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레터’는 조금은 쑥스러운 마음들을 위한 ‘읽고 쓰고 공유하기’ 연습입니다. 주로 에세이와 리뷰 쓰기에 관한 다양한 모티브를 띄워 보냅니다. 매월 1일, 이달의 작가와 책 소개로 시작되며, ‘인터뷰&레터’의 친구들은 레터를 통해 [프리뷰 매거진], [인터뷰 모임], [리뷰 클래스]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리뷰 클래스 이번 달엔 꼭... 안 되면 다음 달에....(헐렁해..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유월입니다. 유월은 육월이 아니라 유월로 쓴다는 점에서 뭔가 성숙해 보인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죠?) 또박또박 정확하게만 사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거, 때론 흘러가는 대로 부르고 쓰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걸 유월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듯합니다. 라고 쓰다 보니 이 작위적인 통찰은 마치… 유월맞이 건배사 아닌지? 예전 어느 자리에서 건배사 해야 한다길래 이러쿵저러쿵 말 만들던 때 생각이 나네요. 손가락 깨물며 제 차례 기다리다가 결국 안 했습니다만. (건배사 시키지 맙시다)(근데 이러다 나도! 나도 시켜줘 건배사! 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이렇게 유월의 인터뷰&레터도 실없는 소리로 열어봅니다.
차한비, 그리고『모든 소란을 무지개라고 바꿔 적는다』
인터뷰&레터 시리즈는 매월 1일, 이달의 작가와 책 소개를 시작으로 에세이와 리뷰 쓰기에 관한 모티브를 띄워 보내드립니다. 6월 프리뷰 매거진으로 소개하는 유월의 작가와 책은! 영화 저널리스트 차한비 작가의 『모든 소란을 무지개라고 바꿔 적는다』입니다.
『모든 소란을 무지개라고 바꿔 적는다』는 영화 글을 쓰고 영화인을 인터뷰하는 영화 저널리스트 차한비 작가의 책입니다. 차한비는 영화 웹진 ‘리버스’와 각종 영화제, 개봉영화 GV 등을 통해 익숙한, 특히 독립영화를 눈여겨보신 분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지요. 책을 통해 차한비 작가는 그가 열렬히 사랑하는, 그러나 그를 무척이나 괴롭히는 세 개의 마감을 털어놓습니다.
차한비와 세 개의 마감
첫 번째 마감은 영화와 원고입니다. 영화를 보고 글을 기고하고 영화 글쓰기를 강의하고 영화제와 극장에서 GV를 진행합니다. 쓰기는 그 모든 것이 끝난 다음부터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 밤이 깊고 새벽이 밝도록 빈 노트북 화면을 노려봅니다. 고단한 글쓰기 노동을 견디게 하는 것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기어코 사랑에 다다르는’ 인터뷰어라는 정체성입니다.
두 번째 마감은 여성이기에 마주해야 했던 경험과 그로부터 피어난 불안, 두려움을 정리정돈하는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인터뷰로 만난 선배 영화인이자 여성인 배우들이 들려준 나이 듦과 외로움에 관한 통찰을 곱씹어 봅니다. 예전에 공감하지 못했던 영화 속 여성 캐릭터를 보며 엄마라는 여성과 딸인 나의 역사를 새로 씁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된 우정을 돌아봅니다.
마지막 마감은 젊은 프리랜서로서 경험한 불안정 노동의 기록입니다. 영화제도 개봉 영화도 드문 ‘프리랜서 비수기’ 를 나는 법, 원고료를 운용하는 법, 혼자라는 일상을 꾸리는 법 등 그동안 착실히 쌓아온 프리랜서의 노하우, 혹은 에피소드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마감은 ‘영화’로 이어집니다.
책장을 넘겨볼까요?
첫 번째 마감
차한비 작가는 영화 저널리스트로서 영화인들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씁니다. 그에게 인터뷰란 ‘파트 타임 러버’와 같습니다. 인터뷰이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일입니다. 상대를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하고 싶어 안달을 내는 일입니다. 그렇게 상대에게 파고들다가도 문득 온전히 인터뷰어인 내게 상대가 마음을 내어주는 순간, 영화 <타인의 삶>과 <밤치기>를 떠올리며 자신을 가다듬습니다. 열렬한 사랑을, 관계의 한시성을, 이별의 온당함을 받아들이길 반복하며 ‘인터뷰’라는 마감을 무사히 마치는 파트 타임 러버의 이야기를 들여다 봅니다.
하면 할수록 인터뷰는 공과 사를 나누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담받는 기분이에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그토록 투명하게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낸 이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같이 울어야 할까, 아니면 더는 울지 말자며 웃어 보여야 할까. 차라리 내 상담사를 소개해 주는 편이 나으려나. 어떤 인터뷰이는 말하는 중간에도 제 말을 후회한다. 내가 귀갓길 전철 안에서 창문에 비친 얼굴을 보며 자책하듯 그 또한 혼자가 되면 이미 내뱉은 말의 무게에 허덕일 것이다. 불면과 항우울제는 지긋지긋하고, 당신은 당신을 탓하는 데 시간을 쏟는다. 예쁘지만 기가 막히게 예쁘지는 않은 얼굴, 잘하지만 소름 끼칠 정도는 아닌 실력에 오래 괴로워한다. 난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망각한 채 멍하니 당신을 떠올린다. 당신에게 가족과 친구와 동료, 진짜 연인이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서. 파트타임 러버는 가볍고 쿨해야 매력적인데, 나는 안 그러기로 해놓고 인터뷰이 앞에 자꾸 소유격을 붙인다. 내 인터뷰이. 사랑스럽고 고단한 내 애인과의 짧은 연애.
— 「상담받는 기분이에요」 중
두 번째 마감
차한비 작가에게 주어진 또 다른 마감.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여느 때처럼 나이를 먹던 어느 날, 작가는 문득 나이 먹는 일을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때 찾아온 생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입니다. 엄마가 내 나이이던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 내 모습을 비춰봅니다. 그러는 동안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 <다가오는 나날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어느 날은 <울산의 별>, <딸들에 대하여>의 김금순, 오민애 배우의 합동 인터뷰를 기획합니다. 불안하고 무기력한 마음을 선배 여성 영화인들에게 슬그머니 꺼내놓고, 그들은 기꺼이 명쾌한 문장들로 그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말은 오래전에 폐기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나는 엄마만큼은 살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무서웠다. 자본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 혼자 사는 여자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노화와 배신을 연결 짓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 엄마의 고약한 성미, 아름다움, 유약함, 유머, 죄책감, 회한, 미련, 질병이 때로는 저주처럼 딸을 파고들고, 때로는 악몽처럼 딸의 인생에서 되풀이 된다. 엄마에게는 허락되지 않던 수많은 기회를 얻고 나서도 딸은 먼저 살았던 여자들로부터 깨끗이 벗어나기 어렵다. 나는 이제 나탈리가 정말 가깝게 느껴진다. 세상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는 젊은이의 말에 부서지는 날이 언젠가 내게도 오겠구나 싶다.
— 「내비게이션을 켜라!」 중
세 번째 마감
이윽고 작가에겐 미룰 수도 모른 척 할수도 없는 마지막 마감이 남게 되었습니다. 밥벌이입니다. 독립영화계의 사랑 받는 인터뷰어이자 영화 저널리스트인 차한비에게 길고 엄혹한 비수기가 찾아옵니다. 팬데믹입니다. 제작도, 개봉도, 홍보도 모든 것이 지연됩니다. 프리랜서 영화 저널리스트는 다시 찾아올 성수기를 기다리는 대신, 새벽 청소 노동을 시작합니다. 주 5일의 고된 노동이 추가 됐지만 여전히 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이 경험은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로 이어집니다.
낙엽을 다 쓸어버려야 봄이 온다는 사실을 그전까지는 몰랐다. 털갈이하는 짐승처럼 나무는 마른 잎과 가지를 연신 흘리고 떨어뜨렸다. 맥없는 바람에도 우수수 내려앉더니 비가 오는 날에는 한층 볼썽사납게 굴었다.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지고 신발 굽에 뭉개진 낙엽은 몇 번을 쓸어도 제자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빗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아스팔트 도로와 주차장은 더 더러워지기만 했다. 겨우내 그것들을 간신히 물리치고 났더니 같은 자리에 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쓰레받기에 담기는 꽃잎을 보며 시간 가는 것을 알았다. 맨 먼저 목련, 다음은 벚꽃, 조금 지나서 라일락, 며칠 안 되어 철쭉, 끝에는 장미. 봄은 그런 순서로 무르익었다. 검붉은 장미 잎을 긁어낼 무렵에는 출근하자마자 겨드랑이부터 허리충까지 땀에 푹 젖었다. 끈적이는 목덜미를 끈적이는 손수건으로 닦고 모자를 눌러썼다. (...) 2020년 1월 중순부터 8월까지 서울 마포구 곳곳을 청소했다. 주 5일 출근했고 오전 5시 혹은 6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11시에 마쳤다. 근무지는 가정집, 사무실, 고시원, 미용실, 아파트, 학원, 상가 건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다만, 취기에 낮잠을 자든 엉뚱한 데 한눈팔려 시간을 낭비하든 아침이 밝아오기 전까지 영화는 한 편씩 봤다. 어떻게든 한 줄이라도 써보려고 했다. ‘갓생’을 꿈꾸지는 않았다. 그저 청소하는 대여섯 시간이 하루 전체를 쥐고 흔들지는 않기를 바랐다.
— 「아침 청소, 밤 영화」 중
글쓰기, '나'라는 소란을 '글'이라는 무지개로 바꿔 적는.
영화와의 대화, 비혼 여성의 삶과 사랑과 우정, 프리랜서라는 지긋지긋하고 애틋한 노동에 관한 총 18편의 에세이가 『모든 소란을 무지개라고 바꿔 적는다』에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 실린 모든 마감 이야기를 누구보다 먼저 읽을 수 있었는데요, 왜냐? 제가 이 책의 편집자이기 때문입니다. (위 도서 소개 글이 온라인 서점 상품페이지 소개 글과 유사점이 느껴진다면 제대로 보셨습니다. 그것 또한 제가 쓴 글이랍니다. 발췌도 요약도 변형도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라니! 과거의 제가 오늘따라 기특.)
다시 책을 들고 차한비 작가의 마감을 곰곰이 읽어봅니다. 영화, 여성, 노동이라는 소란을 무지개로 바꿔 적는 시간을 읽습니다. 소란스러운 사건과 사정이 없었던 양 무시하는 대신, 무슨 일이 있었나 오래 쳐다보는 시간. 마음의 딱딱하거나 무른 부분을 발견하는 시간. 생각이 형태를 갖추는 시간. 빈 화면에서 시작해 마침내 점을 찍는 시간. 글쓰기란 이 과정을 간추린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뷰&레터 시리즈: 시즌1 🎬영화와 책✍️
인터뷰&레터 시리즈는 나름의 테마를 가지고 시즌제로 운영해 보려 합니다. 영화 전문 도서 편집자의 프로젝트인 만큼, 첫 시즌 주제는 ‘영화와 책’으로 잡아봤어요. 영화를 주제로 한 책, 혹은 영화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책을 연말까지 매달 소개할 계획입니다.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작가와의 만남, 쓰기 워크숍이 있는 ‘인터뷰&레터 모임’이 예정되어 있고요, 차한비 작가님과 에세이집『모든 소란을 무지개라고 바꿔 적는다』와 함께 합니다. 영화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분,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 기록을 남기고 싶은 분, 인터뷰라는 대화 형식에 흥미가 있으신 분, 프리랜서로서 고민을 나누고 싶은 분, 아무튼 각종 마감에 시달리거나 시달리고 싶으신 분들은 6월 인터뷰&레터 모임에서 차한비 작가에게 대화를 건네 보세요.
신청 기간은 넉넉하니(하지만 금방 촉박해지겠죠), 이참에 책을 읽어보셔도 좋겠구요, 다음 레터로 소개될 '질문 구름'을 통해 무엇을 듣고 싶은지, 혹은 무엇을 털어 놓고 싶은지 고민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신청은 아래 버튼을 클릭! ⬇️⬇️⬇️
INFO!
[하셨나요?] 5월엔 나를 설명하자. [해냈다!]
'인터뷰&레터'는 친구들의 읽고 쓰고 공유하기를 연습을 장려하고 독려하고 응원합니다. 글쓰기 연습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 비로소 완료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쓰고 싶은데 모티브가 필요할 때, 마감이라는 장치가 필요할 때, 글쓰기라는 관심사로 이어지는 이들과 내 글을 나누고 싶을 때, 인터뷰&레터의 [프리뷰 매거진]을 활용해 보세요.
🛩️친구들과 지난 5월의 쓰기들🍎
이번 달도 아일랜드에서 날아온 소식이 있습니다. 인터뷰&레터의 글쓰기 과제를 미션으로 생각해주시는 언급이 정말 반가웠어요. 점점 많은 분들께 가 닿을 수 있길. (소개와 설명의 차이가 아리송했다는 피드백도 접수 완료!)
🛩️아일랜드답지 않게 연일 좋던 날씨와 그것을 보내기 싫은 마음 (by 써니)
매달 과제 내볼까 말까, 망설이는 분들 분명 계시다고 들었고요, 독려차 사과장인의 '사과 깎는 법' 설명을 링크해봅니다. 다음 달엔 좀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길. 남한테 보여주는 것도 연습해야 는다구요!
🍎한주에 3회 이상 산길을 걷기, 2~3회 사과 깎기, 00회 즐거운 음주.. (by 사과의 건축)
(읽으신 후 댓글을 남겨주시거나 하트를 눌러주시면 재미도 응원도 나눌 수 있습니다.)
6월인데요, 마감 필요하신 분?
6월의 글쓰기: #여름_영화_사연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개인 SNS에 한 단락 이상의 글을 써서 올린 후 상단 버튼의 구글폼으로 링크를 보내주세요. 7월 1일 발송될 [프리뷰 매거진]에 링크 형식으로 실어드립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경우 @interview.and.letter 를 태그하시면 따로 구글폼을 작성하지 않으셔도 제가 발견할 수 있으니, 인스타 유저들은 그 방법을 이용하셔도 좋겠습니다.
!인터뷰&레터 글쓰기 연습!
1. 6월의 모티브: #여름_영화_사연
2. 분량: 한 단락 이상
3. 마감일: 5월 22일 (목) PM11:59 까지
4. 제출은 위 링크에서, 혹은 인스타그램 태그:
@interview.and.letter
#인터뷰앤드레터 #글쓰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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