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PM은 매일 우선순위와 싸웁니다. "이번 분기엔 꼭 이 기능 넣어주세요!" (영업팀), "이거 하나만 빨리 개발해주면 안 될까요? (대표님)", "이 버그는 언제 잡히나요?" (CS팀). 이 모든 요청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Yes'와 'No'를 결정해야 할까요?
저는 이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 결정이 우리 제품을 레고처럼 유연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통나무집처럼 바꾸기 어렵게 만드는가?"
이 간단한 질문이 어떻게 복잡한 B2B SaaS 제품의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만드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1. 제1원칙: 왜 '레고' 구조에 집착하는가? 기술 격차를 만드는 핵심에 집중한다.
모든 우선순위의 시작은 명확한 철학에서 나옵니다. 제가 다룬 서비스의 철학은 '유연성', 즉 '레고'와 같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결제 SaaS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장에는 유연한 구조의 솔루션이 부족했고, 기업들이 과금 모델을 도입하려면 평균 수천만원의 비용과 6개월 이상의 개발 기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고'와 같은 아키텍처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하나의 상품에 다수의 가격 플랜과 독립적인 조건을 부여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의미합니다. 반면, 경쟁사들은 '하나의 상품, 하나의 가격'만 가능한 '통나무집' 구조였죠. 이 '레고' 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3~4배의 개발 리소스가 더 들어갔지만, 우리는 이것이 장기적으로 경쟁사와 16개월 이상의 기술 격차를 만들 것이라 확신하고 최우선으로 투자했습니다.
2. 원칙과 현실 사이: '전략 고객'의 요구는 어떻게 다루는가?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원칙을 시험합니다. 원칙을 어기고 전략 고객의 요청을 한창 받아들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고객사 하나하나가 귀중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러다보니 어느 새 고객의 요청사항 하나에 로드맵이 좌지우지되며 나아갈 방향도 모른채 끌려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비스가 손발, 눈귀가 여러 개인 이상한 형태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객의 요청을 받을 때마다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고객들도 쓸 수 있는 재사용 가능한 레고 블록인가, 아니면 한 고객만을 위한 특별한 통나무인가?"
사례1. 좋은 통나무를 레고 블록으로 만든 경험
까다로운 일할 계산과 결제일 지정 등 복잡한 기능을 요청한 기업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특정 고객만을 위한 '통나무'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능이 다른 SaaS 에도 반드시 필요한 '레고 블록'이 될 것이라 판단했고, 우선순위를 높여 개발을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고객사는 크게 만족했습니다. 추천사 얘기를 먼저 꺼내주실 정도로요. 더불어 다른 고객에게도 제공할 수 있는 강력한 기능을 얻었습니다.
사례2. 거대한 통나무를 거절해야 했던 순간
결제를 위해서는 가격 정책 페이지, 장바구니, 스토어 등 제반적으로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것들에 대해 요청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한 고객사에서 요구한 것은 '커스텀 스토어'를 개발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해당 고객사의 거래액이라는 숫자만 바라봤을 때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재사용이 불가능한, 한 고객만을 위한 '거대한 통나무집'을 짓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이 요청이 우리의 핵심 로드맵과 방향이 다르다고 판단했고, 턴키 개발은 어렵다는 신중한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비록 딜을 놓친 것은 아쉬웠지만, 우리의 '레고' 철학을 지킨 것은 장기적으로 제품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었습니다.
즉, 전략 고객의 요구는 '다른 고객에게도 확장 가능한가?', '우리 제품의 핵심 방향과 맞는가?'라는 두 가지 잣대로 판단했습니다.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요구'를 선별하는 것
그것이 PM의 중요한 역할 아닐까요?
3. PM의 숨겨진 우선순위: '내부 효율화'에 투자하기
때로는 고객이 아닌, 제품을 만드는 '우리'를 위한 개발도 최우선순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저는 직접 'SQL 비서'나 '실시간 KPI 대시보드'를 만들었습니다. 데이터 확인에 드는 시간을 줄여, 팀이 더 빠른 의사결정을 하고 더 좋은 '레고 블록'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PM과 개발팀의 시간은 가장 귀한 자산입니다. 내부 효율화는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제품 개발 속도 전체를 높이는 최고의 투자입니다.
4. [마무리] 좋은 우선순위는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것
B2B SaaS 제품을 만드는 것은 끝없는 길찾기와 같습니다. 저에게 '레고'라는 철학은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보다 우리 제품의 핵심 가치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때로는 과감히 'No'라고 말하는 용기입니다.
당신의 제품을 단단하게 만드는 '레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당신이 거절해야 할 '통나무'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이 당신의 다음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 PM의 책상 위]
- "사람들은 대부분 집중이란 'Yes'라고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집중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백 개의 다른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 'No'라고 말하는 것이다." - 스티브 잡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