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이야기

저버림은 어디에서 오는가

기대에 관한 이야기

2024.03.14 | 조회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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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

마음이 쓰이는 날 종종 글을 씁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분명히 믿고 있는 거나, 기대하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종교라거나, 꽤나 괜찮은 미래 속에서 살아갈 특별한 사람이 바로 나라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산타 따위는 믿지 않지만 신은 믿고 종교는 믿는 아이였다. 나의 조부모님들께 이런 말을 한다면 아마 손목을 붙잡힌 채로 몇 시간동안 눈을 감고 있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으나 유일 신을 믿는 나는 수많은 이름을 알린 그 신들은 어떤 곳이든 존재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더란다.

 아무래도 기대는 거기서부터 나온 것 같다. 신은 존재한다는 믿음. 인간의 목숨은 유한하고, 신은 무한하니 유한한 것들이 가진 것 중 가장 보편적이나 가장 귀한 것을 준다면 응당 그에 대한 보답을 바랄 수 밖에 없지 않나.

 이런 마음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 때쯤부터 나는 현실적인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행복하게 해 주세요,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어른이 되게 해 주세요, 남들이 가진 것들을 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게 해 주세요.' 이런 마음은 믿음과 기대 중 어디에서 나온 마음일까. 둘 중 어떤 것이든 어린 나는 간절했고 늘 언젠가는, 언젠가는이라는 마음으로 두 손을 맞잡고 일주일 중 하루의 대부분을 꾹 꾹 눌러 앉은 채로 살았다.

 그렇게 나의 신을 의심하지 않고 살던 날, 똑같이 평범했던 날들 중 보편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나의 신은 평범했던 나를 평범한 인간들 속에서 평범하지 않는 사람으로 추락시켰더란다. 너무 쉽게,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신은 나의 기대을 저버렸고 나는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다.

 믿음이나 기대같은 것이 있지 않았다면 저버리다라는 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신에게 믿음이나 확신, 기대 따위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기대를 잃은 자리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아마 그 구멍이 여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다른 마음으로 막을 수도 없게 송송 뚫린 기대 위로 마음을 다 덮을, 아주 큰 두려움이 나를 덮쳤고 그때부터 모든 학창시절을 꽁꽁 감싼채로 함께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종 생각하게 된다. 기대가 없었더라면, 신의가 없었더라면 나는 어떤 것들을 저버리지 않고 그저 그렇게 적당히 이용하며 살 수 있었을까? 불편한 마음을 덜고 지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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