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레터입니다. 이번 레터에는 인터뷰&레터 최초의 모임 후기를 실어 보냅니다. (5월 글쓰기 연습 마감도 오늘 밤까지!🙋♀️📬)
좋은 일이 드물어서 그럴까요,
아니면 작은 기쁨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알게 돼서일까요? 요즘은 뭐 하나 좋았다, 싶으면 그 여운이 퍽 오래갑니다. 며칠 전 친구와의 잡담, 새로 발견한 작은 식당, 금세 읽어버린 책, 러닝 중에 마주친 계절의 흐름 같은 것들이 일상 속 무심한 틈새에서 부드러운 안개처럼 피어났다 사라집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바라보던 저는
(슬프게도 늘 저 자신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사람…) 이때를 놓치지 않고 생각하는 자신을 놀리기 시작합니다. 너. 또 멍하니 있구나? 할 일이 기억나지 않는 거니? 시간이 남아도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그렇게 채근하고 놀리는 쪽의 저 역시 지난 시간의 잔향을 함께 만끽하고 있다는 걸 알지요. (너랑 너는 한 사람이란다? 날로 먹는 평가쟁이 같으니.) 물론 별로 간직하고 싶지 않은 감정적 잔여물들도 언제나처럼 영향력을 떨치고 있습니다만, 이 여운 곱씹는 시간을 마사지건(얼마 전 새로 들였습니다)(좋음)처럼 활용하는 법을 발견한 것도 같습니다. 툭 하면 퉁퉁 부어오르고 마는, 불안과 걱정으로 뻐근한 마음속 부위를 뭉친 근육 풀 듯 팡팡 두들겨(패) 주는 거죠. 지금까진 꽤 효과 있는 듯합니다?
요즘 내 머릿속이 이런 상태구나,
깨달은 건 사실 이 레터를 쓰면서인데요. 지난 5월 17일 토요일 망원동 바 사뭇에서 있었던 인터뷰&레터 모임-파일럿 에피소드 후기를 어떤 방식으로 쓰는 게 좋을까 책상 앞에 앉아 고민하는 중에 떠오른 생각입니다. 참여자들이 제출한 질문, 고심해서 준비해 간 답변과 그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들을 요약해서 실을까도 고민했었습니다. 미리 허락을 구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날 모임에서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기 때문에 그런 형식이 그리 꼭 들어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몇 번의 구상과 시도와 실패를 하는 동안 지난 모임이 제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보다 또렷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래 지속될 여운입니다.
지금 보내드리는 글은 기획자로서, 또 진행자의 입장에서 받은 그날 모임의 여운을 글로 그려 보려는 시도입니다. 욕심에 비해 그림을 참 못 그려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지만, 완성된 그림의 성취도를 떠나 그저 기꺼운 마음으로 드로잉에 임할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지 상상해 봅니다.
5월, 후기.
모임 2부, 쓰기 워크숍 때 배경으로 틀었던 음악입니다. 이번 레터도 이 곡과 함께 읽어주셔도 좋겠습니다.
후기. (그런데 사진은 없는)
글쓰기도 늘 하는 일, 책 만들기도 늘 하는 일. 늘 하는 일을 묶고 엮을 뿐인데 처음 해보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온다. 금요일 저녁엔 손으로 책을 만들어 봤다. 좋은 종이를 사 와서 그림과 글을 프린트하고 반듯하게 접었다. 종이가 접힌 자리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실과 바늘로 제본해서 작은 책을 만들었다. 늘 하던 책 만들기인데 내 손으로 직접 해 보는 건 처음이다. 고작 10p짜리 노트 비슷한 인쇄물인데다 매무새가 똑 떨어지지도 않지만, 어쨌든 책이라고 부르면 얼추 책이라 쳐줄 만한 걸 만들어 냈다. 토요일엔 늘 손님으로 가던 바에 손님이 아닌 역할이 되어 손님 맞을 준비를 하러 갔다. 열쇠로 가게 문을 열고 블라인드를 걷어 햇빛을 들여온다. 환기도 한다. 바는 몹시 깨끗하다. 분명 어제 새벽까지 영업했을 터인데 바닥에 티끌 하나가 없다. 술꾼들도 집으로 돌아간 새벽에 바닥을 쓸고 유리잔을 닦고 행주도 빨아 널고서야 불 끄고 퇴근하는 바텐더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의 깔끔한 성격을 새삼 상기한다. 10년째 운영 중인 가게가 이처럼 한결같은 깨끗함을 유지하기란 가능한 일인가. 나라면 열 시간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약속 시간이 닥쳐오고 있다. 손님들이 앉을 자리에 어제 만든 책과 작은 연필을 가지런히 올려둔다. 유리문에 ‘모임 중’이라 쓴 카드를 붙인다. 비 내리기 직전의 날씨. 프렌치토스트로 인기 있는 옆 가게 키오스크는 오늘도 만석이고 토요일답게 떠들썩하고. 이곳 한낮의 위스키 바는 고요하고.
손님들이 도착한다. 손님들. 바텐더 자리에 서 있는 입장에서 보니 이들을 ‘손님’이라 지칭하는 게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런 생각도 있다. 내겐 이 공간에서의 손님이란 호칭이 거래 관계만을 내포하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다고. 평범한 날의 손님인 내게 바 사뭇이란 공간과 맺은 관계가 우정의 스펙트럼에 포함되므로 그렇다. 그러니 여러분도 나와 같은 방식의 손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우정 어린 톤으로, 입밖으로 내진 않으면서. 우리에겐 각자의 이름이 있었고 실제로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었다.
자기 이름을 지니고 사뭇의 손님으로 도착한 우리. 간단한 인사와 함께 대화가 시작된다. 나는 그들이 오늘 나누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단 생각, 그런데 한편으론 전혀 모르겠단 사실을 상기하며 그들을 환영한다. 동시에 한 팔을 백팩 속에서 휘적거리며 파일 홀더를 찾고 있기도 하다. 그들이 제출한 질문엔 분명 정답이 있을 것이고 그 정답을 맞혀서 상대를 감동하게 하고 싶다는 헛된 열망에 시달리느라 몇 번씩 쓰고 지우며 작성 후 인쇄까지 한 답안지… 아니 대본이 구겨지지 않게 끼워둔 파일 홀더가 없다. 오는 길 중간에 홀더가 사라진 게 이치에 맞을까, 내가 집에다 놓고 온 게 이치에 맞을까? 아무래도 후자인 관계로 나는 별수 없이 구글 드라이브로 대본을 연다. 스마트폰을 흘긋거리며 말하는 게 좀 모양 빠진다 생각하는 편이긴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한번 시작된 대화는 자기 힘으로 흐른다. 레터를 읽는 다른 독자들을 위해 이날 이야기를 추려볼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 먹는다. 대신 이런 말들로 요약해 보기로 한다. 영화 책 만드는 일, 독립 출판 만드는 일, 스스로 이름을 지은 이야기, 우정에 관한 이야기, 하고 싶은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혹은 이런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지난 시간이 데려와 준 현재를 해석해 보았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털어놓았습니다. 마음이 닿고자 하는 지대를 탐색해 보았습니다. 구체적인 고민을 추상적인 질문에 숨겨 보냈습니다. 이런 것들을 들었습니다. 격려를 나누었습니다. 후일을 기약했습니다.
너그러운 손님들은 내내 웃어준다. 이것은 행운이다. 또 다른 행운이 있었다면 대화는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지만은 않는다는 오래된 진리다. 진리에 기대어 더 깊이 대화하게 된다. 그리고 질문과 대답의 형식을 좀 더 고민하게 된다. 좀 더 꽉 짠 틀을 마련할 것인가, 좀 더 헐렁하게 빈틈을 마련해둘 것인가. 전자쪽으로 생각해 봐도 괜찮겠다. 형식을 지키느라 발생하는 무언가와 아무리 지키려 해도 새어나가는 무언가를 함께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생각은 마지막 세션으로 각자 짧은 글을 써보는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 생각이다. 사실 나도 쓰려고 했고 실제로 시도도 했는데, 바라보지 않는 척을 하느라 막상 글을 쓸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나만 빼고 다 완성. 아마 다음에도 진행자는 글을 완성할 수 없겠지.
마지막 인사와 응원을 나눌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간단한 정리 마친 후 쭉 고생한 동행과 함께 윤예지 작가의 개인전 <개 굴>을 관람하러 홍대로 갔다. 천만다행 전시를 볼 수 있었다. 그의 동판화를 꼭 실물로 보고 싶었다. 곧장 연희동으로 넘어갔다. 유어마인드에 들러 어째서인지 미루고 있던『서울사람처럼』재입고를 완료했다. 서점에서 하호하호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이로 작가가 글을 붙인『책이 되는 책』발간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책을 펼쳐 보는데 첫 장부터 마음이 찡해지는 바람에 황급히 구매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오향만두였다. 군만두에 맥주를 먹으며 왜 이렇게 무리한 동선을 짰나 동행과 함께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자문자답했다. 왜긴 왜야. 나온 김에 다하려 드니 그렇지. 다시는 안 나올 사람 마냥. 문득 오늘 오신 분들과 다 함께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다 싶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후회는 아니고, 아쉬움도 아니고, 그냥 그 생각을 떠올리고 싶어서 떠올리는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을 내내 하고 있다.
(레터북 커버 사진: 표기식)
인터뷰&레터 모임에 오시면 레터북과 몽당연필 한 자루를 드립니다. 레터북은 1부 대화의 흐름을 구성할 사전 질문을 키워드 형식으로 소개하는 페이지와 2부 워크숍을 위한 빈 페이지가 있습니다. 5월 모임에선 독립출판/영화 책 만들기에 관한 질문이 많았기에 그와 관련된 모티브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요, 그에 따라 이번 모임 2부에선 빈 페이지에 “미래의 독자들에게 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레터를 보시는 여러분도 언젠가 만들고 싶은 내 책을 미래의 독자에게 소개한다면 어떤 내용이 될지 상상해보시길, 가능하면 써보시길 권합니다.
6월 예고.
(원래 매달 마지막 레터엔 리뷰 클래스가 들어가는데요, 머지않아곧하지만언젠가 오픈하겠습니다.) 6월 인터뷰&레터는 6월 1일 발송될 첫 번째 레터와 함께 시작됩니다. 6월 한 달을 함께 할 작가와 책을 소개할 예정이에요. 미리 힌트를 드리면 영화/영화인을 전문으로 인터뷰 하는 영화 저널리스트랍니다. 기대해주세요.
5월의 글쓰기: 나를 (소개 말고) 설명하기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개인 SNS에 한 단락 이상의 글을 써서 올린 후 아래 구글폼으로 링크를 보내주세요. 6월 1일 발송될 [프리뷰 매거진]에 링크 형식으로 실어드립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경우 @interview.and.letter 를 태그하시면 따로 구글폼을 작성하지 않으셔도 제가 발견할 수 있으니, 인스타 유저들은 그 방법을 이용하셔도 좋겠습니다.
!인터뷰&레터 글쓰기 연습!
1. 5월의 모티브: 나를 (소개 말고) 설명하기
2. 분량: 한 단락 이상
3. 마감일: 5월 22일 (목) PM11:59 까지
4. 제출은 위 링크에서, 혹은 인스타그램 태그:
@interview.and.letter
#인터뷰앤드레터 #글쓰기연습
🍀5월 레터 발송 일정 안내🕊️
'인터뷰&레터' 레터 서비스는 매월 1일, 이달의 작가와 책을 소개하며 시작됩니다. 5월에는 총 3회 발송됩니다. 낮 12시 30분에 메일함을 확인해주세요. 🦕
📬첫 번째 레터 [프리뷰 매거진] - 5/1 (목) ✔️
📬두 번째 레터 [공간 구경 + 질문 구름] - 5/9 (금) ✔️
**5월 오프라인 인터뷰 모임(신청자 대상) - 5/17 (토) PM3
📬세 번째 레터 [후기 + 리뷰 클래스] - 5/22 (목) ✔️
ㅠㅠㅠ 오늘 레터를 받고 뭉클했어요. 바 사뭇에서 인터뷰 모임에 참여한 1인인데요...(ㅇㅇ입니당ㅎㅎ)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감사하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어려웠는데
유청님의 레터에 모두 담겨있었네요. 이 댓글 창에 다 쓰긴 어렵지만, 정말 신청해서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계획 중인 일에 세세하고 실무적인 이야기까지 들려주시고, 응원도 아낌없이 해주셔서 좀 더 용기내어 하고 있어요.
지치고 내가 이거 왜하지? 싶을 때 그 날을 떠올리면서 힘을 내곤 해요. 6월에 열릴 클래스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서울사람처럼 구매하러 유어마인드 오랜만에 들러야겠어요! 헤헤)
ㄴ 답글 (1)ㄴ 접기
인터뷰 앤드 레터
9 days 전
이 글 읽고 울다가 일 주일 만에 깨어났다는 소식. 😭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제가 백배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계획하신 일이 적절한 때에 세상 밖으로 나오길 진심으로 응원하구요,
또 뵐 수 있다면 매우 기쁘겠고요.
힘들 때마다 이 글 꺼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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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5월 인터뷰&레터와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감사합니다. (하트)
인터뷰 앤드 레터
하트+하트=심장 (심장을 드립니다 (도망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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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에
ㅠㅠㅠ 오늘 레터를 받고 뭉클했어요. 바 사뭇에서 인터뷰 모임에 참여한 1인인데요...(ㅇㅇ입니당ㅎㅎ)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감사하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어려웠는데 유청님의 레터에 모두 담겨있었네요. 이 댓글 창에 다 쓰긴 어렵지만, 정말 신청해서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계획 중인 일에 세세하고 실무적인 이야기까지 들려주시고, 응원도 아낌없이 해주셔서 좀 더 용기내어 하고 있어요. 지치고 내가 이거 왜하지? 싶을 때 그 날을 떠올리면서 힘을 내곤 해요. 6월에 열릴 클래스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서울사람처럼 구매하러 유어마인드 오랜만에 들러야겠어요! 헤헤)
인터뷰 앤드 레터
이 글 읽고 울다가 일 주일 만에 깨어났다는 소식. 😭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제가 백배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계획하신 일이 적절한 때에 세상 밖으로 나오길 진심으로 응원하구요, 또 뵐 수 있다면 매우 기쁘겠고요. 힘들 때마다 이 글 꺼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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