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괜찮은 도시에 산다는 것
비엔나는 서울처럼 한 나라의 수도이지만 훨씬 느리게 흘러간다. 두 도시 모두 시내 도로의 규정 속도는 50km/h이하지만, 카메라가 없는데 서울에서 그 속도를 지키다간 “도로 전세 냈냐?”며 어디선가 욕 한 바가지나 짜증스러운 경적을 들을 것이다. 그래서 규정 속도를 준수하며 조금 느리게 달리는 비엔나의 도로 상황이, 매일 봐도 신기하다.
비엔나의 식당에서도 나는 애가 탄다. 얼른 계산하고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고 싶어도 직원을 부르거나 재촉할 수 없다. 기다림 끝에 결제를 마치고 분주히 옷을 입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게, 친구는 항상 “Don`t need to be rush. Take your time.”(서두를 필요 없어. 충분히 네 시간을 가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비엔나는 내 몸에 자연스럽게 베인 긴장감, 전투태세를 풀어도 되는 곳이다.
느린 도시의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도 많다. 다들 ‘스몰토크’ 자격증 하나쯤 보유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 정도로 남에게 칭찬을 건네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먼저 다가간다. 서양은 개인주의이고, 우리에겐 ‘정’이 있다고 배웠는데. 그 서양인 비엔나는 내 갈 길 바빠서 철저히 무시했던 마트의 캐셔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과 “안녕”, 헤어질 때도 “안녕. 다음에 봐. 좋은 하루 보내.”같은 불필요한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면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여기는 뭘 믿고 저렇게 인사를 하는 거지. 비엔나 사람들을 따라 한 마디씩 건넬수록 나도 괜히 한 템포 느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 여유로움은 어디에서 피어나는 것일까. 전 유럽을 제패했던 부유하고 강력한 조상 ‘합스부르크 가문’을 가진 덕분일까. 넓은 땅덩어리? 맑은 공기와 도심 곳곳의 녹색 공원에서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 없이 뛰어 놀았기 때문에?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후발주자로 살아남기 위해 ‘근면성실’을 미덕으로 달려왔던 내 나라의 역사가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절박함과 긴장이 안쓰러워지는 순간이다. 이제는 우리도 부유한데 여전히 한국의 일상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연령,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가 너무 힘들다고 소리친다. 달리지 않거나 달릴 수 없으면 뒤처지고, 뒤처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당연하다.
우울증 발병률 1위, 자살률 1위, 출생률 꼴찌. 평생을 긴장감 속에 살아야 하는 사회가 받은 너무 당연한 성적표라고 생각한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출발하는 버스에 어떻게 아기를 안고 유아차와 함께 탈 수 있겠는가. 휠체어에 앉아 만원 지하철에 같이 타겠다는 생각은 건방지다. 우리의 속도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은 가치 없고 관심 밖이다. 그 속도에 질려버려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꿈은 점점 내려놓았던 것 같다. 조금 느려도 되는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다면 완전히 달랐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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