를 고정적인 프레임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예방과 문화다양성증진을 위한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이주민방송 MWTV, 2018) 중

 

 2004년 이주민방송이 이주노동자방송이던 시절에 미디어란 전문가들의 영역이었기에 이주민 당사자들이 미디어 제작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자 변화였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한국 사회에 내고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들을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방송의 존재만으로 시민사회의 지원을 받았고, 어떻게든 유지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의 디지털 전환으로 TV채널은 수없이 생겼고, 거기에 1인 크리에이터의 등장으로 굳이 방송사 채널이 아니어도 다양한 플랫폼과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시청이 가능한 시대가 되어 이주민방송의 존재만으로 의미를 갖는 시대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가장 영향력이 있는 플랫폼 유튜브는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라는 측면에서 보면 누구나 미디어 제작자가 되어 만들고 퍼트릴 수 있고, 어디서나 시청 가능하고, 실시간 댓글을 통한 직접 소통 뿐 아니라 콘텐츠 공유도 쉬워서 피드백의 속도도 빠르다. 콘텐츠 공유의 확장력이 국경을 넘어 해외까지 온라인상에서 가능한 세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유로운 제작과 참여 그리고 확장력이 이주민이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평등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고 있는가이다. 주류미디어와 마을미디어, 공동체라디오, 1인 크리에이터들이 유통시키는 미디어 콘텐츠들이 이주민을 또는 타 문화를 그려내는 모습이 다양한 국적의 출신이자 다른 문화적 가치와 모습 속에서 살아 온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존중하며 우리와 동등한 시민으로 보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점검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2018년 이주민방송 MWTV는 방송법과 방송 심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된 주요 지상파 및 종편 방송을 중심으로 이주민 10명과 선주민 10명을 모니터링 활동가로 위촉하여 이주민이 등장하는 주요 프로그램들을 분석하였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동등한 비율로 참여해 같은 프로그램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서로가 모니터링 한 결과를 통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인식의 변화를 참여자 스스로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모니터링의 결과는 방송학회와 함께 토론회를 통해 알리기도 했으며,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주요한 사례로 제시되기도 했다. 모니터링 과정에서 미디어 제작자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방송법이나 방송 심의 규정들이 이야기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금지나 문화를 존중해야 할 의무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추상적인 문구에 그치는 것이 실제 제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가이드라인 기획팀은 용어에 대한 정의부터 제대로 짚기로 했다.

 무엇보다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2018년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혐오 발언과 관련한 미디어 권고사항이었다. 그 중 '불법 체류 이주민'의 용어 사용 철폐에 관한 권고였다. 이것은 법무부의 보도자료나 각 언론사들과 방송사들이 그동안 계속해서 써 온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용어로서 등록된 서류가 없다는 의미로 'undocumented'으로 표현되는 이주민을 불법이라는 'illegal'로 표현함으로써 형사법상의 범죄자로 오인하도록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용어의 오용은 곧 인종차별이자 혐오 표현이라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은 방송법이나 방송심의 규정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지상파나 종편만이 아니라, 법의 규제 밖에서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드는 미디어 제작자들인 1인 크리에이터를 비롯한 마을 미디어나 공동체 라디오 활동가들이 이러한 사실을 함께 인식하고 공유하고 제작에 반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흔히 쓰는 ‘다문화’라는 말이 왜 차별적인가부터 어떻게 이주민을 존중하는 태도로 제작해야 하는가까지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적용해 볼 수 있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인종차별예방과 문화다양성증진을 위한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이주민방송 MWTV, 2018)
▲『인종차별예방과 문화다양성증진을 위한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이주민방송 MWTV, 2018)

 

  아직 더딘 변화이지만 이 제작가이드라인 덕분에 TBS 같은 방송사는 모든 방송 언어에서 불법 체류자를 쓰지 않기로 자체 결정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여전히 유엔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1인 미디어 제작자나 활동가들이 이 방송제작가이드라인을 활용해 줌으로써 다인종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데 한 발 진보하기를 바래본다👏

 

『인종차별예방과 문화다양성증진을 위한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이주민방송MWTV,2018)

 

🖊 글쓴이. 정혜실

페미니스트 인류학자이자 공동체라디오 활동가로서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젠더, 이주, 미디어, 도시, 공간, 주거 등의 분야가 상호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의 권리와 삶의 질 그리고 사회변화에 관한 담론생성과 실행하는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3. [다시 보기] 성폭력 생존자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창작자를 위한 6가지 조언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가 피해자, 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란과 논의가 있어 왔다. 이런 문제를 가십거리로만 다루는 황색언론의 문제는 오히려 명백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우 더 복잡할 수 있다. 피해자가 겪은 일에 대해 알리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시작했다가, 자칫 그 작업 때문에 피해자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제다큐멘터리협회(International Documentary Association)'에서는 2021년 10월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온라인 토론 자리를 마련했고, 이를 통해 성폭력 생존자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창작자를 위한 6가지 조언을 정리했다. 토론의 진행은 국제다큐멘터리협회의 매기 보먼이 맡았고, 패널로는 셰리잔 미누왈라(인권변호사, 연구자), 벨키스 와일(인권감시단 연구자), 대포딜 알탄(영화감독, 프론트라인 기자), 앙드레 세딜(다큐멘터리 감독, UC버클리대 언론학 교수), 나탈리 블록-브라운(영화감독, '다큐멘터리 책임 위원회' 회원), 나빌라 라시드(법의학 사회복지사)가 참여했다.

  다음은 토론에서 정리된 내용을 번역한 전문이며, 원문(영문)과 토론 라이브 영상(자동번역 국문 자막 지원)은 하단 참고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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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성폭력 생존자를 지지하는 다큐멘터리들이 남긴 유산은 복잡다난하다. 많은 감독들이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가 제작 과정에서 생존자에게 더 해를 끼치거나 생존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국제다큐멘터리협회'와 '다큐멘터리 책임 위원회'는 다큐멘터리 연출자 및 언론인들이 이처럼 중요한 이야기를 다룰 때 생존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지 토론했다. 다음은 토론 내용을 6가지 팁으로 요약한 것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할 때 필요한 ‘트라우마 인지적 접근’에 대한 여러 제안 사항과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역자 주: 추가 참고 자료 링크는 원문 링크의 페이지 하단 참조)

  ▲ 이미지 출처: IDA 유튜브 https://youtu.be/UDNL1sNa5M8
  ▲ 이미지 출처: IDA 유튜브 https://youtu.be/UDNL1sNa5M8

 

 1. 그 어떤 연출자도 잠재적 가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일정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지난 토론 자리에서 다큐멘터리 책임 위원회 패널 나탈리 블록-브라운이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다. 말할 필요도 없이 다큐멘터리 연출자는 참여자의 이야기를 다룰 고유 권한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가해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연출자는 물론 스태프 중 누구라도 성폭력 피해자인 출연자에게 2차 가해를 할 가능성이 있음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참여자와 같은 경험을 했거나 같은 정체성을 가진 제작진일지라도, 예외 없이 말이다.

 2. 동의는 점진적 과정이다 

  연출자는 참여자의 ‘동의’에 대해 한 번 받아내면 끝나는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동의는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고, 이를 묵살하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일이다. 본인의 작업을 넘어 출연자의 삶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이 법적인 동의를 이미 받았다 해도, 제작 과정 중간중간, 특히 영화가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 단계에서 참여자에게 다시금 동의를 구해야 한다.

  특수한 상황에서는 참여자의 동의 과정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연출자 본인이 참여자에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그런 압박이 있을 수 있다. 토론 패널로 참여한 인권변호사 겸 연구자 셰리잔 미누왈라는 미디어가 ISIS의 성폭력 생존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이 연구를 통해 생존자 여성들이 속한 공동체 지도자들이 자기 공동체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피해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당한 일을 미디어에 공개하도록 압박했음이 드러났다.

  출연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엄격한 개념의 법적 동의를 넘어서는 조치를 취해야 그들의 안전과 안녕을 보장할 수 있다. 법적인 개념과 윤리적인 개념은 분명히 다르고, 부모의 동의만으로는 ‘실질적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늘 당사자가 편안한지, 시간이 흘러 성장하면서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후에도 여전히 프로젝트에 참여해도 괜찮은 지, 꼭 본인에게 확인해야 한다. 이번 토론에 참여한 인권감시단 연구자 벨키스 와일은 청소년 당사자가 참여한 본인의 작업에서 개별 당사자가 자신이 겪은 각 사례별로 동의 여부를 직접 판단하도록 했다. 이는 출연자가 법적인 동의를 할 수 있는 연령인지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3. 실질적인 케어를 제공하라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경험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참여자 본인조차도 실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예상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대비해 연출자가 미리 출연하는 생존자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출연자를 위한 심리학자나 트라우마 전문가 비용을 예산에 포함하는 것이 좋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촬영장에서 처음으로 꺼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생존자들이 본인의 트라우마에 대해 가장 처음 이야기하기에 더 적절한 곳은 정신과 전문의 앞이지, 연출자나 언론인 앞은 아니다. 출연자가 의지할 만한 친구나 가족, 또는 변호사와 함께 오게끔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촬영팀 구성도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 남성들로 가득 찬 방은 생존자를 불편하게 할 수 있고, 생존자가 유색인종일 경우 백인들로 가득한 공간을 불편해 할 수도 있다. 다음 질문을 늘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출연자가 이 이야기를 꺼내기에 적절한 팀 구성인가?”, “내가 이 출연자의 인터뷰어로 적절한 사람인가?”

 4. 투명성이 생명이다 

  연출자들이 마주하는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출연자가 자신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예를 들어 방송의 한 코너에 들어갈 짧은 인터뷰를 하는 것과 대규모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당신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출연자에게 정확히 이해시켜야 한다. 프로젝트가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각 출연자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완성되면 어디에 상영할지, 연출자가 바라는 이 영화의 이상적 상영 기간과 현실적인 예상 상영 기간 등, 최대한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다.

  영화가 공개된 후 출연자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지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한다. 당신도 출연자도 그 영화가 당사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완벽히 예상할 수 없다. 당신은 출연자가 안게 될 리스크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혹시라도 이후 영화가 출연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경우 즉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가까이 지내야 한다. 또 한 가지, 영화 출연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섣불리 약속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목표로 삼는 것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말하자. 앞으로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감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려내고자 한다고 말이다.

 5. 익명성을 철저히 지켜줄 것 

  보복 위험을 감수하고 자기 이야기를 공유하는 생존자에게 있어서 익명성은 생존과 직결된다. 이 점을 절대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된다. 항상 출연자에게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고, 익명을 요구한다면 영화의 모든 부분에서 철저하게 지켜주어야 한다. 눈이나 어떤 특징을 가려달라고 하는 경우 모두 포함된다. 그들의 신원을 감출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라.

 6. 인터뷰는 천천히 진행하자 

  보통의 인터뷰라면 사전에 해당 이야기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지만, 성폭력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을 인터뷰할 때는 주제의 민감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출연자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경험을 너무 상세하게 이야기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준비 과정에서 “이 사람이 자기가 겪은 일의 어떤 지점을 공유하고 싶어 할 지”를 고민해야 한다.

  출연자는 인터뷰 도중이라도 마음이 바뀌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인터뷰를 중단한다는 것은 연출자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고, 당신이 많은 노력을 투여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이야기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 관련 자료 

  • [원문] 6 Tips for Documentary Filmmakers on How to Better Serve Participants with Gender-Based Trauma BY HANSEN BURSIC (OCTOBER 14, 2021)

 

이. 이경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 교육을 듣는 것으로 독립 미디어 영역에 들어섰으나 창작에는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방황하다 현재는 독립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 


#4. [보너스]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미디어에 동물이 등장한다면, 2020년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발간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로 가시면 가이드의 취지와 내용 등을 보실 수 있습니다. 🐴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카라,2020)

 


 

  본 뉴스레터는 미디어운동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기 위해 발행됩니다.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각종 담론과 현상이 범람하는 가운데 과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 정작 중요하게 필요한 미디어의 변화는 무엇인지 관점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 2주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께 찾아갈 예정입니다.

  • [동향] 독립 미디어 분야와 관련한 국내외 소식이나 정보
  • [이슈] 독립 미디어 분야에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의제나 이슈, 자료 브리핑
  • [기획연재] 미디어 활동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기획연재나 열린 간담회 자리 등

이름에 맞게 ‘임팩트’ 있는 뉴스레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구독과 주변 홍보를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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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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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현

    0
    about 2 years 전

    이번호 기사들도 너무 다 좋네요! 짱짱!!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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