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
처음 무언가를 좋아했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하도 오래 좋아해서 누군가 "왜 좋아해?"라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요. 저는 "그냥"도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이미 내 일부가 되었다는 이야기일테니까요. 제게도 그냥 좋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가도 "아, 이래서 좋아했지" 하고 오래전 첫 마음을 깨워주는 장소나 순간을 마주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요. 이 이야기는 [인터뷰&레터]의 9월에 함께 하는 공간, 미뗌바우하우스로 이어집니다.
베를린 친구집에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밤에는 친구랑 마시고 낮에는 버스를 타거나 혼자 걸어서 박물관으로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유명 카페나 편집숍을 잘 몰라서였던 이유도 있지만, 저는 원래가 미술관을 좋아합니다. 크고 넓고 깨끗한데 누구나 환대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깊이 사랑합니다.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도 그때 갔습니다. 바우하우스. 많이 듣던 단어여도 잘은 몰랐습니다. 갈색 의자가 전시돼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체어라고 적혀있더군요. 그 이후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바르셀로나 체어를 발견하면 매우 반갑습니다. (<올드보이>와 <나르코스>에도 나오더군요?) 박물관 마당 카페에서 토마토 생강 수프를 먹기도 했습니다. 단순한데 처음 먹는 조합. 그 맛이 여전히 기억납니다. 그때 이런 일기를 썼었네요.
지금 보니 다 동의되는 감상은 아닙니다. 거의 10년 전에 쓴 글이기도 하니, 경험도 지식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시절입니다. 저땐 1920년대 바우하우스의 남자들만큼이나 집안일을 몰랐을 것도 같습니다. 좀 쑥스러울 정도로 감동한 건 여행의 효과겠지요. 하지만 무언가를 좋아하게 됐던 순간을 남겨둔 건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렇게 바우하우스의 작업만 모인 공간에 머문 적이 처음이라 더욱 새롭게 보였던 것도 같습니다. 이후 남은 베를린 여행에서 도시 곳곳에 스민 바우하우스의 미감을 확인하며 기뻐하기도 했고요.

9월 모임의 공간, 미뗌바우하우스
저는 이곳을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의 현재에 관한 서울의 표지판이라 설명하고 싶습니다. 오래 이어져 내려온 어떤 의지의 지금 형태를 이곳 서울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요. 쇼룸을 방문한다면 크고 빛나는 것보다 작고 묵직한 것들을 먼저 살펴보시길 추천합니다. 문의 손잡이, 벽에 붙은 스위치와 콘센트 같은 것들 말입니다. ‘바우하우스를 만나다’는 뜻을 가진 미뗌바우하우스는 바우하우스 오리지널 램프를 생산하는 테크노루멘, 바우하우스 최초의 여성 마스터이자 전설적인 텍스타일 디자이너 군타 슈퇼츨 디자인 러그를 제작하는 크리스토퍼 파 등을 정식 수입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발터 그로피우스를 위시한 바우하우스의 마스터들이 직접 디자인한 도어핸들, 스위치 제작사 테크노라인의 국내 독점 수입사이기도 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디자인한 도어핸들도 쇼룸에 있습니다.) 문 손잡이, 스위치, 콘센트처럼 작은 요소가 공간에 부여하는 분명한 분위기는 아름다운 러그, 부드러운 램프, 견고한 의자와 테이블을 아우르는 바탕이 되어줍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10년전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의 갈색 바르셀로나 체어에 그랬듯이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미뗌바우하우스 쇼룸은 평창동 미메시스 아트하우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설계자인 '김준성 핸드플러스 건축' 김준성 건축가는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라 불리는 알바루 시자의 제자이자 협업자로서 알바루 시자의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건축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촌 아트레온 극장도 김준성 건축가의 작업이라고 하는군요. 9월 모임에 참여하신다면 조금 미리 도착하셔서 건축에 대한 생각과 의지와 마음이 모여든 이곳을 여유롭게 즐겨보셔도 좋겠습니다. 물론 참여 안하셔도 즐길 수 있습니다. 열린 공간입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이라는 ‘기억의 집’이 지어지는 이번 기회에 방문해보시는 것도 좋겠죠?
“언젠가 이 기억들도 사라질 수 있으니
어서어서 책이라는 형태의
머물 집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서문에서
9월 모임 신청하기
INFO!
9월의 인터뷰&레터 모임
☁️질문 구름🗨️
물음표가 뭉게뭉게해서 질문 구름!
9월 모임은 영화와 건축, 예술가와 창작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합니다. 첫 번째 에세이집『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을 펴낸 정재은 감독님을 미뗌바우하우스에서 만납니다. 아직 신청 가능하니, 예술과 지적 글쓰기에 관심 있으시다면 이 드물고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인터뷰&레터 모임]은 작가와 독자가 서로 대화 가능한 거리를 지향하며,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됩니다. 질문은 진행자가 대신 읽어드리지만 추가 질문은 현장에서 자유롭게 가능합니다. 질문하기가 낯설게 느껴지신다면 아래 질문 구름에서 골라보시는 것도 좋아요. 질문 구름을 통해 모임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예측해보실 수도 있겠고요.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질문의 방향을 따라가다보면 마음 깊이 원했던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을 믿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질문 구름 1.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에 관하여
- 책의 시작
- 오래된 노트를 꺼내보는 일
- 논픽션 영화에 관한 논픽션 글쓰기: 작업의 방식과 목표
- 시나리오 쓰기, 에세이 쓰기
🐈질문 구름 2. 영화
- 영화가 되는 기록, 영화가 되지 못한 사건들
- 서사 구축, 아카이브 편집, 인터뷰, 갈등의 조정자… 영화감독의 일
-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창작의 순간들
- 비평과 애정 사이: 작가의 시선으로 인물을 그리는 일에 관하여
🐈질문 구름 3. 건축
- “나는 정기용의 건축에 끌리지 않았지만 끌리기로 했다.”
- 영화감독의 눈으로 바라본 건축: 건축가, 건축가의 일, 공공건축과 아파트 등
- 건축 다큐멘터리 시리즈 <말하는 건축가> <말하는 건축 시티:홀> <아파트 생태계> <고양이들의 아파트>에 관하여
🐈질문 구름 4. 삶이라는 예술, 예술가의 일
- 성실한 예술가의 초상화 - 이끌리기, 관찰하기, 공부하기
- <고양이를 부탁해> <태풍태양> <나비잠> 등 극영화의 이야기들
- 독서와 영화, 전시 등 요즘 관심사들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서성이는 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도록."
영화와 건축, 그리고 삶과 예술에 관한
영화감독 정재은의 사유와 공부의 기록
예술 에세이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지금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군산북페어를 방문한 정재은 감독님께 사진을 부탁했습니다. 클릭하시면 [9월의 초상화 - 정재은 감독의 영화음악] 플레이리스트로 이동합니다.](https://cdn.maily.so/du/interview.and.letter/202509/175738373340757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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