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 다큐멘터리 창작자-참여자 관계 연구 : 다큐멘터리 윤리적 책임과 참여자 경험

💌 뉴스레터 90호

🎞️ 인디&임팩트 90호는 미국 ITVS가 2024년 11월 발표한 다큐멘터리 창작자와 참여자 관계에 대한 연구를 소개합니다!

💡 다큐멘터리 창작자 678명과 참여자 195명이 참여해 설문조사와 그룹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된 연구인데요. 다큐멘터리 제작 및 배급의 전 과정에서 윤리적 책임과 참여자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연구입니다. 

🌟 인디&임팩트와 함께 보다 나은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과 대안에 대해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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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창작자-참여자 관계 연구

: 미국 ITVS 다큐 연구로 보는 윤리적 책임과 참여자 경험

지난 2024년 11월,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창작자와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는 다큐멘터리 제작의 윤리적 책임과 그 사회적 영향을 분석한 것으로, 미국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과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의 후원으로 독립텔레비전서비스(Independent Television Service, ITVS)에서 수행되었다.

[참고] 미국 ITVS(Independent Television Service) 소개 

최근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창작자들은 더 많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지만, 동시에 제작 과정에서 윤리적 책임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참여자가 얻을 수 있는 혜택과 그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ITVS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창작자(연출자 및 프로듀서)와 참여자(주인공 및 출연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고, 지난 해 11월 그 연구 결과를 공식 보고서로 발표했다. 

필자는 2024년 12월, 호주 멜버른의 모나시 대학교(Monash University)에서 열린 'Visible Evidence XXX 컨퍼런스'에서 이 연구를 접했다. 연구에서 제시된 결과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창작자와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윤리적·현실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에 이 연구를 소개하며, 한국에서도 다큐멘터리 창작자와 참여자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윤리적 쟁점들을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제작 환경을 모색하는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연구 개요와 방법론

이번 연구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로 여겨지지만, 제작 과정에서 창작자와 참여자 간의 윤리적 문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678명의 다큐멘터리 창작자와 195명의 다큐멘터리 참여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는, 다큐멘터리 창작자의 윤리의식과 제작 관행, 그리고 참여자가 경험하는 현실을 심층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연구는 설문조사와 포커스 그룹 인터뷰의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설문조사는 영화 창작자와 참여자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창작자 연구의 경우, 미국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연출가 혹은 제작자로서 어떤 방식으로든 관객에게 공개된 ‘제작진이 등장인물과 함께 작업해 그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은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경험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수행되었으며, 이들 가운데 참여 의사가 있는 35명을 경력 단계, 나이, 인종, 성별, 배급지역 등으로 구분하여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수행하였다. 

참여자 연구는 만 18세 이상으로, 최근 10년 이내에 다큐멘터리에 촬영되거나 녹음된 경험이 있는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설문에 응답한 참여자들 가운데 참여 의사를 밝힌 31명을 선정하여, 출연자의 캐릭터 유형(개인적 이야기 중심 또는 역사적 관점), 인종, 성별 등을 기준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수행하였다.

연구 결과 :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이 겪는 윤리적 딜레마

연구에 따르면,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은 참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윤리적 딜레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창작자들은 참여자에게 금전적 보상(사례비 지급이나 수익 공유 등)을 제공하거나, 완성본을 사전에 공유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등의 협력적인 제작 방식을 취했다. 반면, 다른 창작자들은 이러한 행위가 다큐멘터리의 객관성과 편집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참여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거나 편집본을 사전 공유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저널리즘적 윤리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관행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참여자들은 금전적 대가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포커스 그룹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출연자 대다수는 출연료 때문이 아니라,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과 파급력을 고려해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금전적 보상보다 완성본의 사전 공개 및 활용, 미공개 영상 접근과 같은 비금전적 보상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즉, 창작자들이 ‘출연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윤리적인가?’를 고민하는 동안, 참여자들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존중을 받는 경험과 영화 완성 후 자신의 이야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창작자의 경력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도 구분되는 경향을 보였다. 경력 초기의 창작자와 아시아계, 아프리카계, 라틴계, 중동·북아프리카계, 원주민 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창작자들은 참여자와의 협업에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참여자를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하고, 금전적 보상뿐만 아니라 심리 상담과 같은 지원까지 제공하는 등 기존 제작 관행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경력 초기의 창작자들 중 74%는 ‘참여자와의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업계 차원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반면, 경력이 오래된 창작자 그룹에서는 그 비율이 58%로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현실적인 제약에서도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응답한 창작자의 46%는 예산이나 시간 부족으로 인해 참여자와 이상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또한, 15%의 창작자는 투자자나 배급사의 기준과 관행 때문에 이러한 실천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창작자들이 단순히 창작 윤리와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업계의 관행과 외부의 압력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현실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 결과 : 명암이 뚜렷한 참여자 경험

다큐멘터리 참여자 경험은 명암이 뚜렷이 나뉘는 양상을 보였다. 우선, 대다수의 참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작업에 대해 보람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89%의 참여자가 ‘시간을 되돌려도 다시 참여하겠다’고 답했으며, 이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경험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고, 편견과 낙인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으며,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공감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모든 참여자가 긍정적인 경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참여자들에게 다큐멘터리 출연은 실망과 후회로 남았다. 약 10%의 참여자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으며, 그 주된 이유로 제작진이 처음 설명한 영화의 방향과 최종 결과물이 달랐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일부 참여자들은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영화의 주제나 톤이 예상과 다르게 변화했음에도, 제작진이 이를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작업을 이어갔다고 주장했다. 결국 완성된 작품은 처음 동의했던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이처럼 왜곡되거나 출연 의도와 다르게 그려졌다고 느낀 참여자들은, 촬영 동의 이후에도 영화의 방향이 크게 바뀌는 경우 재동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제작진이 약속을 어기거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했을 때 참여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예상치 못한 위험과 피해를 경험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설문 응답자의 20%는 촬영 당시 자신과 주변에 미칠 위험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약 8%는 다큐멘터리 공개 후 개인적 또는 직업적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특히, 트라우마나 정신 건강과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룬 작품에서 이러한 피해가 두드러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높은 관심이 부담이 되었거나, 악성 댓글과 신변의 위협을 경험한 경우도 있었다. 한 참여자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이메일로 상담 요청을 받았다고 했으며, 또 다른 참여자는 온라인에서 악성 댓글과 위협적인 반응을 접하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부작용을 경험한 참여자들은 촬영 전에 위험 요소를 충분히 논의하고, 영화 공개 후에도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등 사후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의 소통 부족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많은 참여자들은 출연자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나 출연에 따른 불이익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서류상의 ‘동의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일부 참여자들은 완성된 영화에 대한 2차적 활용은커녕, 심지어 접근조차 제한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응답자의 41%는 완성본을 일반 공개 전에 미리 보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상당수는 개봉 후에도 자신이 등장한 영화를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볼 수 없었다고 답했다.

다큐멘터리 참여의 윤리,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연구보고서는 현재의 다큐멘터리 제작 관행이 분명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감독들이 저널리즘의 윤리 준칙과 예술적 자유 사이에서 자율적인 윤리적 판단을 수행해 왔지만, 보다 명확한 업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연구진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몇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먼저, 참여자의 의사 반영을 확대해야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참여자들이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의견을 낼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자신의 생애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경우, 참여자의 40%가 제작 과정에서 더 큰 발언권을 원했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영화의 방향이 크게 변경될 경우, 감독이 참여자에게 그 변경 사항을 알리고 재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음으로, 사전 설명과 동의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단순히 촬영 동의서에 서명을 받는 것만으로 윤리적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으며, 참여자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진정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서 많은 창작자들은 관행적으로 법적 동의서만 받아내면 충분하다고 여겨왔다는 점을 자인했다. 반면, 참여자들은 촬영 전에 충분한 대화와 설명이 있었다면 불안이 줄었을 것이라 응답했다. 이에 따라, 창작자를 대상으로 한 윤리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거나, 제작 현장에 전문적인 윤리 자문을 도입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또한, 참여자에게 권리를 설명하고 권익을 대변할 독립적인 전문가를 두는 것 또한 요구되었다. 

마지막으로, 참여자에 대한 지원과 사후 케어가 필요하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참여자들은 제작 단계뿐만 아니라, 개봉 이후까지도 정서적·법적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응답한 창작자의 63%가 참여자들에게 심리 상담이나 법률 자문 등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개인적 이야기를 공개한 참여자의 약 1/3이 이러한 지원이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답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을 위한 정신 건강 지원이 다큐멘터리 제작 예산 항목에 포함되는 것이 새로운 업계 관행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제언이 있었다.

이번 ITVS 연구는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오랫동안 당연시되거나 묵인되어 온 윤리적 문제를 공식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창작 과정에서의 윤리와 분리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은 단순히 작품을 완성하는 것을 넘어, 카메라 뒤에서의 윤리적 책임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 현장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진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일수록, 제작 과정 자체가 투명성과 윤리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창작자와 참여자가 상호 신뢰 속에서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윤리적 기준을 정립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는 단순히 더 나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한 기반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정신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

* 연구 관련 소개는 아래 ITVS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 게시글에 함께 게시된 연구보고서에 상세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이 글은 연구보고서를 인용하고, Visible Evidence XXX의 다큐멘터리 윤리 세션의 발표를 참고한 것임을 밝힌다.

[보고서 원문] ITVS 다큐멘터리 창작자 참여자 관계 연구

[부록] 세부 방법론 및 심층 연구 결과

📸글쓴이. 이창민 

영화를 공부하고 만들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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