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月 25日] ㅊ과 ㅇㅎ에 관한 ㅇㅇㅊ 일지

2025.09.25 | 조회 389 |
4
|
인터뷰 앤드 레터의 프로필 이미지

인터뷰 앤드 레터

책과 영화를 아끼는 당신께 띄우는 텍스트 기획자 임유청의 ‘읽고 쓰고 공유하기’ 활동 일지. 매월 1일, 이달의 작가와 책을 소개하며 시작됩니다.

구독자 께,
9월의 마지막 레터를 띄웁니다. 

 

🚙

 

군산북페어에서 만난 표기식 사진가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는 정재은 감독님의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발간을 축하하려 서울에서 북페어가 열리는 군산까지 운전해 온 참이었습니다. 사진가와 영화감독. 이 두 사람은 아래에서도 소개할 <고양이들의 아파트>의 사진집으로 인연을 맺은 바 있습니다. 뜻밖에 나타난 그는 반가워하는 작가와 편집자, 발행인들을 앞에 두고 카메라를 꺼냅니다. 나중에 그가 건네준 사진에는 신간의 흥분, 북페어의 즐거운 부산스러움, 인파에 시달리는 기쁨과 피로가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이따 저녁에 다 같이(작가, 관계자, 반가운 손님들까지) 식사하기로 했어요." 그가 곤란한 표정을 지은 건 이때입니다. 사진가가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구름을 따라가야 해서." ? 이해 못 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구름은 하늘 높이 떠 있습니다. 당신이 지상에 있다면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찍고 오시면 되잖아요. 군산까지 오셔서 밥도 안 먹고 간다고?" "어디까지 가게 될지 몰라서. 갈 수 있음 갈게요." 그가 따라나선 구름이 어디까지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와도 사진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말입니다.

그날의 구름들이 여기 당도했습니다. 장소는 군산, 때는 8월 30일, 토요일의 늦은 오후입니다. 지난여름의 구름을 들여다보다가, 표기식 작가가 찍는 것들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이번엔 구름을 찍었고, 언젠가는 나무를 한 그루 찍었습니다. 들꽃을 찍고 산을 찍고 숲이 만든 웅덩이가 자라는 모습을 찍었고요, 강물에 비친 햇빛, 그러니까 물비늘, 다른 말로 윤슬도 몇 년째 찍고 있습니다. 그 사진들은 대상과 내가 마주 보고 있는 느낌을 줍니다. 들꽃이라 내려다보지 않고 구름이라 우러러보지 않습니다. 그의 사진엔 위계가 없습니다. 사람과 고양이와 새와 바다의 앞에서, 그와 비슷한 위치에 앉거나 서서 부드러운 눈 맞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때때로 그의 사진은 그 아름다움에 비해 조금은 무정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아마도 그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보통은 사랑이 동등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이토록 오랜 시간 강가를 찾는 마음을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서술할 수 있겠습니까?

내게 익숙한 사랑의 고도를 조금 낮추거나 약간 높게 조정합니다. 그리고 새로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 그냥 거기 있어 주길 바라는 사랑에 관하여.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에 관하여, 떠나보내는 법을 모르는 사진가에 관하여. 골똘히, 이젠 흘러가고 없는 구름과 눈을 맞추며.

 

 

임유청의 유청문장분리기

 

 

 9

 

 

표기식의 계절 표기법

2025. 8. 30. (토) 군산

 

(c) pyokisik
(c) pyokisik
(c) pyokisik
(c) pyokisik
(c) pyokisik
(c) pyokisik

 

 

*

 

매달 마지막 레터, [ㅊ과 ㅇㅎ에 관한 ㅇㅇㅊ 일지]에서는 이달의 책과 다양하게 연결된 추천 도서를 소개합니다. 두 개의 미니 코너가 있습니다. [표기식의 계절 표기법]. 사진가 표기식의 카메라가 채집한 이달의 계절을 연재합니다. 그는 어디로든 떠나는 사진가입니다. 따로 사진에 코멘트를 붙이지 않아서, 사진에 붙은 꼬리말은 ㅇㅇㅊ의 것입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될 수 있으면 PC의 큰 화면으로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가능하니까요. [임유청의 유청문장분리기]는 ㅇㅇㅊ 에세이의 일부를 잘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종이와 화면에 놓여 있던 글을 자르고 분해해서 레터에 씁니다. 때때로 새로 씁니다. 이번 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번 레터를 읽으시고 구독자 님께 떠오른 책과 영화가 있기를. 추천은 언제나 궁금합니다. 🍀

 

 

*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과                 
        이어    

                                                                   지는

     책

 


 

『고양이를 부탁해: 20주년 아카이브』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20주년을 기념하며 발간한 책입니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시나리오를 포함하여 포토 코멘터리, 에세이, 영화 자료와 소품, 굿즈, 필름카메라로 찍은 현장 스틸 등 영화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정재은 감독과 배두나 배우 등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글과 자료를 모았고, 한국 배경 동시대 여성의 이야기가 드물었던 시절에 이 영화를 만난 여성 창작자들-칼럼니스트 복길, 영화감독 강유가람, 만화가 김정연-의 에세이/만화도 만날 수 있습니다. IMF 경제 위기 속 젊은 여성들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에  주목한 여성학자 권김현영 에세이, 인천이라는 영화의 공간을 이야기하는 건축가 구영민 에세이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편집자로서 당시 책 소개로 ‘종합선물상자’ 같다고 썼는데요, 더이상 정확한 말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이만 줄입니다. 6699프레스가 디자인했습니다. 단단한 폰트도, 벽돌을 쌓듯 견고한 내지 디자인도 필름 사진과 우리 추억의 그레인에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

#📚
글: 정재은, 배두나, 조태상, 복길, 강유가람, 권김현영, 구영민, 김정연, 백은하, 이다혜
펴낸곳: 플레인아카이브
디자인: 6699프레스
초판 1쇄 발행일: 2022년 4월 15일

 


 

『고양이들의 아파트: 표기식 사진집』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정재은 감독의 건축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 가장 최근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이라 불렸던 둔촌주공아파트의 철거를 앞두고 단지 내 동네 고양이들을 이주시키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사람보다는 나무, 고양이, 새, 오래된 아파트가 잔뜩 나옵니다. 원래 표기식 사진가는 <고양이들의 아파트> 포스터 사진 촬영을 위해 일회성으로 아파트 단지를 찾았던 것인데요. 그 이후로도 포스터와 상관없이 종종 텅 빈 아파트 단지를 찾아 디지털로, 또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그가 찍은 둔촌주공아파트 단지의 마지막 몇 개의 계절이 『고양이들의 아파트: 표기식 사진집』으로 묶였습니다. 책 속엔 고양이, 새, 풀과 나무, 빈 아파트, 약간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자 비로소 존재가 또렷해진 비인간들의 순간이 표기식 작가의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에 찾아든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그곳에 있던 가로등처럼, 돌맹이처럼, 무심히 세워져있던 자전거처럼 자신을 지나가는 생명들과 눈을 마주칩니다. 사진집의 처음과 끝을 정재은 감독의 에세이가 열고 닫습니다. 이 책을 만들던 때 감독님이 다큐멘터리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감독님의 에세이가 너무 좋아서 나중에 꼭 감독님의 글로 책을 만들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표기식 사진집』은 이전에 이미 표기식 작가의 사진집 『PYO KI SIK』을 직접 출간하기도 한 스튜디오 고민이 디자인했습니다. 세로가 긴 판형은 아파트를 닮았고, 책을 펼치면 닫힌 창문을 활짝 연 듯 시원하답니다! 

*

#📚
사진: 표기식
글: 정재은
펴낸곳: 플레인아카이브
디자인: 스튜디오 고민
초판 1쇄 발행일: 2022년 10월 27일

 


 

*

 

[인터뷰&레터] 9월의 책,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책이 많이 팔리는 것도 좋지만, 구매하신 분들이 재밌게 읽어주시는 것도 참 중요하단 생각을 하는데요. 기쁘게도 '펼치자마자 단번에 읽었다'는 평이 많습니다. 읽고 나면 정재은 감독님의 다른 글도 자꾸자꾸 읽고 싶어지실 거 같아, 이번 레터는 제가 무척 좋아해서 여전히 종종 읽는 감독님의 다른 글을 소개합니다. 역시 다큐멘터리에 관한 글이에요. <말하는 건축 시티:홀>, <아파트 생태계> 그리고 <말하는 건축가>에 관한 글까지 세 편입니다.  <고양이들의 아파트>가 개봉했을 당시 진행한 차한비 기자(사랑하는 『모든 소란을 무지개라고 바꿔 적는다』의 작가님!)의  정재은 감독 인터뷰도 함께 소개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고, 우리는 10월에 만나요! 

 

 

🎬
정재은 감독 칼럼 - 나의 건축 3부작

 

🐈
정재은 감독 인터뷰 "여기서 살고 싶어서"
(글: 차한비 기자)

 

그럼, 편지 주세요! 
그럼, 편지 주세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인터뷰 앤드 레터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4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찬비의 프로필 이미지

    찬비

    0
    3 months 전

    이번 레터 너무 아름다와요 '표기식'에게 '임유청'이라는 해설가 번역가 정원사 있는 것이 부러울 정도로~~~ 덕분에 멋진 하루가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 >

    ㄴ 답글 (1)
  • FBJYS의 프로필 이미지

    FBJYS

    0
    3 months 전

    돌아오지 않은 사진가의 구름이 매우 아름답군요!

    ㄴ 답글 (1)
© 2025 인터뷰 앤드 레터

책과 영화를 아끼는 당신께 띄우는 텍스트 기획자 임유청의 ‘읽고 쓰고 공유하기’ 활동 일지. 매월 1일, 이달의 작가와 책을 소개하며 시작됩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