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더운 7월입니다. 능률도 기운도 팍팍 떨어지는 날씨,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은 바람에 나 자신이 더 싫어질 때는 일기를 써보는 것도 방법인데요. 전 요즘 인스타그램 바깥의 플랫폼을 고민해보고 있어요. 블로그를 한다면 네이버로 갈지 알라딘의 투비로 갈지 브런치로 갈지...? 추천 플랫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있던 블로그나 잘 쓰라구요? 그것도 맞는 말씀.... (흑흑)
이번 레터에서는 7월의 모임 장소인 서촌의 '영시'와 최지웅 디자이너에게 말을 건넬 '질문 구름'을 소개합니다. 질문 구름 속 사진들은 최지웅 디자이너가 자신의 사진첩에서 직접 골라 보내주셨습니다. 최지웅 디자이너의 카메라가 담은 장면들, 같이 봐요. :)
7월의 인터뷰&레터 모임, 아직 신청 가능! 망설이는 순간 품절인 거 아시죠?🦄
매달 두 번째 레터에는 대화의 배경이 되어 줄 모임 공간에 관한 에세이를 싣습니다.
7월의 공간
JULY, SPACE, ESSAY
영화서점, cinématique '영시'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15-10. 4층
cinématique. 映時, 영시.
서촌에서 벚나무 길을 따라 걸은 적 있으실까요. 그곳이 필운대로입니다. 필운대는 조선시대부터 벚꽃놀이를 하던 곳이었다고 하지요. 길에서 벚꽃 계절을 끝난 걸 아쉬워하다 문득 라일락 향기를 맡은 적 있으실까요. ‘영시’는 초입에 라일락 나무가 한 그루 선 작고 막다른 골목에 있습니다. 지금은 한여름, 라일락꽃도 없어진 계절이지만요. 그럴 땐 어떤 건물의 계단을 따라 올라오시면 됩니다. 간판이 보일 법도 한데 도무지 찾을 수는 없다면 그곳이 맞습니다.
영화적(cinématique) 영시입니다. 유시형 감독 등 4인의 젊은 영화인이 운영합니다. 주로 영화인들의 작업실로, 연기와 시나리오 등 영화 워크숍이나 행사 등 다양한 영화의 공간으로 사용됩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영화서점이 됩니다. 목요일 1시부터 6시까지입니다. 영시가 모두를 환영하는 법. 책을 사지 않아도 편안히 읽어보시라고 권합니다. 물과 화장실도 마음껏 쓰시라고 안내합니다. 서점에서 마주치는 책의 표지에는 이런 이름들이 적혀 있습니다. 왕빙, 짐 자무쉬, 샹탈 아케르만, 아녜스 바르다와 장 뤽 고다르, 아핏챠퐁 위라세타쿤 등입니다. 사진집, 아트북, 평론집, 에세이와 소설, 시. 누가 봐도 영화인 책부터 그런 줄 몰랐는데 영화였던 책들이 이곳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영화서점 영시의 문을 열면 넓고 환한 서점 가운데에 천장에서 내려오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보입니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다락 계단입니다. ‘형근’의 방에도 이것과 닮은 사다리가 있었다는 건 얼마 전 <경복>을 다시 보며 깨달았습니다.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던 건 뒤늦은 반가움이 새로 조형해 낸 기억일까요? 그랬다 하더라도 반가웠단 사실만큼은 틀림없습니다.
<경복>은 영시를 운영하는 유시형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영화입니다. 두 친구 ‘형근’과 ‘동환’은 곧 스무 살이 됩니다. 그들은 독립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려니 돈이 필요해, 형근의 엄마가 여행을 떠난 틈을 타 둘은 형근의 방을 세놓기로 합니다. 세입자 후보가 하나둘 방으로 찾아옵니다. 형근과 동환은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어쩐지 인터뷰를 당하기도 합니다. 형근과 동환은 그들의 질문이 못마땅하기도,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둘은 이제 스무 살입니다. 사람들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는 걸 알지 못합니다. 그저 자기 안에 정답이 없다는 게 두렵고 불안할 뿐입니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옮겨봅니다.
"여러분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하실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 속에서 제 심금을 울린 한마디는 이겁니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시해진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었건 혹은 사장님이 되었건 교수님이 되었건 결국 어렸을 때 그 사람의 꿈과 희망에 비하면 시시해지는 거랍니다. 자기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시시해져버린 당신이 어린 시절, 하지만 빛나는 꿈과 비전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꿈을 잃어버리셨습니까.”
두 친구는 세입자 후보가 주고 간 CD에서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둘은 몰랐지만, 이 녹음은 오래전 라디오 <정은임의 FM영화음악> 속 정성일 평론가의 말입니다. 꿈을 찾기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둘 앞에 당도한, 당신은 결국 시시해지고 말 거라는 이야기. 두 친구가 아마도 처음으로 영화와 만난 순간입니다.
<경복>은 2013년 7월 11일에 개봉했습니다. 그때 저는 형근과 동환이 다시는 이 작은 방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로 믿었던 것 같습니다. 영시에서의 2025년 7월 18일 모임을 앞두고, 오랜만에 영화를 꺼내 보면서는 나중에 그들이 방으로 돌아왔을 수도 있겠다, 또는 이미 돌아와서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쓸쓸하거나 서글픈 감상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두 친구가 그 방을 기억했으면 했습니다. 우린 돌아갈 수 있는 곳을 두고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하니까요.
12년 전 저는 <경복>을 배급하고 개봉한 상상마당 시네마 영화팀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어설픈 사원이었습니다. 그때 <경복>의 포스터를 디자인했던 이가 이번 모임의 게스트인 최지웅 디자이너입니다. 지금 영시의 유시형 감독은 첫 연출작을 막 개봉한 영화감독이었습니다. 때로 이렇게 영화는 우리의 돌아올 곳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다시 만난 영화라는 공간. 당신은 오고 계시나요?
7월 18일 (금) PM 7:30
인터뷰&레터 모임 with 최지웅 디자이너
디자이너의 일이 궁금한 분, 디자이너와 일하는 법을 고민하는 분, 디자이너로서 독립출판을 고민하는 분,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쌓길 원하는 분, 취향을 일과 연결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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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동산
시간도 너무 잘 흐르는데, 대화의 밀도, 분위기도 너무 좋았어요. 작가와 장소와 시간에 대한 임유청님의 기획에 감사드려요!
인터뷰 앤드 레터
시간이 너무 잘 흘렀다니! 무척 기쁩니다. 정말 즐거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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